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정신병원 (10)
정신과 의사들의 약 처방이나 진료 스타일은 생각보다 각양각색이다.
잦은 이사와 동네 병원 의사들의 개업으로 인해 부득이하게 삼 년 동안 7명의 정신과 의사를 거쳤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일반화를 해보자면
1. 나이가 드신 의사들은 좀 더 약 처방에 보수적이다.
2. 젊은 의사일수록 잔소리를 덜 하고 공감을 더 해주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양날의 검…)
3. 운이 없으면 정말 1분도 진료 안 보고 약만 주는 의사를 만날 수도 있다. 실제로 양평 모 정신과에는 약만 받으러 오는 할머니들이 바글바글했다. 바로 거르자.
4. 약을 늘려달라고 하면 안 된다고 딱 자르는 의사는 많이 없다.
5. 보통 5분, 길면 10분 정도 상담을 해주신다. 어떤 분은 예약제로 하셔서 20분 상담을 해주셨다. 드문 케이스고 감사했다.
2019년에 두세 알 먹던 아침약은 ADHD 진단과 불안, 우울증 악화로 인해 종류와 복용량이 두배로 늘어났고, 수면유도제는 나중에 졸피뎀을 포함해 4-5알을 왔다 갔다 했다.
아무리 등산을 하고 달리기를 해도, 밤에 잠이 안 오고 정신이 말똥말똥해서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겨우 얕은 수면으로 한 시간 자고 나면 아침이 왔고, 그렇게 제대로 잠을 못 자서 쓰러진 적도 있다.
항상 수면유도제가 떨어질 때쯤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최대 한 달 치를 처방받을 수 있는데 보통 나는 3주 치정도 처방을 받았다. 하루라도 없으면 잠을 못 자는데 동네 정신과는 미리 예약을 해야 해서 겨우겨우 취소건이 생기면 그때 대기하고 가거나 아니면 하루를 못 자고 컨디션을 망쳤다.
어느 순간, 내 수면유도제에는 졸피뎀이 추가되었다. 졸피뎀인줄 몰랐는데 내과 진료를 받으면서 현재 복용중인 정신과 약을 보여줬더니 내과 의사 선생님이 졸피뎀이 있다고 말씀해 주셔서 알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정신과에서 약은 대충이라도 설명해줘야 하지 않나…)
호기심에 졸피뎀에 대해서 더 찾아보다가 부작용에 대한 영상을 보게 되었다.
졸피뎀을 과다 복용한 환자들은 밤에 갑자기 일어나서 막 먹는다던지, 아니면 밖에 외출을 하거나 전화를 받고 나서 그다음 날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나는 권장량의 졸피뎀을 사용하고 있지만 비슷한 증상을 보인적이 있다. 잠을 자다가 반쯤 깬 상태로 동네 위스키 바에 가서 술을 한잔 마시고 온 적도 있고, 비몽사몽 이메일을 보낸 후 그다음 날 아차 싶은 적도 있다.
의사가 졸피뎀 대신 다른 약을 써보기도 했지만, 잠은 잘 오지 않았고 나는 어찌어찌 졸피뎀으로 돌아갔다.
정신병원 입원 후 교수님은 내 치료를 아예 백지에서 시작하고 싶다고 하셨다.
지금까지 투약기록을 드렸더니 약이 너무 많다고 하셨고, 제일 큰 문제점은 중복된 약들이 있어서 성능이 겹치는 약을 뺄 필요가 있다고 하셨다.
내가 아무리 잠을 자도 낮에 너무 졸리다고 말했더니 이 정도 약을 먹으면 졸릴 수밖에 없다고 하셨다.
평소 하루종일 비몽사몽해서 기면증을 의심하고 비싼 수면다원검사까지 한 생각이 나서 현타가 왔다.
그리고 나의 최애 약, 졸피뎀도 언젠가는 뺄 생각이라고 하셨다. 겁이 났다.
졸피뎀이 다른 수면유도제와 다른 점은, 잠에 이르는 시간을 단축시켜 준다. 나는 졸피뎀을 먹으면 10-15분 사이 깊은 잠에 들고, 덕분에 컨디션 유지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나중에 찾아보니 졸피뎀은 2-4주 정도 단기로만 복용을 해야 하는 약이었다 (이걸 말해준 의사는 없었다).
어쨌든, 입원 후 교수님은 약을 줄이셨고 내게 며칠간은 두통에 시달리고 감정이 더 요동칠 수도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 하지만 그 기간이 지나면 괜찮을 것이라고 하셨다.
말씀대로 한 삼일은 심한 두통에 시달려서 두통약까지 처방을 받았다 (정신병원에서는 변비약, 두통약 등 가벼운 약들도 전부 의사의 직접적인 처방이 필요하다).
신기했던 점은, 오전 대부분을 항상 흐릿하고 비몽사몽 하게 보냈던 내가 약을 줄이니 오히려 정신이 맑아진 기분이 들었다.
수면유도제는 졸피뎀을 남기고 다른 약을 조금씩 줄이셨는데 처음에는 잠이 안 오더니 나중에는 적응이 되었다.
평생 매일 10알씩 약을 먹고살아야 되는지 알았는데 줄일 수 있다는 희망을 찾아서 기뻤다.
상상하기 아직 어렵지만 언젠가는 약을 안 먹어도 괜찮은 날이 올까?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