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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won Jun 22. 2023

“제가 지능이 낮은가 봐요“

어쩌다 정신병원 (8)

정신병동에 입원한 지 5일째, 심리지능검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검사 시간만 4-5시간 소요되고 결과가 나오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담당의사가 어렵게 예약한 검사였다.

일단 다른 병원 몇 군데에서 ADHD 진단을 받고 삼 년째 약을 먹고 있는 나에게 4-5시간 동안 한 곳에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점이 굉장히 심적으로 부담이 되었다 (참고로 교수님은 나의 ADHD 진단을 유보하셨다).


ADHD 때문에 복용하고 있는 콘서타 54mg


나는 대학생 때부터 2시간짜리 수업을 전부 들은 적이 드물다. 한 시간만 지나면 집중은커녕 엉덩이가 들썩여서 매번 맨 뒷자리를 사수하고 쉬는 시간에 슬그머니 교실을 빠져나왔다.


영화관도 거의 안 간다. 러닝타임이 2시간보다 긴 영화는 보다가 포기하고 나온 적이 몇 번있다.


하지만 정확한 내 심리 상태를 알기 위해 이번 검사는 꼭 필요하다고 느꼈고, 껌과 음료수를 챙기는 등 나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상담실로 향했다.




상담실에서 심리검사를 담당하는 분이 나를 맞이했다.


검사를 시작하자마자 나는 당황했다. 초등학교 수준의 도형 시험이 나왔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교육열이 유난히 높았던 부모님 때문에 나는 시험 울렁증이 심하다.


특히 고등학교 유학시절에 조금이라도 성적이 내려가면 그날 바로 엄마에게 전화와 이메일이 왔다. 그래서 나는 시험의 중요도와 관련 없이 모든 시험을 비장한 마음으로 임하고 결과에 예민하다.


내가 시험과 평가에 얼마나 예민하냐면, 내가 지거나 낮은 점수를 받으면 스트레스를 받을 까봐 게임은 아예 손도 안 댄다. 대학교 때도 최대한 에세이 비중이 높은 수업만 골라 들었다. 다행히 이런 잘해야 된다는 강박 때문에 도박 중독 위험은 평생 없을 것 같다.




어쨌든, 이번 검사는 피할 수가 없었다.


첫 검사는 여러 모양이 그려진 주사위를 굴려서 예시 그림과 똑같이 조합하는 시험이었다. 아마 지능검사인듯했다. 순조롭게 흘러가다가 마지막 문제에서 버벅거렸는데 그 순간 나는 당황했다.


“선생님, 저 이거 너무 스트레스받아요. 저 바보인가 봐요. “


“편한 마음으로 하세요,” 건너편에 앉은 선생님이 부드럽게 말씀하셨다.


내가 받은 각종 심리 지능 인성 검사


시간이 갈수록 집중력을 요하는 검사들이 줄줄이 등장했다.


선생님이 숫자와 요일을 섞어서 알려주시면 바로 외워서 순서대로 거꾸로 말하는 시험까지는 할만했다.


단어 몇십 개를 들은 뒤 한참 후 생각나는 단어들을 전부 말하라고 했는데 한 2/5 정도만 기억이 났다. 설상가상으로 외워서 거꾸로 말해야 하는 숫자와 요일은 열개 이상으로 늘어났다.


예전 같았으면 손발을 동원해서 외우려고 기를 썼을 텐데 그때는 그냥 때려치우고 싶었다. 어려운 질문이 나오면 “포기! “하고 외쳤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죄책감과 자괴감이 동시에 엄습했다.


컴퓨터에 나온 색이 다른 도형을 보고 패턴을 유추하는 시험은 정답을 맞혔을 때 컴퓨터에서 크게 영어로 RIGHT이라고 소리가 나왔고 틀리면 단호하게 WRONG이라고 알려줬다.


WRONG이 연달아 나오자 나는 잔뜩 약 올라서 물었다. “이거 소리 끄면 안 되나요?”


안된다고 하셨다.


WRONG, WRONG, WRONG

WRONG, WRONG, WRONG

WRONG, WRONG, WRONG

WRONG, WRONG, WRONG


컴퓨터가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선생님, 제가 지능이 낮은가 봐요. “


체념하고 미리 선수를 쳤다. 선생님은 대답을 하지 않으셨다.


이 시험은 꽤 길었고, WRONG을 반복적으로 들으면서 진짜 내가 평균보다 지능이 낮을 것 같다는 합리적 의심에서 왜 이렇게 나는 멍청하지 하는 자괴감까지 이어졌다.




기억에 남는 검사 중 하나는 ‘로샤’ 검사이다.


먹물로 그린 것 같은 추상적인 그림 열몇 개 남짓을 보고 내가 떠오르는 것을 말하면 된다고 하셨다.


로샤 검사 그림 중 하나


나는 위에 그림을 보고 피가 이곳저곳 튄 살인사건 현장이 생각난다고 했다. 아래 빨간 부분은 허파 같다고 했다.


(로샤 검사에 나오는 다른 그림과 평과 기준은 앞으로 시험을 볼 수도 있는 분들을 위해 공유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 너무 과몰입해서일까? 그림에 있는 빨간색 부분은 전부 피같이 보인다고 말했다. 머쓱해서 “너무 유영철 같은 대답이었나요..?”라고 혼잣말을 했다. 선생님은 친절하게 아니라고 대답해 주셨다.




길고 긴 검사가 끝나고 나는 도망치듯이 방을 빠져나왔다.


결과가 썩 기다려지지 않는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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