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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따뜻 Dec 18. 2020

재택근무와 육아

재택근무와 육아, 균형의 시소.  

3번째 코로나 시국이다. 또 다시 8살, 6살, 4살 아이들과 집콕 중이다. 그 사이, 나는 코로나로 일상이 무너지는 것에 무뎌지게 되었고, 또 대처하는 법도 제법 익히게 되었다. 그래도 무뎌지지 않는 것. 바로 재택근무와 육아의 양립이다.

 

나의 일과 육아아 공존하고 충돌하는 602호 아파트. 아이 셋과 집에서 일을 하려다 보니, 마음대로 진행되지 않는 부분들도 있고, 신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부분도 있지만, 되려 마음이 편한 부분도 있다. 1,2차 때엔 일을 좀 손에서 놓고 아이들에게 집중했기 때문에 집에만 있어야 하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줘야 하나, 무슨 놀잇감을 쥐어줘야 하나, 어떤 식으로 놀이를 꾸려 나가야 할까, 쉴 새 없이 고민했었고, 쿠X에서 쉴 새 없이 재료를 배달해서 날랐다. 아이들이 지루해하지 않고 평화롭게 노는 것, 그것이 엄마 노릇이라는 생각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다 보니 어느 날은 정말-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는 것 같은데 나만 지쳐 있는 날도 있었다. (아이들은 활어 상태) 

이번 3차땐 이렇게는 안되겠다 싶어서 아이들끼리 놀도록 두고, 1호기 온라인 수업만 좀 봐줘가며 재택 근무를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애들끼리 좀 놀라고도 두고, 티비도 보여주고, 게임도 하게 두고..... '나는 일하는 중이니까' 싶어 마음이 좀 더 편안한 구석이 있다. 


어제, 남편이 퇴근해서 그림 그리고 있는 1,2호기에게- 

"아빠 쉬는 날 아빠랑 하고 싶은 거 있으면 그림으로 그려봐~ 아빠가 해줄 수 있는 거면 해줄께."

 라고 화두를 던지자, 애들은 "정말? 정말? 다 해줄 거야? 으으음......." 어마어마하게 거대하고 큰, 빅픽처를 그리려는, 피카소보다 깊은 고뇌에 빠진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이내 곧, 아빠 아빠 다 그렸어~~~ 하는 소리가 들린다. 저녁밥을 하며, 과연 아이들이 뭘 하고 싶을까? 하며 안 듣는 척, 귀를 쫑깃 세웠다. 


아이들은 한참 고심하고 상의한 끝에 가족끼리 아이스크림 사먹는 일과 둘러 앉아 빙고 게임을 하는 장면을 그려냈다. 남편의 탄성이 들린다. "에이~ 이 정도는 당연히 언제든 할 수 있지!"





뜨-끔-했다.





코로나로 롯X월드나 이런 건 고사하더라도, 못해도 장난감 사러 가기, 라던지 아빠 몸놀이라던지, 뭔가 그 정도의 일은 그릴 줄 알았다. 어른의 에너지가 돈이 필요한 일을 원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해주기엔 좀 어려운 일. 혹은 내가 해주기엔 거창한 일. 그런 것들을 원하겠지.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너무 소소한 것. 30분만 내어도 해줄 수 있는 일. 해준다기보다 같이 즐길 수 있는 것. 그런 것을 아이들은 엄마의 등 뒤에서 원하고 있었다. 


 항상 베란다에서 나무를 깎는 엄마에게 - [오늘은 엄마 일하는 날이야, 언제 일 끝나? 얘들아 오늘은 안 끝나, 그럼 내일은? 내일도 일하는 날이야, 그럼 아빠 쉬는 날은? 아빠 쉬는 날은 엄마 본격적으로 일하는 날이야.] - 나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을 쪼개서 일에 소비하고 있는 엄마에게, 

 이 아이들은 같이 둘러 앉아 아이스크림은 먹는 일 정도, 같이 빙고 게임 하는 정도의 일을 함께 하자고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나는 육아와 일을 양립하고 있다, 라는 방패 뒤에 숨어 아이들과 시간 보내며 에너지 쏟는 일을 기피하고 있는 것 아닐까. 1,2차 때 아이들에게 에너지를 쏟아가며 고갈되었던, 애미의 무기력함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방어 기제 같은 건 아닐까. 혼자 생각해 본다. 





일과 육아, 양립은 어렵다. 양립하고자, 잘해내려 할수록 균형은 깨지기 마련이다. 나는 완벽한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이 아님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지금 나의 일에 작은 시간 한톨 한톨 모아 할애하는 것처럼, 아이들에게도 작은 시간 하나하나 애써라도 할애한다면, 아이들에게는 분명 - 아주 먼 훗 날, 이 코로나 시국을 아이들끼리 추억할 때, 아- 그 때 참- 집에서 내내 뒹굴거리면서 엄마와 아이스크림도 양껏 먹고, 엄마랑 빙고 게임도 하고, 아주 좋을 때였어. 다시 그렇게 엄마가 해주는 밥 얻어 먹어가며 편하게 놀아보고 싶다!!! 그치? 라고 이야기 하게 될 것이다. 


코로나 시국이 아이들에게 집에서의 따뜻한 추억이 될 수 있도록. 꼭 멀리 가는 것만이 추억이 되어주는 것이 아니고. 꼭 해외 여행이 진귀한 경험이 되는 것이 아니고. 일과 육아가 충돌하는 602호에서도 추억을 만들 수 있고, 가족들끼리 부딪히며 경험을 쌓을 수 있음을. 지금 흘러가는 이 시간을 - [아이들에게만 에너지를 사용해서 내가 고갈 되지 않고, 일에만 시간을 투자해서 아이들이 공허해지지 않게] -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추억 페이지가 달라질 것이다. 

 

뒹굴뒹굴, 엄마의 집밥이 있는, 엄마와 게임도 할 수 있었던, 온기가 있는 602호로 기억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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