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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들 제거하기

싱가포르까지 오신 그분들

by juwon

얼마 전 취재 차 싱가포르 주재 한국 공기업 직원 몇 명과 점심을 먹을 기회가 있었다.


사실 나는 한국 사람들과의 비지니스 런치를 살짝 꺼린다. 보통 나보다 나이가 기본 열 살이 많은 경우가 다반사고 오랫동안 해외생활을 해서 비즈니스 자리에서 취해야 하는 한국의 예의범절을 잘 모르기 때문에 실수할까 봐 전전긍긍한다. 그래서 조심 또 조심하곤 한다.


여섯 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에 나, 싱가포르 지부 헤드 한국 아저씨, 옆에 40대 한국 차장님(?--아니면 부장님), 그리고 맞은편에 싱가포르 기업에서 온 싱가포르 사람들 세명이 앉았다. 점심은 호텔에서 먹었다.


한참 점심이 끝나갈 때쯤, 나는 와플을 가져왔다.


"선생님, 와플이 참 맛있네요, " 나는 정적을 깨고 대화를 시도했다.

"아 그래요?"


헤드 아저씨가 왼쪽을 봤다. "한번 가져와봐요"

40대 (여성) 차장님이 벌떡 일어서시더니 뷔페로 성큼성큼 걸어가셨다. 그리고 와플을 가져오셨다.

하나는 본인 와플, 하나는 아저씨 와플.


20138033_1335741669878986_1678645536_o.jpg 요거는 우리 동네 와플.


헤드 아저씨가 과일을 먹고 싶다는 소리를 하셨는지 다시 한번 일어서서 양손에 큰 과일 두 접시를 가져오셨다.


나도 모르게 일어나서 도와주고 싶은 욕구가 앞섰지만 아저씨를 향한 왠지 모를 오기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앞에 싱가포르 인들은 그 자리가 불편한지 서로를 쳐다봤고 나는 최대한 내 앞에 놓인 디저트에 집중했다.



이 이야기를 싱가포르 친구한테 해줬더니 "그 여성분의 포지션이 아저씨 개인 비서야?"라고 물었다.

"아니? 같은 동료야."


"그럼 왜 뷔페인데 혼자 못 가져다 먹어?"


그러게 말이다.



기업문화에 대해서 나는 관심이 많다.


건강한 기업 문화로 유명한 기업들에서 인턴을 하고 인터뷰를 한 경험이 있어서 다양한 기업 문화에 대해서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스쳐가거나 겪은 기업 문화의 느낀점을 요약해서 짧게 써보자면


구글 (인턴쉽): don't be evil. 서로 뒤통수치지 말고 즐겁게 일하자

애플 (인터뷰): 팀끼리 으쌰 으쌰

우버 (인터뷰): Hustle real hard (아주 열심히 일하자)

블룸버그 (인턴쉽): 실수는 없다


이렇게 세계 유수 기업들은 딱 한 문장으로 설명될 수 있는 강한 성격의 기업문화를 소유하고 있다.




물론 위 사건은 한국 기업문화의 문제보다 한국문화가 낳은 꼰대의 실상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한 민족/나라의 문화가 기업문화에 끼치는 overriding 한 영향을 새삼 실감하고는 한다.

한국 문화의 trickle-down effect (낙수효과)라고 할까... 뭐 내가 사회학 전공은 아니니 틀리면... 웁스.


ㅇ.jpg 출처: The Wall Street Journal

예전에 어느 대기업에서 금요일마다 반바지를 입게 하고 서로 직급 대신 ~님, 아니면 영어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게 한다는 뉴스를 접했다. 처음 뉴스를 듣고 콧웃음을 쳤다. 저런다고 바뀔 거 같아?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저렇게 무리수를 던져야지 사회 곳곳에 깊게 박혀있는 꼰대들이 힘을 덜 쓸 수 있을 것 같다.


1) "~~ 차장, 과일 좀 가져와봐."


2) "제인, 과일 좀 가져와봐."


첫 번째 예는 직급에 익숙한 우리가 생각 없이 복종할 수 있겠지만 두 번째는 동등한 위치에서의 지시를 내포하고 있어서 지시받는 사람이나 하는 사람이 한 번쯤은 더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아무튼 아무리 한국 기업이라고 하지만 해외에서도 저렇게 위계적인 문화를 답습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꼰대들을 제거하는 일... 시간이 그들을 데려가는 것보다 더 빠른 방법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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