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깨면 병아리 남이 깨면 프라이
4년 차가 되던 해, 회사가 팔렸다. 뉴스에서만 보던 구조조정이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었다. 사모펀드에 팔린 이후 희망퇴직이 대규모로 이뤄졌고, 수시로 조직개편이 일어났다. 영향은 당시 비교적 저연차였던 나에게까지 미쳤다. 마케팅 부문에서 팀당 한 명씩 차출하여 상대적으로 인력이 많이 필요한 디지털부문으로 보낸다고 했다. 누군가는 커리어를 전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했고, 누군가는 필요 없는 인력의 방출이라고 했다. 이 이야기를 전하는 팀장님의 표정이 사뭇 어두웠다. 그래서 (어)중간(한) 연차인 나는 아니길 바랐다. 그런데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지. 며칠 뒤 팀회의에서 팀장님은 이번 인사이동의 주인공이 나라고 공식 발표했다.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위로했지만 당사자인 나는 마음이 착찹했다. 자발적인 이직의 경험은 있었어도 타의에 의한 발령은 처음 겪는 일이라 무척 혼란스러웠다.
이번 결정을 내린 임원분께 면담을 요청했다. 임원분은 자신의 팀장 시절 후회되는 일 중 하나가 ‘같은 팀원과 너무 오래 함께 일했던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오래된 팀원과 일하면 히스토리를 쉽게 파악할 수 있어서 상사에게는 좋지만, 정작 커리어를 확장해야 하는 팀원에게는 결코 좋은 일이 아니라고 했다. 저연차일 때 다양한 업무를 경험하며 기술과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때 나는 생각이 달랐다. 기존에 있던 브랜드팀에서 연차를 더 쌓아서 그 분야의 스페셜리스트가 되고 싶은데, 어중간한 연차에 부문이 바뀌어서 혼란스럽다고 말씀드렸다. 임원의 명쾌한 답이 돌아왔다. “정말로 그 분야의 스페셜리스트가 되려면 브랜드 컨설팅사나 광고회사로 이직을 해야지, 이 회사에서 브랜드팀은 지원부서라 그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할 수 없어. 대신 여기에서 계속 커리어를 이어가려면 다양한 부문에서 실무 경험을 쌓아서 쓰임 많은 제네럴리스트가 되어야지.” 나는 엉뚱한 곳에서 엉뚱한 고민을 하고 있었음을 깨달았고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아무런 준비 없이 새로운 직무에 던져진 나는 잘 적응하지 못했다. 처음 다뤄보는 데이터 툴을 이용해 숫자와 데이터로 결과를 내는 일 앞에서 나는 고장 난 컴퓨터처럼 느리고 버벅거렸다. 새로운 일에 적응하는 것도 힘겨운데, 계속되는 인사 발령으로 세 달에 한번 꼴로 팀까지 바뀌었다.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노력해도 팀이 바뀌고 담당 업무가 달라지면 또 새로운 실수가 이어졌다. 성과 없는 야근과 불필요한 주말근무 속에서 허우적대는 나를 주변에서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일을 못해서 몸도 고되고, 마음도 힘들었다.
『퇴근길의 마음(나를 잃지 않으면서 꾸준히 일하는 법)』에서 이다혜 작가는 새로운 일을 배울 때 1년은 참고해보라고 말한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두려움 없이 일을 대하려면 최소한의 숙련도를 갖출 시간이 필요하고, 그래야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막상 그 1년이란 시간을 보내는 동안은 하루하루가 고역이다. 못난 나를 견뎌야 하는 시간이 무척이나 괴롭다. 하루하루 허덕이며 1년을 버티고 나서 나도 판단을 하기 시작했다. 또다시 조직개편으로 팀 이동을 하게 된 순간, ‘이동하지 않고 싶다'라고 팀장님께 의견을 말씀드렸다. 아직 업무툴이 익숙하지 않은 나는 기존 팀에 남아서 루틴 한 업무를 하는 것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고 말씀드렸다. 팀장님은 나의 뜻을 존중해 주셨고,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휩쓸리던 소용돌이 안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마음 둘 곳 없이 위태롭던 그 시절을 버티게 해 준 것이 있다. BTS와 헤르만 헤세의 소설『데미안』이다. 소설 데미안은 고등학생 때 처음 읽었는데, 별로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 이 소설을 모티브로 한 BTS의 정규 2집 《WINGS》의 쇼트필름 영상과 타이틀곡 ‘피땀눈물'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자괴감에 괴로운 퇴근길에 늘 집 앞 코인노래방에 들러서 앨범 수록곡 ‘둘! 셋! (그래도 좋은 날이 더 많기를)’을 열창하고 집에 들어갔다. (‘꽃길만 걷자 그런 말은 난 못해’로 시작하는 명곡. 당시 내 마음을 완벽하게 대변) BTS의 세계관을 좀 더 이해하고 싶어서 『데미안』을 다시 읽었다. 소설의 주인공 싱클레어가 큰 알을 깨고 나오려는 새의 그림을 그려서 데미안에게 보내고, 얼마 후 받은 쪽지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누구든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여야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
싱클레어와 데미안이 주고받은 그림과 쪽지를 보며 ‘줄탁동시(병아리가 부화하려면 밖에서 어미가 쪼고 안에서 스스로 깨고 나오는 일이 동시에 일어나야 한다)’의 진리를 다시 생각해본다. 어미가 밖에서 쪼는 것과 같은 외부 자극이 늘 유쾌한 것은 아니다. 소설과 BTS는 그 자극을 유혹, 거짓, 악, 배신, 허무, 방황 등으로 묘사한다. 알 속에서는 이런 자극이 실제보다 더 두렵고 무섭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러한 고통을 겪고 스스로 깨닫는 과정도 성장의 일부라는 가르침을 나이 서른을 앞두고 아이돌을 통해 배우게 될 줄이야.
이제는 여기에 나름의 현실감각까지 얹어본다. ‘남이 깨면 프라이, 내가 깨면 병아리' 회사가 팔리고, 갑작스레 발령이 나고, 직무가 바뀌고, 이리저리 부유하는 동안 나는 서서히 익어갔다. 프라이가 되어버리기 전에 ‘더 이상은 안 되겠다'라고 외친 선언이 나에게는 기존의 세계를 깨고 나오는 순간이었다. 상황에서 빠져나와 한발짝 떨어져 보니 나를 두렵게 했던 외부 자극이 잠시 지나가는 커다란 파도였다는 것이 그제야 보였다. 그리고나서야 비로소 평정심을 되찾았다. 이후 그 팀의 팀원들도 알아서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났고, 팀은 공중분해되었다. 만일 내가 계속 휩쓸리며 그곳에 남아있었다면 아마 프라이가 되어버리지 않았을까. 시련은 한발 더 나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자극이기도 하다. 모든 괴로움이 해로운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어려움이 닥치기를, 점점 더 큰 어려움이 생길 텐데 나의 내면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단단해지기를 바라며 오랜만에 인생 곡 ‘둘! 셋!’을 다시 들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mE9f-TEutc
* 이 글은 2022년 9월 25일 한국일보 <유어바이브>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s://yourvibes.co.kr/?p=320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