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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정 Feb 17. 2022

코시국에 일하는 임산부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일하는 임산부로 산다는 것

  2021년, 코로나 시국의 한 가운데에서 나는 결혼을 하고 임신,출산,육아를 시작했다. 코로나가 바꾼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지만, 나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것은 ‘재택근무’이다. 회사는 거리두기 단계에따라 팀 내 재택 비율을 30%에서 50%까지 높이는 방식으로 재택근무를 운영했다. 팀원들은 돌아가며 2-3일씩 재택근무를 했고, 임산부는 100% 재택근무를 선택할 수 있었다. 일하는 임산부에게 재택근무란 마치 하루 24시간이 48시간이 되는 마법 같았다. 통근시간이 절약되고, 점심시간에 부족한 잠을 보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아침 7시에 일어나 물 한 잔 겨우 마시고 허겁지겁 집을 나섰는데, 재택근무 날에는 9시까지 푹 자고 일어나 칫솔을 물고 컴퓨터를 켠다. 샌드위치를 먹으며 오전 근무를 마무리하고, 점심시간에는 한 시간 낮잠을 잔다. 그리고 상쾌하게 오후 근무를 시작한다. 하루 종일 소화불량과 빈뇨, 졸음에 시달리는 임산부는 재택근무로 인해 몸에 무리가 덜 가게 일할 수 있었다.


  한편 알 수 없는 불안에 시달렸다. 임산부가 코로나에 걸리면 태아에게 치명적이라는 인터넷 기사 한 줄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한산해진 지하철 안에서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출근해서도 점심을 혼자 먹었다. 모든 게 처음이라 어리바리한 예비 엄마는 선배 엄마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혼자 있었다. 혹여나 감염원이 될까 서로가 서로에게 거리를 두었다. 자영업에 종사하는 부모님은 영업시간 제한, 사적 모임 인원 제한으로 걱정거리가 늘었다며 한숨을 쉬셨고, 늦은 나이에 공부해 다시 대학에 입학한 동생은 수업은 물론 신입생 환영회, 종강파티까지 모두 줌으로 참여하며 계속해서 방에서 홀로 지냈다. 누구나 걸릴 수 있고, 언제든 격리될 수 있다는 불안이 일상을 숨 막히게 옥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삶은 나아갔다.  세계가 코로나라는 전례 없는 혼란을 겪는 동안 나는 결혼을 했고, 아이를 가졌다. 다중이용시설 집합 제한으로 가까운 지인 96명만 초대해 결혼식을 올렸고, 감염 예방을 위해 보호자 동반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산부인과의 운영 정책으로 임신 후기에는 정기검진도 혼자 다녔다. ‘청첩장 모임으로 만나서 축하를 주고받던 시끌벅적한 시간들, 산부인과에 정기검진을  때마다 쑥쑥 자라 있는 태아를 보며 남편과 함께 감탄하던 시간처럼 지금까지 당연하게 누려  일상은 멈추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나아갔다.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한 지인들이 인스타그램과 카톡을 통해 보내온 축하는 모바일에 활자로 남아있다. 언제든 다시 꺼내볼  있고, 감사 인사도 바로바로 직접   있어서 오히려 진심이   느껴졌다. 병원에서 녹화해온 태아 초음파 영상을 집에서 남편과 함께 보면서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길게 나누었다. 지금의 모습을 우리가 이전에 상상하지 못했듯이 폴폴이(태명) 미래 역시 짐작하기 어렵겠지만, 어떠한 내일이 와도  길에서 행복을 찾으며 나아가는 사람으로 자라면 좋겠다고. 그리고 양귀자의 『모순』 나오는  구절을 생각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사소한 이야기는 계속된다. 죽기 전에는 아무도 인생의    없는 삽화들을 멈추게 하지 못한다. 우리는 크고 작은 액자들 안에 우리의 지나간 시간들을 걸어 놓으며 앞으로 앞으로 걸어간다.’ 뱃속에 있는 폴폴이와 함께 나누었던 그날 우리 가족의 대화를 액자에 넣어 잘 보이는 곳에 걸어 두었다.


양귀자 / 쓰다 / 2013(초판출간 1998년) / 30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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