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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won Jun 22. 2023

정신병동에서의 일탈

어쩌다 정신병원 (5)

비록 나는 개방병동에서 있었지만 그래도 사회보다 제약이 많으니 갈수록 답답한 마음이 커졌다.


코로나 기간 동안, 나는 진짜 내 맘대로 살았다.


배달음식을 몇 년 동안 하루에 두세 번 시켜 먹었더니 살면서 처음으로 한 회사의 VVIP 골드 회원이 되었다.


위스키가 마시고 싶을 때 지갑 걱정을 외면한 채 그냥 생각 없이 마셨다. ‘절제’라는 단어에 치를 떨며, 내게 무조건 관대하자는 철없는 철학을 가지고 살았다. 어쩌면 스타트업 다니던 시절과 비교하면 안정된 수입 때문에 보상심리가 생겨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병원 입원 전, 마지막 기회라고 마신 칵테일


매일 7KM를 달려서 단단했던 허벅지는 어느 순간 할머니 다리처럼 되었고, 나는 친척언니의 말을 빌리자면… ‘미비’가 되었다. 배만 나온 ‘미국형 비만’이라는 뜻이다.



입원 삼일째, 도저히 병원 음식이 먹히지 않았다. 하지만 병원 구내식당은 거의 대부분 공사 중이었고,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병원 내 카페와 편의점이 전부였다.


으악!


습관처럼 배민 앱을 열었더니, 바로 햄버거가 눈에 보였다.


“그래… 이거지…”


주문을 하고 나니 정신이 돌아왔다.


이걸 어디서, 어떻게 먹지…?


간호사 쌤들은 자주 병실에 와서 내 혈압과 체온을 체크한다. 청소하시는 분들도 자주 들어오셔서 문은 불시에 열릴 수 있다. 하지만 병원 로비에서 먹자니 우연히 담당의사를 마주칠 위험이 있었다 (실제로 레지던트 쌤을 카페에서 만났다. 황급히 디카페인 커피라고 부연설명을 했다. 진짜였다).


햄버거 하나 먹으려고 이렇게 머리를 굴려야 한다는 사실에 현타가 왔지만, 그럴 생각을 할 시간이 없었다.


25분 후에 배민 배달원은 정확히 세브란스 병원 본관 로비 앞에 도착할 것이다.


“저 잠깐 산책 좀 하고 올게요” 하고 책가방을 매고 병동을 나왔다. 일부러 손에 책도 하나 들었다. 거짓말은 아니라고 합리화했다. 밖에 나가니, 산책이다.


본관까지 빠른 걸음으로 가서 차도 앞에서 쭈그리고 실시간으로 배민 앱을 체크했다. 오토바이가 신촌역쯤에서 계속 맴돌아서 맘이 탔다.


나는 생각보다 쫄보였다.


멀리서 부릉부릉 오토바이가 왔고 나는 직감적으로 내 치킨버거가 도착했음을 느꼈다. 햄버거는 대형 빨간 종이봉투에 담겨있었고 나는 괜히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불법밀수업자처럼 재빨리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검은색 책가방에 옮겨 담았다. 그리고 태연하게 병동으로 걸어갔다.


병실에 와서 침대 식탁 밑에 햄버거와 프라이를 숨기고 문을 닫았다. 햄버거를 와앙 한입 베어무니 “그래, 이거지!”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언제라도 밑으로 숨길 준비



정신과약이 줄 수 없는 행복함이 느껴졌다.


감자튀김을 먹는데 갑자기 청소하시는 분이 들어왔다.


꾹 다문 입에서 감자튀김이 흐물거리다가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청소하시고 나가신 뒤 남은 감자튀김을 입에 털어 넣다가 갑자기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오신 간호사 쌤이 눈이 마주쳤다.


간호사쌤은 못 본 척 휙 돌아서 나가셨고,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지금까지도 정확히 간호사쌤이 햄버거를 보고 나가신 지 확실하지는 않다. 대부분의 간호사쌤들은 배민을 향한 나의 간절함을 인지하고 계시긴 했다.


어쨌든, 나는 개미의 심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찝찝해서 나중에 레지던트 쌤한테 “맛있는 것”을 먹었다고 에둘러 이실직고를 했다.


결론적으로 열흘동안 한 두 번 배민을 했는데 하루에 두 번 주문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굉장한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생각보다 절제가 가능한 사람이었다.




아직도 금주 명령은 유효하다. 아사히 맥주가 가끔 눈에 아른거린다.


to be continued.




<어쩌다 정신병원> 매거진

https://brunch.co.kr/magazine/psychiatricw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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