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의 외투를 벗긴 것은 바람이 아니라 햇살이다
“근무시간에 말없이 자리를 비우는 후배한테
이석 사유를 미리 알려달라고 하면 꼰대일까?
어느 날, 단체 메신저에서 보수적인 공기업을 다니는 친구가 물었다.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업무 누락 없고, 이석 중에 연락만 잘 되면 문제없을 듯.” “급한 일 아니면 30분 이상 자리 비울 때는 대직자한테 알리는 게 예의지.” “도와주고 싶다는 뉘앙스로 요즘 업무에 어려움 없는지 물어보고 반응을 살펴봐.” 그러자 친구가 말했다. “사실 어떻게 얘기하는 게 덜 꼰대스러울까 고민 중이야.” 이 문제를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꼰대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팀장도 이 사실을 좋지 않게 보고 있으니 후배를 위해 얘기해주기로 마음을 먹었다는 것이다. 다음 날, 후배의 예상하지 못한 반응에 놀란 친구는 단체 메신저에서 마음의 상처를 토로했다.
나도 우당탕탕 햇병아리 시절, 선배들에게 이런저런 피드백을 많이 받았다. 대부분 신입의 실수이고 불찰이었지만, 그중에는 이해가 잘 안 되는 것도 있었다. 이를테면, “화장실이나 다른 층에 회의 갈 때 실내 슬리퍼 신지 마세요.” (모두 실내인데 왜 안되지?) “너는 너무 고자세야, 좀 낮춰봐"(무엇을 어떻게 낮추라는 거지? 왜 낮춰야 하지?) 등이다. 차마 “왜요?”라고 묻지 못하고, “네,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대답으로 순간을 넘겨버렸다. 피드백 받은 부분에 대해 신경을 더 썼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해서인지 바꾸는 것이 쉽지 않았다. 연차가 어느 정도 쌓인 지금도 선배들을 대할 때면 긴장되는데, 연차만큼 생긴 후배들 대하는 일은 더 어렵다. 모르는 것을 물어봐야 할 때 ‘이런 것도 모르나?’라는 무시를 받을까 봐 눈치를 살피고, 반대로 무언가를 알려주어야 할 때는 꼰대 같아 보일까 봐 주저하는 이중 부담에 시달린다. 고민에 고민을 하다 보면 ‘업무상 꼭 필요한 말만 최소한으로 나누고, 특히나 조언 비슷한 것은 하지도 말고 듣지도 말자'라는 태도가 오히려 안전하리라는 생각에 다다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주변에 조언을 구하는 편이다. 지금 당장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언젠가 도움이 될지 모르는 소중한 조언과 지혜마저도 꼰대 검열에 걸러지는 것이 아쉽다. 연차가 쌓일수록 나의 실수를 바로잡아주는 사람이 점점 없어지는 현실이 슬프다. 꼰대가 되어가는 줄도 모른 채 꼰대가 되어버리는 것이 무섭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도 실수할 수 있고, 틀릴 수 있고, 여전히 모르는 게 많은 사람인데, 나만 믿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신 쓴소리도 ‘봄날의 햇살'처럼 따뜻하게 해주는 사람들을 가까이한다.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속단 혹은 날 선 지적이나 어쭙잖은 간섭은 흘려듣고, 내가 믿을만한 사람들에게 묻는다. 곤란한 일이 있을 때,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이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명확한 답 대신 좋은 질문으로 내가 스스로 생각해보게끔 해준다는 점이다. 내가 듣고 싶은 말만 골라 듣고,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들만 곁에 둔다는 뜻이 아니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조심스럽고 정성스럽게 말해주는 사람들, 누구나 할 수 있는 빈 말이 아니라 내가 애쓴 것을 알아봐 주고 감탄해주는 사람들을 나는 더 신뢰한다.
회사 동료에게 이러한 배려를 바라기 쉽지 않지만, 그런 사람이 결코 없지 않다. 마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우영우(박은빈 분)에게 가만히 있지 말라며 대응방법을 알려주고, 우영우를 괴롭히는 사람에게 대신 화를 내주는 ‘봄날의 햇살’ 같은 동료 최수연(하윤경 분)처럼. 만일 그런 사람이 주변에 없다면,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주자. 그렇다고 모든이에게 친절을 남발하는 예스맨이 되라는 말이 아니다. 동료의 모든 면면을 좋아할 필요도 없다. 일은 깔끔하게 동료와의 관계는 담백하게 조언은 따뜻하게. 나그네의 외투를 벗긴 것은 바람이 아니라 햇살이다.
연차가 쌓일수록 말 한마디에 더 신중해져야겠다고 생각한다. 말의 무게가 이전과 같지 않기때문이다. 신지영 교수가 『언어의 높이뛰기』에서 지적한 것처럼 나이가 권력인 우리 사회에서 ‘선량한 연령 차별주의자'가 되는 일을 경계하고 싶다. 꼰대가 공공의 적이라면, 진짜 빌런은 악의 없이 부주의하고 무례한 사람이 아닐까. 나도 회사에서는 조심하는 차원에서 동기들을 제외한 모든 동료에게 높임말을 쓰는데, 오히려 이것을 정 없게 느껴진다며 불편해하거나 서운해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나에게 반말은 회사에서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친밀한 표현이다.
* 이 글은 2022년 9월 11일 한국일보 <유어바이브>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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