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태어난 아기에게 낮과 밤이 생기는 시간 100일. 밤낮없이 울던 아기가 밤에 통잠을 자게 되는 기적. 우리는 이것을 ‘100일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이 기적은 아기와 엄마 아빠, 모두에게 온다. 대신 예상치 못한 어려움도 함께 온다.
폴폴이(태명)가 첫 아기인 우리 부부는 출산과 육아의 고됨에 대해 무지했다. 나는 출산 일주일 전까지 출근할 정도로 출산의 고통에 대해 감이 없었다. 출산을 하면 몸이 얼마나 쇠약해지는지 그래서 산후조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말이다. 출산 직후에는 아이를 낳았다는 기쁨보다 산통의 충격이 더 컸다. 마취가 풀려서 눈을 떴는데, 병실에 혼자였다. 다리에 흐른 핏자국을 보며 쉰 목소리로 울었다. 6인 병실에서 누가 들을세라 이불속에 파묻혀 숨죽여 울었다. 조리원에 들어간 첫날에도 전신 거울을 보고 엉엉 울었다. 실핏줄이 터진 눈으로 퉁퉁 부은 몸 여기저기에 남아있는 붉은 기 선명한 튼살을 보고 있노라면 주체를 알 수 없는 설움이 밀려왔다. 급격한 호르몬 변화로 널뛰는 감정은 통제가 어려웠고, 묵묵히 곁을 지켜주던 남편도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쳐 갔다.
우리의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까지 석 달 정도 걸렸다. 100일은 내 몸과 마음이 적응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기도 했다. 이제는 아기가 울어도 당황하지 않고 제법 노련하게 기저귀를 보고, 백색소음으로 아기를 토닥인다. 취미가 정리정돈과 청소인 남편, 산후조리 잘 못하면 평생 고생한다며 폴폴이를 기꺼이 봐주시는 시부모님, 산후 우울증으로 이어질까 노심초사 나의 기분을 살펴준 친정 가족의 도움이 컸다. 그리고 친구들이 보내준 폴폴이 선물 덕분에 준비가 덜 된 상황에서도 순간순간의 고비를 넘기며 한 계절을 보냈다.
그런데 좀처럼 적응이 안 되는 것이 있다. 바로 줄어든 월급이다. 출산을 앞둔 여성은 법적으로 출산전후휴가 90일(다태아일 경우 120일, 이하 출산휴가)과 유급 육아휴직 1년을 부여받는다. 중간에 조기복직을 할 수도 있지만, 제도를 모두 이용하는 여성은 출산으로 인해 총 1년 3개월의 휴직기를 갖게 된다. 문제는 이 기간에 월급이 계속해서 줄어든다는 것이다. 게다가 출산휴가 3개월 차에는 월급공백이 생긴다. 지급 주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대규모 기업(500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출산휴가 3개월 중 2개월(60일)은 회사가 기본급을 지급하고, 나머지 1개월(30일)은 고용보험에서 지급(상한 월 150만-하한 70만 원)한다. 보통 회사는 월 말에 해당 월 전체의 월급을 미리 지급한다. 출산휴가 첫 두 달 동안은 각종 수당이 빠져서 줄어들긴 했지만 이전과 같은 날에 예상했던 만큼 받았다. 그런데 3개월 차에 고용보험에서 주는 출산휴가 급여는 해당 월의 다음 달 초에 내가 직접 신청해야 월 말에 받을 수 있다. 회사에서 주는 마지막 월급을 받은 이후(10/20) 고용보험에서 급여를 받기까지(12/30) 두 달 가까이 월급 공백이 생기는 것이다.
그 이후 1년 동안 받게 되는 육아휴직급여도 온전하지 않다. ‘육아휴직급여’도 출산휴가 급여와 마찬가지로 최대 150만 원까지 지급되는데 그 중 25%는 ‘사후지급금’이라고 해서 복직 후 6개월 후에 한번에 지급된다. 결국 휴직하는 동안 받는 월급의 최대 실수령액은 상한 150만원에서 사후지급금 25%를 제외한 약 110만 원정도가 된다. 물론, 아예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받을 수 있는 소중한 급여이다. 누군가에게는 이마저도 불로소득처럼 보일 수 있겠으나, 불가피한 상황에서 하던 일을 쉬게 되면서 줄어든 월급에 적응하는 것도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100일의 기적과 함께 희미했던 의식이 돌아오자 급여가 삭감된 현실이 또렷하게 보였다.
올해부터 아기가 태어나면 첫맛남 이용권으로 200만 원을 일시 지급한다고 하니 반가운 일이다. 맞벌이 가정이 출산으로 인한 월급 보릿고개를 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더불어 모성보호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던 자영업자, 프리랜서 등의 여성들에게도 출산휴가 제도가 적용된다고 한다. 복직이 보장되어 있어도 일 년 이상의 공백기가 생기는 일은 무섭고 두렵다. 그런데 매번 계약을 갱신해야 한다면, 출산으로 인한 공백기는 단순히 두려운 문제가 아니라 생계를 위협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출산과 육아때문에 경력이 디스카운트 되고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남녀를 불문하고 어릴 때부터 사회에 필요한 구성원으로 성장하기 위해 치열하게 교육받아온 MZ세대는 ‘부모로서의 자아'보다 ‘사회적 자아'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둘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저출생과 비혼을 선택하는 젊은 세대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작가 하재영은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에서 자신이 원하는 결혼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에 나오는 문장처럼,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이 ‘홀로 있을 때만큼이나 자유롭고 여럿이 있을 때만큼 즐겁기'를 바랐다... 여성의 삶을 방해하고 축소하는 삶으로서의 결혼이 아니라 여성이 자신의 삶을 창조해나가는 삶의 연장선상으로서의 결혼(에이드리언 리치,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그것이 내가 바라는 삶이었다.” 나 역시 그랬다. 각자의 삶을 존중하며 함께 만들어가는 자유롭고 창조적인 결혼 생활을 꿈꿨다. 그런데 아이가 있는 삶은 차원이 다른 세계였다. 육아는 우리의 자유를 기꺼이 반납하고, 모든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일이었다. 하루하루 쑥쑥 자라는 아기와 함께 보내는 일상은 처음 느껴보는 기쁨이었지만, 내 삶은 이제 자유나 창조 그런 것들과는 거리가 멀어진 것 같아 울적했다. 여느 때처럼 모든 것을 소진한 100일 무렵의 어느 날, 문득 내 앞에 놓인 새로운 풍경에 대해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앞서 인용한 책의 구절에서 ‘결혼'을 ‘출산'으로 바꾸어 다시 읽어본다. “나의 삶을 방해하고 축소하는 ‘출산’이 아니라, 나의 삶을 창조해나가는 연장선상으로서의 ‘출산’.” 고된 육아로 잠들어있던 영혼이 깨어난 순간이었다. 엄마에게도 100일의 기적이 찾아왔다.
* 육아휴직에서 육아연수로, 송수진 고려대 글로벌경영학과 교수, 경향신문, 2018.05.30 참고.
이렇게 비루한 손그림이 깔끔한 인포그래픽으로 재탄생함.
* 이 글은 2022년 5월 15일 #유어바이브(한국일보가 창간한 2535 MZ세대를 위한 뉴스 매거진)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s://yourvibes.co.kr/?p=21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