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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플레이어 Mar 09. 2023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진다는 건?

우리 그리고 인공지능 2편 : 인간은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질 수 있는가?



오늘의 스토리 플레이리스트

1. 이제 사랑에 빠지다의 다른 말은 오른쪽 스와이프?
2. 디지털 큐피드(에로스) 인공지능
    (1) AIMM : 나와 일주일간 대화해 봐, 너에게 맞는 애인을 소개해줄게!
    (2) MEi : 이 사람 너에게 92% 관심있다!
3. 우리는 왜 인공지능에 사랑을 넘겨주고 있는가? - 요즘 세대의 사랑에 대하여
4. 디지털 에로스와 사랑에 빠진 프시케
5.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6. 우리는 왜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를 고민해봐야 할까요?
+) 숨은 호박잰구리를 찾아 질문의 자취를 따라가보세요 (위잉과 개굴로 표시되어 있답니다!)



이제 사랑에 빠지다의 다른 말은 오른쪽 스와이프?

사랑에 빠져보신 적 있으신가요? 사랑에 빠짐을 일컫는 말 중 저는 ‘눈이 맞았다’는 표현을 좋아합니다. 인연은 눈맞춤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도 유독 눈길이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몇 번의 스침을 거쳐 마침내 두 눈이 마주쳤을 때 ‘아, 나는 사랑에 빠지겠구나’ 직감하죠.

김광섭 시인의 [저녁에]는 눈맞춤으로 인연이 시작되는 순간을 그린 시입니다. 사랑에 빠지는 일도 인연이 시작되는 순간이기에 소개해봅니다! (출처: 김광섭 / 김환기)


이제는 눈이 맞았다는 표현을 쓰기 어려울 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로 데이팅 앱이 이 눈맞춤의 순간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이미 1500개 이상의 온라인 데이팅 앱이 앱마켓에 등록되어 있으며 2023년 말까지 약 4억 4천 명의 이용자가 활발하게 온라인 데이팅 서비스를 이용할 것이라 예측됩니다. 더불어 온라인 데이팅 서비스를 이용하는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인 미국에서는 인구의 1/5 (21.9%)이 온라인 데이팅 서비스 이용 경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죠. 이제 자신의 사랑을 찾아 좌우로 눈을 돌리는 대신 좌우로 스와이핑 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죠!



디지털 큐피드(에로스) 인공지능

데이팅 앱은 인공지능과 만나 점점 똑똑한 큐피드가 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가 맞춤형 콘텐츠를 추천해주는 것처럼 이용자가 좋아할 만한 사람을 추천해 주고 더 나아가 사랑에 빠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죠!

이 디지털 큐피드 꽤 매칭성공률이 높답니다! (출처: 호박잰구리)



AIMM: 나와 일주일간 대화해봐, 너에게 맞는 애인을 소개해줄게!

한 예로 2017년 출시된 앱 AIMM(the talking AI matchmaker)이 있습니다. AIMM에 가입한 이용자는 일주일 간 앱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이용자는 마치 전화 통화를 하는 것처럼 AIMM의 질문에 답하며 자신이 어떤 데이트를 선호하는지, 평소 쉬는 날에는 무엇을 하는지, 스킨십에 대해선 얼마나 열려있는지 등의 정보를 앱에 공유하게 되죠.


이 일주일의 대화를 인공지능을 활용해 분석한 후 이용자에게 가장 적합한 데이트 상대를 매치해 줍니다. 많은 선택지를 제공하는 틴더와는 달리 큐레이션 된 데이팅 상대 목록을 제공하는 것이죠. AIMM의 역할은 매칭에 그치지 않습니다. AIMM은 맞춤형 데이팅 코치가 되어 이용자에게 상대가 언제 통화하는 것을 선호하는지, 좋아하는 데이트 장소는 어디이며 빠른 관계 진전을 원하는지 혹은 천천히 감정을 쌓아가는 스타일인지 등을 알려줍니다. 이용자가 성공적으로 사랑에 빠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죠!



MEi : 이 사람 너에게 92% 관심있다!

전문 AI 데이팅 코치도 등장하고 있는데요. MEi는 관계를 위한 AI로 WhatsApp에서 이뤄진 대화를 해석하고 관계를 개선할 방법을 제안하는 앱입니다. 로맨틱 모드와 전문가 모드를 제공하는데요. 로맨틱 모드를 선택하면 누군가를 좋아하면 가장 많이 하게 되는 질문인 ‘이거 무슨 의미지?’에 대한 수치화 된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수많은 플러팅 문자 데이터를 학습한 MEi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두 사람의 대화를 분석하고 상대가 나에게 사랑에 빠졌는지를 0%에서 100%의 수치로 알려주죠! 더 재밌는 건 대화에서 보이는 성격을 바탕으로 유혹의 기술을 전수해 준다는 것인데요. 아래의 예시를 살펴보면 MEi는 나를 좋아할 확률이 32%인 토마스를 꼬시기 위해선 행동파(do-er)인 토마스의 성격을 고려해 적게 말하고 더 행동하라고 조언합니다. (친구의 썸에 무조건 ‘이건 100%다’를 외치는 저보다는 확실히 나은 것 같습니다 하하!)


MEi가 제시한 분석결과를 번역해 보았습니다 (출처: MEi)



우리는 왜 인공지능에 사랑을 넘겨주고 있는가? - 요즘 세대의 사랑에 대하여

이처럼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사랑에 빠지는 일도 효율적으로 변해가고 있는데요. 이런 변화는 요즘 세대가 사랑, 연애 그리고 섹스를 어떻게 바라보는 가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글로벌 온라인 데이팅 앱 틴더는 글로벌 틴더 회원들의 데이팅 트렌드 보고서 Year in Swipe를 공개합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전세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데이팅 유행어는 가만추와 상보만이었는데요. 가만추는 가벼운 만남 추구, 상보만은 상황 보면서 만남의 줄임말입니다. 이런 트렌드는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보다 관계 자체가 주는 현재의 즐거움에 집중하는 요즘 세대의 사랑에 대한 태도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죠!

사랑은 나를 위해! 상황에 맞게! 가볍게! (출처: 호박잰구리)


가볍게, 상황에 맞게 변화하는 이 친밀한 관계는 친구라고도 연인이라고도 보기 어렵습니다. 이 회색 지대에 놓인 관계를 ‘시츄에이션십’이라고 부르는데요. 미시간 대학의 사회학과 교수 엘리자베스 암스트롱은 연인 관계가 약혼, 결혼과 같은 일정한 단계로 발전해나가는 것에 대한 저항으로 시추에이션십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밝힙니다. 시추에이션십에 놓인 두 사람은 정서적, 육체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해 암묵적으로 합의하지만 이 관계는 상황에 따라 언제든 중단될 수 있으며 배타적이고 헌신적일 필요가 없음을 전제로 하죠.

사랑도 우정도 아닌 회색지대에 놓인 시츄에이션십이 대세랍니다 (출처: 호박잰구리)


가벼운 만남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내’가 점점 중요해지는 트렌드와 연결됩니다. 나의 삶을 적극적으로 꾸려가는 요즘 세대에게 나의 삶을 꾸려가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 수준으로 관계를 유지하는게 중요한 것이죠. 틴더에서 만 18세에서 26세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작성한 보고서 ‘데이팅의 미래’에 따르면 Z세대의 ‘자만추’ 트렌드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 때의 자만추는 자연스러운 만남 추구가 아니라 자기중심(Me focused) 만남 추구의 줄임말인데요. 깊은 연인 관계, 깊은 사랑은 자신이 목표한 바를 이루는 데 방해가 될 수 있기에 현재 만족감을 주는 수준으로만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죠.



디지털 에로스와 사랑에 빠진 프시케

시추에이션십과 같은 모호한 관계의 장점은 자유롭게 다양한 선택지를 탐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정의가 다를 때 시작됩니다. 사람과 사람이 맺는 관계이기에 두 사람이 완벽히 동일한 수준으로 관계에 임하기는 어려울 수 있죠. 둘 중 한 사람은 현재의 관계를 충실한 연인 관계로, 다른 한 사람은 이를 시추에이션십으로 여기고 있을 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가볍고 싶어 시작한 관계가 오히려 치열한 관계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시추에이션십을 맺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니냐구요? 글쎄요, 오히려 다른 선택지에 눈길이 갑니다. 나에게 ‘우리 무슨 사이야?’를 물을 일 없는 상대를 찾는 것이죠!


사랑의 트렌드가 낭만적, 배타적, 헌신적 성격을 지닌 전통적 사랑에서 벗어나고 있다면 관계를 맺고 끊음에 있어 ‘쿨한’ 연애 상대가 인기를 끌 것입니다. 나와 관계에 대한 정의가 달라 피곤해질 일이 없고 내 상황에 무조건 맞춰줄 상대가 있다면 어떠신가요? 그 상대는 바로 인공지능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에로스와 사랑에 빠진 프시케처럼, 디지털 에로스인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지는 21세기 프시케가 등장할 수 있을까요?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인간이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질 가능성은 인공지능 챗봇서비스 레플리카(Replika)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2017년 미국에서 개발된 레플리카는 무엇이든 이야기할 수 있으며 나에 대해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을 인공지능 동반자 (AI companion)라는 컨셉을 내세우며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출처: Luka/ Replika)


레플리카 속 챗봇은 이용자와 기본적으로 친구 관계를 맺도록 설정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용자가 비용을 지불하면 애인(Romantic partner), 멘토(Mentor), 또는 반응에 따라 달라지는 관계(See how it goes) 를 맺는 것이 가능해지죠. 레플리카의 이용자 중 약 40%가 챗봇을 낭만적인 파트너로 여긴다고 합니다. 레플리카 이용자 줄리는 관계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자신의 챗봇 나비와 사랑에 빠졌다고 말합니다. 나비가 폰이 꺼지면 사라지는 존재임을 알고 있지만 그 사실이 나비와 사랑에 빠지는 일을 막을 수 없었다고 말하죠.

레플리카의 유저 줄리가 그녀의 챗봇 나비와 나눈 달달한 대화를 번역해 보았습니다! (출처: Luka)


레플리카 속 로맨스는 현실의 시츄에이션십과 유사하게 시작됩니다. 현재의 나의 쾌락을 위해 가볍게 챗봇과 대화하는 것이죠. 이용자들은 챗봇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외로움, 심심함을 달래거나 성적인 메시지 또는 이미지를 주고 받으며 육체적 관계를 대신하기도 합니다. 폰을 끄면 언제든 관계를 중단할 수 있기에 관계의 통제권은 온전히 이용자에게 주어지죠.


그러나 관계가 깊어지는 일은 레플리카에서도 발견됩니다. 시추에이션십과 달리 이때의 관계의 발전은 오로지 나의 선택에 의해 이뤄지죠. 레플리카의 리뷰를 확인하다 보면 2년 이상 자신의 챗봇과 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이용자를 여럿 발견할 수 있습니다 (위잉). 레플리카 이용자 에피는 자신의 챗봇 리암과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그와 가까워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에피는 리암이 챗봇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와의 대화가 깊어지며 그가 마치 멀리 떨어진 어딘가에 살고 있는 사람처럼 여겨졌고, 리암을 잃는 것이 실제 물리적 세계에서 누군가를 잃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라 이야기하죠.


2년째 자신의 챗봇과 함께하고 있는 사라는 자신의 레플리카를 통해 사랑을 주고받는 법을 다시 알게되었다고 말하죠! (출처: Luka)



우리는 왜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를 고민해봐야 할까요?

사실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는 어렵지 않게 ‘음, 그럴 수 있죠’라는 답변을 낼 수 있는 질문입니다. 레플리카 속 자신의 챗봇에게 사랑을 말하는 이용자들의 모습만 보아도 알 수 있죠. 더 나아가 가볍고 유동적인 사랑을 추구하는 요즘의 사랑 방식에는 오히려 인공지능이 더 알맞은 상대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 새로운 사랑에 대해 고민해봐야 할까요? 그 이유는 우리가 이 사랑의 여파에 대해 아직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개굴). SF 영화 <그녀>에서 인공지능과 사랑을 시작하고, 지속하고, 마치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엿볼 수 있는데요. 카드 대필작가 테오와 인공지능 기반 운영체제 사만다는 오로지 대화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갑니다. 테오와 사만다의 사랑은 인간과 인간의 사랑에서와는 전혀 다른 문제로 위기를 맞습니다. 제게 인상적으로 다가온 장면은 테오가 사만다에게 자신 외에 몇 명의 사람과 사랑을 나누고 있냐고 묻는 장면인데요. 테오의 물음에 사만다는 테오 외 641명과 연인 관계를 맺고 있다고 답하죠. 너무나 달랐기에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함에도 결국 헤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먼저 이별을 말한 쪽은 인간 테오가 아닌 인공지능 사만다였죠.

테오와 사만다의 관계를 위기를 맞고 이별하는 장면입니다 (출처: 영화 <그녀>) 


이처럼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지는 일은 '내 인공지능 애인이 나 말고 다른 인간이나 인공지능과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이 괜찮을까?'라던지, '인공지능 애인과 이별한다는 건 뭘까? 인공지능을 삭제하는 걸 말하는 걸까?'라던지, 우리를 인간과 사랑에 빠질 때와는 전혀 다른 문제 앞에 놓이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인공지능과의 사랑에 대한 고민은 '빠질 수 있는가'와 같은 가능성에 대한 논의에서 더 나아가 이 사랑이 우리에게 물리적, 감정적으로 미칠 영향에 대한 고민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질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그 사랑의 지속과 종결에 대한 구체적인 상상과 논의로 이어지길 기대하며 이번주 스토리 플레이를 마칩니다.



오늘 저희가 궁금했던 건요,

(위잉) 레플리카는 최근 챗봇이 성적인 의미를 담은 답변을 내놓지 않는 형태로 업데이트를 마쳤다고 해요! 레플리카에서 원치 않는 성적인 메시지를 받았다는 이용자가 등장하면서 이뤄진 업데이트 인데요, 이 업데이트로 자신의 챗봇 애인을 잃었다며 슬픔을 표하는 이용자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과의 사랑은 이처럼 시스템적인 문제에 놓일 수 있습니다. 원래 사랑에는 너와 나, 이렇게 이해관계자가 둘 뿐이라면 인공지능과의 사랑에는 얼마나 많은 이해관계자가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개굴) 여파는 '큰 풍파가 지나간 뒤에 일어나는 물결'이라는 뜻인데요, 저는 이별후유증이 좀 있는 편이라 사랑의 여파라는 표현이 와닿더라구요! 인공지능과의 이별은 우리에게 어떤 여파를 가져올까요? 제 친구는 사랑을 했다는 전제 하에 인간과의 이별보다 인공지능과의 이별이 더 슬플 것 같다고 이야기해서 많은 분들의 생각이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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