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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won Jun 22. 2023

불신사회에서의 친절

어쩌다 정신병원 (4)

디카페인 커피를 사러 아침을 먹고 암병동으로 향했다.


교수님 회진이 있어서 15분 안에 돌아오겠다고 간호사 선생님이랑 약속을 하고 암병동으로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복도를 총총걸음으로 걸었다.


심리검사지와 디까페인 아메리카노


디카페인 라테를 사는 카페에서 크로와상을 먹을까 고민하던 중, 보라색 카디건을 입으신 구부정한 할머니가 빵 메뉴를 보며 계속 두리번거리셨다.


“뭐 도와드릴까요?” 역시, 나의 오지랖이란…


할머니는 ”6900원… 7900원…” 가격을 중얼거리며 한숨을 쉬시더니 말없이 걸음을 옮기셨다.



교수님은 아침 면담 때마다 내게 친절을 강조하신다.


“저 생각보다 꽤 친절한 사람이에요!” 나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렇게 자기 객관화가 안되어있어요…” 교수님은 받아치셨다.


문득 아침에 만난 할머니에게 보인 나의 친절 (오지랖)이 생각났다.


그리고, 2019년, 타인에게 친절을 보였다가 봉변을 당한 일을 불쑥 떠올렸다.


지하철 역에 서 있었는데, 어떤 구부정한 할머니가 내게 다가와서 딸과 중요한 문제로 급히 연락을 해야 하는데 핸드폰을 잃어버렸다며 내게 대신 문자 한 통을 보내달라고 했다.


할머니가 불러주는 데로 문자를 받아 적어서 보냈다. 문자를 보내자마자 할머니는 갑자기 사라지셨다.

찜찜해서 삭제 안하고 보관한 문자…


거의 바로 답장이 왔다.


정확히 말하면, 쌍욕이 날아왔다.


똥 밟은 날


저 문자를 받고 심장이 벌렁거렸다. 왠지 엮이면 안 될 일에 괜히 엮인 기분이었다. 전화까지 와서 나는 정말 지나가는 행인이라고 설명까지 했다.


나는 교수님께 갑자기 생각난 이 불쾌한 기억을 설명하면서 주장했다.


“우리 모두 불신의 사회에서 살고 있어요. 서로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것을 개인의 문제로만 돌리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우리 모두 불신의 사회에서 살고 있어요…“


교수님은 ‘불신의 사회’에 대해 수긍하시면서 앞으로 이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앞으로 차차 배워나가자고 하셨다.


그리고 과거와 달리 현재의 나는 나를 충분히 지킬 수 있다고 하셨다. 아직 설득이 되지 않았다.




타인에 대한 나의 불신과 두려움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았다.


사회생활을 비교적 일찍 시작했다.


첫 인턴을 대학생 1학년 때 했고, 네 번의 인턴쉽 후, 첫 직장에 경력직 피디로 만 22살 때 입사했다.


일찍 어른이 된 만큼, 일찍 감당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그중에서 제일 힘들었던 점 중 하나는, 내가 보인 친절과 미소가 뾰족한 부메랑이 되어 내게 날아왔을 때다.


선생님인 엄마를 둔 덕분에 윗사람에게 복종과 공경을 어렸을 때부터 강요받은 나는, 항상 일터에서 제일 만만한 사냥감이었다. 인턴을 할 때, 특정 상사나 선배들은 내게 너무나 쉽게, 함부로 말을 하며 괴롭혔고, 나는 공격을 웃어 삼키는 법밖에 몰랐다.



대학교 졸업을 하고 싱가포르에서 피디 생활을 했을 때 내가 취재를 위해 한 스몰토킹이나 보인 미소는 가끔, 인터뷰이 아저씨들의 능글맞은 추파나 부담스러운 터칭으로 돌아왔다. 악수를 하면 손을 간지럽히거나 (나중에 알고 보니 성적의미를 내포한 행위라고 한다) 과도하게 사생활을 물어보면서 “코리안 걸”에 대한 편견이 담긴 무례한 코멘트를 했다. 취재 후 이런 사실을 상사에게 보고하면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겼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일부러 웃지 않기 시작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만만해 보이기가 싫었다.


만만해 보이기가 싫었다.


땅을 보며 얼굴을 찌푸린 채로 걸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게 딱히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집에 있던 원피스들은 상자에 전부 넣어버리고 똑같은 흰색 셔츠 열개를 사서 돌려 입었다.


색이 빠진 옷장


최대한 내게 담겨있는 모든 색을 빼고 나를 무채색으로 만들고 싶었다.




어느 순간, 교수님 말대로 태도가 습관이 되어버렸나 보다.


교수님은 내가 항상 갑옷을 입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갑옷을 벗어도 되는 순간에, 나는 갑옷 뒤에서 잔뜩 교수님을 경계하고 있다고 느끼셨다고 한다. 내가 방패까지 들고 나를 방어해서 내가 도움을 받고 싶은지 헷갈린다는 솔직한 말씀도 하셨다.


“당연히 도움을 받고 싶으니 제가 여기에 있겠죠…” 나는 어리둥절해서 말했다.


교수님은 심지어 내가 어렵고, 내 앞에서 긴장이 되신다고까지 하셨다.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정신과 교수까지 나의 태도와 분위기에 저런 네거티브 한 기분이 든다면 다른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불편할까 하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내가 과거에 원했던 ‘만만해 보이지 않은’ 모습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나는 그저 나를 지키려고 갑옷을 입었지 다른 사람들을 억지로 밀어내려고 입은 것은 아니었다.


교수님은 선택하라고 하셨다.


평생 갑옷을 입고 살면 너무 무겁고 힘들겠지만, 내가 편하다면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 하지만 바뀌고 싶으면 도와주겠다고 하셨다.


아직 갑옷을 벗을 준비는 되지 않았지만 나의 갑옷을 다듬고 싶다고 했다.


“오케이. “


교수님은 끄덕이며 일어나셨다.


to be continued.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파란 하늘을 보고 멍 때린 날.                                 기분이 좋았다, 오랫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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