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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won Dec 20. 2021

위스키가 없이는 기쁨도 슬픔도 없다

항우울제의 부작용

얼마 전 누군가에게 상실감을 느끼게 하는 말을 들었다. 두뇌의 소화는 배보다 느린가 보다. 들었던 말이 굽이굽이 거쳐 뇌의 중심에 다다른 시점은 그 다음날 오후.


나는 오후 네시부터 위스키 향이 가득한 내추럴 와인을 마시면서 들은 말을 곱씹고 분석하고, 그 후 파도처럼 몰려오는 여러 가지 감정을 하나하나 서핑하듯 타고 넘어졌다.


이 늦은 반응은 아마 내가 이년 넘게 복용하고 있는 각종 항우울제, ADHD, 수면 약 등의 부작용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물론 의학적인 소견이 아니다). 하지만 양극성 장애와 우울, 그리고 불안을 다스리는 약들을 여러 개 먹는 만큼 내 감정은 다행히도 수평선을 달린다.


혹자나 나의 신경과/정신과 의사 선생님(들)은 아마 약이 제 기능을 해서 만족하실 수도 있다. 나도 우울증이 심했던 초창기에는 넘실거리는 감정이 너무 힘들어서 잔잔한 바다를 그리곤 하였다.


하지만 약 덕분에(?) 소리도 안 나게 일렁이는 마음을 보며 누군가 나를 꼬집지 않는 이상 아프지 않고, 50도가 넘는 위스키를 마시지 않는 이상 자연스럽게 배를 잡고 깔깔 웃은 적이 드물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집어 말하면 이 무감각 자체가 우울증의 증상인가.


우울증이란 놈은 도저히 이렇게 손에 잡히지 않는다.


홍콩에서 마셨던 Caol ila 랑 니카 위스키가 생각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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