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정신병원 (2)
오늘 퇴원을 했다.
기억이 희미해지기 전에 후다닥 기록을 해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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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아침, 입원하고 처음으로 담당 교수와 마주 앉았다.
내 담당 의사는 두 명이 있다.
내 연배 레지던트 의사분과 중년 교수님이다.
정신병원에서 하루 일과는 마치 고등학교, 아니, (가보진 않았지만) 군대를 연상시킨다.
일단, 쳇바퀴처럼 도는 일과와 빽빽한 규칙이 있다.
아침 7시쯤 하루가 시작된다.
간호사가 와서 내 혈압과 체온을 잰다. 비몽사몽 잠을 다시 청하려고 하면 7시 30분쯤 아침 식사가 온다.
매일 아침에 크로플과 커피를 먹었던 나는 아침에 나오는 심심한 한식이 도저히 입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억지로 먹었다.
첫날 아침부터 슬슬 커피가 당기기 시작했다. 중1부터 마신 커피는 거의 내게 물만큼 소중하다. 심지어 네팔로 여행을 갔을 때도 어찌어찌 카페를 찾아서 라떼를 마신 나다. 하지만 교수님은 커피와 술이 감정을 증폭시킨다는 이유로 삼 개월 금지령을 내리셨다.
“커피 마시는지 간호사들이 지켜볼 거예요~ 지키기 싫으면 퇴원하세요.” 교수님은 조기 퇴원과 폐쇄병동 입원을 채찍으로 쓰며 나를 기선제압 하셨다. 이미 병가까지 내고 온 마당에 조기 퇴원은 내게 선택지일 수가 없었다.
아침을 먹고 슬슬 눈이 감길 때, 레지던트 쌤이 와서 수면이 어땠는지와 내 심리상태를 물어본다.
“밥은 맛있게 먹었나요~?” 동그란 안경을 쓰신 친절한 쌤이 내게 물어봤다.
“병원밥이 맛있겠나요ㅎㅎ? “
난 쓴 미소를 지으며 삐딱하게 대답했다. 내 우울과 화에 잠식당해서 부끄럽지만 예의고 뭐고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아침식사를 끝내고 삼십 분 정도 있으면 교수님이 레지던트와 의대생들 그리고 간호사와 회진을 도신다. 선생님마다 회진 스타일이 제각각이다. 어떤 분은 침대에 앉은 환자 앞에서 서서 말씀하신다.
교수님은 보통 조용히 나를 밖으로 불러내신다. 그럼 문 앞에 있는 푹신한 작은 의자에 서로 마주 보고 앉아서 15-20분 상담을 한다. 그 옆에는 레지던트쌤이 바쁘게 상담 내용을 받아 적고 의대생들은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벽에 붙어 듣는다.
“혹시 내가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가 습관이라는 말 들어봤어요? 어떤 말일 것 같아요?” 첫 회진 때 교수님이 물었다.
“혹시 내가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가
습관이라는 말 들어봤어요?
“말 그대로 누군가를 대하는 태도도 본인이 만든 습관대로 나온다는 말 아닐까요?”
“맞아요. 박주원 씨는 본인이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방어적이고 네거티브해요. 알고 있었나요?”
기분이 살짝 상했다.
딱히 부정하지는 않았다. 이미 아는 사실이기도 했다. 하지만 첫 면담부터 너무 직설적(?)이지 않는가.
보통 동네 정신과에 가면 레퍼토리는 비슷하다.
내가 주절주절 한탄을 하면 의사는 나를 위로해 주며 ”주원님의 잘못이 아니에요 “ 등의 멘트 몇 개를 한 뒤, 그래도 힘들다고 하면 약을 더 준다. 세네 곳의 정신과를 거쳤지만 그 아무도 내게 교수님같이 직언을 한 적이 없다.
“알고는 있는데, 제가 원래 이러지는 않았어요. 사람들이 너무 무서운데 저도 저를 지켜야죠.”
교수님은 ”우아한 치료“도 좋지만 그와 동시에 내 생활패턴 개선도 필요할 것 같다고 하셨다.
”우아한 치료“
‘우아한 치료’라는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 이분의 MBTI 중에는 무조건 T가 존재한다.
교수님은 내게 매일 같은 시간에 기상하고 밥을 먹는 기본 습관을 일단 build 해야 한다고 하셨다. 내가 금쪽이가 된 기분이 들었다.
상담이 끝나기 전, 교수님은 의아하다는 듯이 내게 물었다.
“나름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삶을 살고 계신 것 같은데 왜 자살을 하고 싶어 하나요? “
어떤 의도로 저 말을 물어봤는지 지금도 모른다. 나를 떠봤을 수도 있고, 정말 이해를 못 해서일 수도 있고. 가끔씩 정신과 교수들이 이런저런 말을 하면서 환자를 떠본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저런 생각보다 그냥 기가 차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렇게 따지면 모 재벌가 막내딸은 왜 자살했겠어요? “
교수님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낮잠을 자지 말라는 말과 함께 면담을 끝냈다.
두 번의 아침 면담이 끝났는데도 아직 아침 9시였다.
재택근무가 잦은 나는 업무시작인 10시 바로 전에 기상을 하던 습관이 있어서 갑자기 바뀐 신체리듬에 도저히 적응을 하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았다. 하지만 간호사가 볼까 봐 자지도 못하고 눈치만 보며 앉아있었다.
회진 후 침대에 있으면 간호사쌤이 와서 아침 약을 주고 가신다. 이 또한 절차가 있다. 병원 팔찌의 내 이름과 약봉투의 내 이름을 확인하시고 약을 꿀꺽 삼키는 모습까지 보고 나가신다.
그리고 그렇게 천장을 보고 멍 때리다가 잠이 꾸벅꾸벅 올 때쯤 점심이 나온다. 역시 슴슴한 한식이다.
‘병원 식판’ 냄새가 나서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자주 시켜 먹었던 초밥이 그리웠다. 저녁 메뉴는 무엇인지 미리 식단표를 확인하면서 고등학생이 된 기분이 들었다. 배식으로 나온 닭강정 하나로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순간을 오랜만에 경험해 보면서 군더더기 없는 일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을 먹고 침대에서 뒹굴 거리다 보면 간호사쌤이 또 와서 혈압을 재시고 얼마나 밥을 먹었는지 물어보신다. 식사량부터 배변 유무 그리고 기분까지 꼼꼼하게 기록하신다. 정말 체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병원에서의 시간은 잔잔한 강물같이 소리 없이 흘러간다. 어떻게 보면 평화롭지만, 뒤집어보면 숨 막히는 고요함이 나를 삼킬 때도 있다. 병원에서 읽으려고 가지고 왔던 책은 도저히 손에 잡히지 않았다.
왜 내가 여기에 있나, 어떻게 하다가 여기까지 왔나 등부터 시작해서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인 생각까지 버무려져서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
이렇게 오후를 얼렁뚱땅 보내고 저녁이 다가올 때쯤, 레지던트 쌤이 와서 상담을 한다. 보통 5시쯤 오셔서 나와 한 시간 정도 토크를 하시는데 초반에는 내 삶의 전반적인 스토리를 듣고 꼼꼼히 기록을 하셨다.
둘째 날에는 피검사를 했다. 갑상선 저하였는데 정상수치로 돌아왔다고 해서 안도감이 들었지만, 나의 무기력함을 설명할 변명거리가 사라져서 유감이기도 했다.
저녁은 보통 6시에서 6:30 사이에 나온다. 역시 간이 거의 없는 한식이다.
저녁과 아침에는 세브란스 앱으로 두 번째 메뉴를 선택할 수 있는데, 아침에 딱 한번 에그마요 빵과 소시지가 나온 날이 있다. 밖에서는 공짜로 줘도 안 먹을 맛이었지만 제한된 환경에서 먹으니 빵 부스러기까지 긁어먹었다.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저녁을 먹고 식판을 반납하면 보통 간단하게 산책을 했다. 산책이라고 해봤자 세브란스 병원 테두리를 벗어나면 안 돼서 본관과 암병원 사이의 짧은 거리를 빙빙 돌다가 주차장 옆에 있는 풀이 듬성듬성 난 좁은 공간에 벌러덩 누웠다.
의대 도서관이 정면으로 보였고 자연스럽게 열공하는 학생들도 보였다. 왠지 현타가 왔다.
세상 모두가 달리는데 나만 걷기는커녕 기어가는 것 같았다. 다 같이 그냥 천천히 걸으면 안 되나? 하향평준화를 기도하며 하늘을 보니 별이 미세하게 보였다.
갑자기 주차요원분께서 와서 여기서 뭐 하시냐고 물어봐서 쉬고 있다고 했더니 지나가던 의사들이 나를 신고(?) 했다고 한다. 환자가 “괜찮아 보이지 않는다고…“
병원 벤치들이 전부 차도 앞에 있어서 누울 풀밭을 찾아서 왔다고 설명을 드렸다.
그래도 곤란한 표정으로 서게시길래 “제가 죽으려고 했으면 그냥 여기 주차장 가운데서 누워있겠죠 “라고 했더니 아저씨는 좀 쉬다가 빨리 들어가라고 말씀하셨다. 생각해 보니 나도 참 표현을 극단적으로 한다.
병실로 복귀했더니 밤 9시에 간호사분께서 와서 수면약을 주셨다. 내가 평소에 종류가 다른 5-6알 정도를 먹었는데 약은 3알로 줄어있었다. 이참에 약도 줄이자는 교수님의 뜻이었다.
약을 갑자기 줄이니 잠이 오지 않았다. 침대도 딱딱해서 집에 있는 푹신한 라텍스 침대가 그리웠다. 앞에 계신 암 환자 분의 보호자가 구슬픈 목소리로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흥얼거리셨다.
뒤척거리다가 자려고 하니 갑자기 천장에서 뿅망치 소리가 계속 나서 도저히 잘 수가 없었다. 간호사한테 말했더니 환청을 의심했다. 절대 그럴 일은 없다고 말씀드렸는데도 계속 환청을 의심하셔서 황당했다가 갑자기 깨달았다.
아, 이곳은 정신병원이었지…
이곳에서는 매우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이럴 때 무조건 기록해 놓는 직업병이 도움이 된다.
비몽사몽 한 상태에서 겨우 녹음한 소리를 들려주니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에어컨이 고장 나서 나는 소리라고 알려주셨다.
“제 환청이 아니었어요!” 굳이 못 박았다.
남은 일주일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