싱가포르까지 오신 그분들
얼마 전 취재 차 싱가포르 주재 한국 공기업 직원 몇 명과 점심을 먹을 기회가 있었다.
사실 나는 한국 사람들과의 비지니스 런치를 살짝 꺼린다. 보통 나보다 나이가 기본 열 살이 많은 경우가 다반사고 오랫동안 해외생활을 해서 비즈니스 자리에서 취해야 하는 한국의 예의범절을 잘 모르기 때문에 실수할까 봐 전전긍긍한다. 그래서 조심 또 조심하곤 한다.
여섯 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에 나, 싱가포르 지부 헤드 한국 아저씨, 옆에 40대 한국 차장님(?--아니면 부장님), 그리고 맞은편에 싱가포르 기업에서 온 싱가포르 사람들 세명이 앉았다. 점심은 호텔에서 먹었다.
한참 점심이 끝나갈 때쯤, 나는 와플을 가져왔다.
"선생님, 와플이 참 맛있네요, " 나는 정적을 깨고 대화를 시도했다.
"아 그래요?"
헤드 아저씨가 왼쪽을 봤다. "한번 가져와봐요"
40대 (여성) 차장님이 벌떡 일어서시더니 뷔페로 성큼성큼 걸어가셨다. 그리고 와플을 가져오셨다.
하나는 본인 와플, 하나는 아저씨 와플.
헤드 아저씨가 과일을 먹고 싶다는 소리를 하셨는지 다시 한번 일어서서 양손에 큰 과일 두 접시를 가져오셨다.
나도 모르게 일어나서 도와주고 싶은 욕구가 앞섰지만 아저씨를 향한 왠지 모를 오기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앞에 싱가포르 인들은 그 자리가 불편한지 서로를 쳐다봤고 나는 최대한 내 앞에 놓인 디저트에 집중했다.
이 이야기를 싱가포르 친구한테 해줬더니 "그 여성분의 포지션이 아저씨 개인 비서야?"라고 물었다.
"아니? 같은 동료야."
그러게 말이다.
기업문화에 대해서 나는 관심이 많다.
건강한 기업 문화로 유명한 기업들에서 인턴을 하고 인터뷰를 한 경험이 있어서 다양한 기업 문화에 대해서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스쳐가거나 겪은 기업 문화의 느낀점을 요약해서 짧게 써보자면
구글 (인턴쉽): don't be evil. 서로 뒤통수치지 말고 즐겁게 일하자
애플 (인터뷰): 팀끼리 으쌰 으쌰
우버 (인터뷰): Hustle real hard (아주 열심히 일하자)
블룸버그 (인턴쉽): 실수는 없다
이렇게 세계 유수 기업들은 딱 한 문장으로 설명될 수 있는 강한 성격의 기업문화를 소유하고 있다.
물론 위 사건은 한국 기업문화의 문제보다 한국문화가 낳은 꼰대의 실상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한 민족/나라의 문화가 기업문화에 끼치는 overriding 한 영향을 새삼 실감하고는 한다.
한국 문화의 trickle-down effect (낙수효과)라고 할까... 뭐 내가 사회학 전공은 아니니 틀리면... 웁스.
예전에 어느 대기업에서 금요일마다 반바지를 입게 하고 서로 직급 대신 ~님, 아니면 영어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게 한다는 뉴스를 접했다. 처음 뉴스를 듣고 콧웃음을 쳤다. 저런다고 바뀔 거 같아?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저렇게 무리수를 던져야지 사회 곳곳에 깊게 박혀있는 꼰대들이 힘을 덜 쓸 수 있을 것 같다.
1) "~~ 차장, 과일 좀 가져와봐."
2) "제인, 과일 좀 가져와봐."
첫 번째 예는 직급에 익숙한 우리가 생각 없이 복종할 수 있겠지만 두 번째는 동등한 위치에서의 지시를 내포하고 있어서 지시받는 사람이나 하는 사람이 한 번쯤은 더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아무튼 아무리 한국 기업이라고 하지만 해외에서도 저렇게 위계적인 문화를 답습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꼰대들을 제거하는 일... 시간이 그들을 데려가는 것보다 더 빠른 방법은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