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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won Feb 11. 2016

혼자 걸어가는 방법

홍콩에서의 설날 

나는 만 14살 때부터 유학을 했다.  별생각 없이 훅 떨어진 미국 시골에 위치한 기숙사 학교에서의 삶은 어린 사춘기 소녀에게 가끔씩은 너무나 외로운 곳이었다.


그 후로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서) 총 세 번의 전학을 갔고 살던 곳도 네 번 바뀌었다. 

항상 일, 이년 안에 끝나는 참치 통조림 같은 관계가 익숙해졌다. 


그리고 홍콩을 대학을 왔다. 현재 3.5년 정도 홍콩에 있었는데 14살 이후로 최장기간 거주 기록이다. 


설 연휴를 맞아 텅텅 비어버린 홍콩 거리를 걸으면서
나의 터벅터벅, 유일한 발걸음은  더욱 더 부각되었다. 


해가 저물자 사람들이 삼삼오오 꽃을 들고 집을 가거나 서로를 배웅하기 시작했다. (홍콩은 설날에 꽃을 사는 풍습이 있다. 설날을 앞두고 대형 (운동장 사이즈) flower market이 도시 곳곳에 잠깐 생긴다) 


Victoria Park Flower Market 



사실 나는 명절을 좋아하지 않는다. 외향적이지만 속으로는 은근히 내향적이라서 여러 사람들을 한꺼번에 만나기도 부담스럽고 졸업도 코 앞까지 다가온 만큼 지인들의 취업에 대한 질문도 살짝 두렵다. 


하지만 홍콩 밤거리에서 가족과 친구들이랑 행복하게 웃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면서 걷는 내가 살짝 처량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느 게 더 최악일까?


혼자여서 외로운 나, 아니면 사람들한테 둘려 싸여도 외로운 나 

요즘 졸업을 목전에 두고있어서 그런지 마음이 갈대처럼 계속 휘청거린다. 그래서 그런지 나무 막대기라도 찾아서 기대려는 내 모습을 보게 된다. 


개를 사볼까? 문을 열고 들어오면 날 반겨줄 텐데. 너무 가족과 멀리 있나? 한국에 다시 가야 될까? 

일찍 결혼을 해야 하나 하는 실없는 생각까지 한다. 이제 23살이 됐는데 너무나 먼 나라 이야기다.


센트럴 (Central)과 셩완 (Sheungwan) 사이, 그 어딘가


Admiralty (어드미랄티) 역에서 잠깐 만난 학교 선배를 배웅하고 집으로 오는 길에 길을 잃어버렸다. 

홍콩은 작지만 워낙 골목과 언덕이 많아서 아직도 접해보지 못한 곳이 많다.


계단을 오르고 막다른 골목을 마주하고 나서 나는 집까지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휴, 가족도 없고, 길도 잃고. 날씨는 더럽게 춥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텅텅 빈 길을 걷다 보니 좀 더 차분해졌다. 그리고 든 생각은


나는 혼자지만 혼자가 아니다. 

나는 홍콩에서 최고는 아니지만 최선의 설날을 보냈다.


가족들과 같이 있을 수 없고 떡국도 몇 년째 못 먹는 나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 불쌍한 유학생이다.


하지만 난 그 대신 남들과는 조금 다른, 나만의 설날을 보냈다.


유례없이 텅텅 빈 홍콩의 거리를 나 혼자 차지했고 운 좋게 딱 설날을 맞춰서 홍콩에 놀러 온 고등학교 선배와 근처 섬으로 잠시 놀러 가서 삼년만에 추억을 쌓았다. 


Cheung Chau Island (쳔차우 섬) 


또한 나는 설날에 당연히 받았을 취업에 관한 질문에게서 자유로워졌다. 

24시간을 내 맘대로 쓸수 있으니 밀린 드라마 (시그널!) 부터 빨래까지 일사천리로 해결했다.  


가족을 불러올 수도 없고 떡국도 먹을 수 없지만 나는 내 방식대로 알차게 영어가 전혀 안 통하는 동네 죽집에서 계란 죽을 맛있게 먹어보기도 했고 옆 테이블 할머니가 엄지손가락으로 강추하신  Zhaozi라는 홍콩 전통 떡? 같은 음식도 먹었다. 저녁 인파를 뚫고 간 상하이 음식점에서 만두까지 해결했다.  


행복한 설날을 위해서 이게 내가 홍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리고 나는 최선을 다했다. 



기숙사가 있는 Kennedy Town으로 걸어오는 길은 참 멀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 앞으로 갈 길도 참 멀 것이다 

(취업 원서를 준비하면서 이미 깨닫고 있지만...) 


하지만 고등학교 때 여러 학교와 미국/한국인 호스트 가정을 전전하면서 얻은 깨달음은


영원한 것은 없다.

비관적으로 들려오지만 사람들은 자의나 타의로 결국 떠난다.

늦게 떠나면 고맙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만큼 사람들도 자리가 여러 번 바뀐다. 


결국 믿을 것은 내 튼튼한 두 다리뿐!


나 자신에게 기대고 나 자신을 다독이면서 먼 길을 묵묵히 걸어갈 수밖에 없다.

운이 좋게 잠깐 기댈 사람을 만날 수도 있겠지만 결국 종점까지 나 혼자 걸어가야 한다.



앞 길이 멀면 멀수록 내 관절, 내 무릎, 내 발목을 잘 두드려보면서 

차분히, 슬퍼하지 말고,

LET'S MARCH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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