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을 2주 앞두고 드디어 휴직
5년 9개월 만에 휴직을 했다. 30여 년 생애 한 조직에서 가장 오래 보낸 시간이다. 그래서인지 휴직일이 정해지고 부터 마음이 뒤숭숭했다. 출산 예정일을 2주 앞두고 휴직했다. 남은 10여 일의 연차를 소진하면 얼추 출산예정일과 맞았다. (출산휴가 3개월에는 반드시 출산일 포함되어야 하고, 출산 이후 45일 이상이 되어야 함) 나는 아기가 태어난 후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최대한 출산예정일과 가깝게 출산휴가를 쓰려고 했다. 그런데 출산휴가 기안을 올리자 인사팀에서 연락이 왔다. 예정일보다 빨리 출산할 경우, 출산휴가 시작일에 출산일이 포함되도록 기안을 다시 써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길 수 있으니, 남은 연차는 연말에 수당으로 돌려받고 출산휴가 시작일을 당겨서 써달라는 요청이었다. 휴직을 시작하면 월급은 줄고 지출은 커질 테니, 연차를 모두 소진하지 않고 출산휴가를 바로 쓰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남은 연차 중 절반만 사용하고 출산 예정일(9/5)보다 나흘 앞서 출산휴가를 시작(9/1)하는 것으로 기안을 다시 올렸다.
만일 아기가 태어난 후에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려면(육아휴직을 가장 길게 쓰려면) 출산일부터 출산휴가를 시작하도록 해야한다. 출산휴가에 출산일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술일을 미리 정한 게 아니라면, 아이가 언제 나올지는 알 수 없다. 예정일보다 빠를 수도 있고, 늦어질 수도 있다. 따라서 38주부터 41주 사이를 커버할 수 있도록 개인 연차를 최대한 넉넉하게(최소 10일 이상) 남겨두는 것이 좋다. 연차 사용 없이 병원에 다녀올 수 있는 ‘태아검진휴가’ 제도를 이용하면 개인 연차를 아낄 수 있다. 임신 28주까지는 월 1회, 36주까지는 2주마다 1회, 37주 이후에는 주 1회 사용할 수 있으니 꼭 활용하도록 하자. 회사마다 이용 방법은 다르겠지만, 우리 회사는 이석에 대해 출퇴근 확인 신청서를 올리는 방식이라 비교적 눈치 보지 않고 사용할 수 있었다. 실제로 쓰는 사람이 적어서 모르는 사람들이 많으니 사전에 동료들에게 스케줄을 미리 공유하는 매너는 잊지 말자. 이렇게 모은 개인 연차를 출산휴가 전에 붙여서 한번에 사용하면 마지막 출근일을 더 앞당길 수 있다. 남은 휴가가 많을수록 휴직을 더 빨리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연차 소진 후 출산휴가를 예정일부터 시작하도록 서류를 일단 올려놓고, 실제 아이가 태어나면 그날부터 출산휴가 시작일을 정정하도록 미리 회사와 협의해두면 출산휴가를 가장 길게 쓸 수 있다. 남은 연차는 수당으로 돌려받게 되고, 복직일은 제일 늦어진다. 단, 미리 협의가 되지 않았는데, 나중에 정정하려고 하면 불필요한 갈등이 생길 수 있으니 미리 회사와 이야기해두도록 하자. 올해부터 서울시에서 임산부에게 교통비를 지원해준다고 하니 출퇴근하는 임산부에게 도움이 될 듯하다. 물론 산모의 상태가 가장 중요하다. 진료 결과에 따라 무리하지 않고 미리 휴직을 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인 경우도 있다.
휴직을 시작하고는 몸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9개월 만에 몸무게는 16kg이 늘었다. 230mm이던 발은 퉁퉁 부어서 240mm 운동화에 겨우 들어갔다. 등, 어깨, 허리, 날개뼈, 꼬리뼈, 무릎, 발바닥까지 단기간에 급격히 늘어난 무게를 버티느라 몸 구석구석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누워있는 것도 불편해서 새벽에 서너 번씩 깼다. 나는 임신기간 중에 특히 가려움증으로 고생을 했다. 의사는 호르몬의 변화 때문이라며 출산 뒤에 점차 나아질 거라고 했다. 약도 쓸 수 없고, 별다른 해결책이 없었다. 매일 밤 피가 나기 직전까지 온몸을 긁으면서 혹시나 만성으로 진행될까 봐 두려움에 떨었다. 이러한 가려움을 '소양증'이라고 하며, 1979년 ‘PUPP’라는 병명으로 처음 발표된 뒤 많은 산모에게 발생하는 흔한 질환이지만 명확한 원인은 밝혀진 바가 없다는 것을 나중에 책(우아영,『아기 말고 내 몸이 궁금해서』)을 통해 알게 되었다. 생명 하나를 온전하게 세상에 내놓기 위해 이렇게 큰 고통이 따르는지 미처 알지 못했다. 세상 모든 엄마들이 진심으로 존경스러웠다. 그래도 출산 전에 꼭 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보름달처럼 부푼 배를 안고서 조리원과 병원, 동사무소, 은행을 다녔다. 동사무소에 들러 출생신고서 한 장을 미리 챙겨 왔고, 곧 만기가 도래하는 대출을 갱신했다. 이때 재직증명서와 원천급여명세서와 같은 서류가 필요할 수 있다. 인사팀의 담당자에게 연락하면 메일이나 팩스로 서류를 보내준다고 하니, 휴직 전에 관련 담당자와 연락처를 확인해두도록 하자.
막바지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 말, KF94 마스크를 쓰고 걸으려니 숨 쉬기가 더욱 힘들었다. 그래도 출산 전까지 최대한 많이 걸으라고 했던 의사 선생님의 조언을 되뇌며 뒤뚱뒤뚱 부지런히 걸었다. 신혼집과 친정을 오가며 하루에 1만 보 씩 걸었던 덕분인지 폴폴이(태명)는 예정일보다 빨리 세상에 나와주었다. 개인적인 용무를 마치고, 휴직 이후로 미루던 출산 준비를 이제 막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아직 젖병도 준비하지 못했는데, 아기를 낳았다. 엄마로서 준비가 한참 덜 된 나에게 건강하고 예쁜 아기가 와주었다. 일 하는 엄마는 아기가 태어나기 전부터 아기에게 미안했다. 준비가 부족해서 미안하고, 벌써부터 복직할 생각에 미안하고.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 아기가 태어난 후에 하루라도 더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퉁퉁부은 발이 안 보일 정도로 커진 만삭의 몸으로 끝까지 출근을 했다. 이렇게 욕심 많은 산모들 무리하지 말라고 하루 2시간 단축해서 6시간 근무하는 ‘임산부 근로시간 단축 제도’(임신 후 12주 이내 또는 36주 이후 사용 가능)가 있나 보다. 열 달 동안 변해가는 몸을 보며 우울하기도 했고, 6년간 쌓아온 커리어를 놓는 일이 울적하기도 했지만, 어느새 나 자신보다 더 지키고 싶은 존재가 생긴 엄마가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