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무기가 될 때
회사에서는 절대 울지 말아야 겠다. 실수한 후배에게 단호한 어조로 말했더니 눈물을 보여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어느 선배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선배는 걸핏하면 우는 여자 후배보다 서스름없이 대해도 뒤탈 없는 남자후배가 편하다고 덧붙였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이 회사 생활의 걸림돌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물로 곤란한 상황을 넘기거나 누군가를 난처하게 만들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사회생활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팀회식 자리에서 불쾌한 일을 겪었다. 바로 다음 날, 파트리더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이미 이상하게 들림) 우리 회사에 더 이상한 사람들도 있어요.(이게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팀장님은 그런 부류의 사람은 아니니까 너무 상처받지 말아요.(이미 상처 받음)" 파트리더의 첫마디에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한쪽의 이야기만 듣고 판단할 수 없으니 좀 더 알아보겠다며 나에게 휴지를 건네주며 말했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으니까 먼저 나갈게요. 눈물 닦고 진정되면 나오세요." 혼자 남겨진 회의실에서 누가 듣을세라 숨죽여 울다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회의실을 나왔다. 이어서 문제 자리에 동석했던 동료의 파트리더에게도 보고했다. 회사 앞 어느 골목길에서였다. “이건 정말 생각해서 해주는 말인데,(과연 정말 후배를 위함이었을까 일을 키우지 않기 위함이었을까) 이제 막 회사생활 시작한 신입사원이 이런 일로 구설수에 오르면 보기 좋지 않아요. 내가 조용히 알아볼 테니,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감정 추스르고 들어와요.” 그리고 또 혼자 남겨졌다. 그 와중에 누가 알아볼까봐 사원증 목걸이를 안 보이게 손에 쥐고 회사 앞 골목길을 정처없이 헤매며 한참을 울었다.
눈물이 회사에서는 약점이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한 순간이었다. 그 후 우는 동료를 우연히 볼 때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응은 ‘못 본 척'이었다. 울며 화장실로 뛰어가는 동료를 보고도, 화장실 한켠에서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려도 못 본 척, 못 들은 척했다. 왜 우는지 이유를 묻지도,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내가 해결해줄 수 없다면 왜 우냐고 묻는 것도 결례라고 생각했다.
한 달 뒤, 파트리더는 문제의 동료를 대신해 나에게 사과했다. 다시는 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때 재발할 경우 대응책에 대해 서면으로 약속을 받아놨어야 했는데) 회사생활의 모든 날이 좋을 수는 없다며 일부 안 좋은 일 때문에 전체를 망치지 않길 바란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그리고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일상이 이어졌다. 그때 나는 일상이 무너지는 것이 두려웠다. 사과를 받고 조용히 넘어가면 일상을 지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이후에도 그 동료들의 문제 행동은 반복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에 휩싸여 괴로운 나날을 보냈다. 그런 나에게 ‘콜럼버스의 달걀'과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같은 전환의 계기를 안겨준 책이 있다.
직장에서 우는 여자 좋아하지 않았다. 세간에서 ‘여성성’이라 부르는 것을 무기로 삼다니 비겁하다 생각했다… 이 생각을 바꿔 준 건 회사의 여자 상사 한 분. 무슨 말 끝에 “저는 회사에서 우는 여자 정말 싫어요”했더니 그분은 가볍게 미소 지으며 “울어도 돼”하셨다. 회사에서 울어도 된다니, 그런 조언을 들어본 게 처음이라 “네? 울어도 돼요?”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더니 “응, 대신 크게 울어. 남들 다 보는 데서 ‘왕’하고 울어야 해. 어떤 새끼가 너를 괴롭혔는지 모두가 알 수 있도록 크게 울라고”
『매 순간 흔들려도 매일 우아하게』 곽아람
책을 읽고 생각했다. 만일 그때 내가 ‘왕'하고 울어버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선배들의 조언처럼 나의 회사생활은 힘들어졌을까. 아마 그랬을 것이다. 회사에 고충처리 담당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 후 일 년 여의 시간이 흐른 뒤의 일이었다. 문제 사건에 대해 보고가 이루어진 뒤 내가 받았던 상처가 2차가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한참 뒤의 일이다. 미투 운동과 직장 내 괴롭힘이 사회적 화두가 되면서 어느 정도 합의가 진전된 것은 내가 알 수 없는 괴로움과 무력감으로부터 일 년 넘게 시달린 후였다. 회사에서 제일 힘이 없던 시절,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다면 만일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왕'하고 울 것인가? 아니다. 회사에 마련된 고충처리 제도를 이용할 것이다. 그 조직이 일을 하지 않는다면? 사회의 법과 제도를 활용할 것이다. 그마저도 통하지 않는다면, 나의 SNS, 블라인드 앱 업로드, 언론사 제보 등 내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매체를 찾아 목소리를 낼 것이다. N차 가해가 두려워서 문제가 반복되는 현실이 앞에서 눈을 질끈 감고, 이미저도 들키거나 사람들 눈에 이상하게 보일까봐 마음졸이며 숨어서 눈물을 삼키는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 외에도 선택지가 많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케바케'의 진리는 여기에도 적용된다. ‘절대' 울면 안되는 일이란 없다. 울어도 되는 순간과 아닌 순간이 있을 뿐, 이것은 선택의 문제이다. 선택은 자유다. 신중하게 선택하고 그에 따른 결과도 책임지면 될 일이다. 그러니 울어도 된다. 눈물을 해방시키자. 대신 회사에서 울기를 선택했다면, 결정적인 순간에 왕하고 크게 울어야 한다. 어떤 새끼가 괴롭혔는지 세상 모두가 알 수 있도록 아주 크게.
* 이 글은 2022년 9월 18일 한국일보 <유어바이브>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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