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직한 음악적 환경이란 첫째, 민주적이고 명랑하고 즐거운 가정이어야 하고, 둘째, 부모와 다른 가족들이 음악에 관심을 갖는 가정이어야 하며, 셋째, 악기가 가정에 비치되어 있어야 한다. -유덕희
크리스마스를 맞아 이천 가족 별장에 내려왔다.
작곡가이자 교육자이신 친정 엄마와 유아 음악 교육에 대한 견해를 나누었다.
이제 60개월을 막 지난 딸내미를 지켜보면(물론 부모인 내 눈에는아이가 하는 모든 것이 다 기특하고 이쁘고 잘하는 것 같긴 하지만, 색안경을 벗고서 객관적으로 살펴보고또 주변 평가도 들어보았을 때에) 확실히 아이에게 언어와 음악쪽 재능이 보인다.
굳이 일찍부터 과하게 뭐를 끄집어내려고 억지로 애쓸 마음은 없지만, 그래도 자라는 싹에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도록 나부터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으려 한다.
엄마는 학창 시절 거의 독학으로 음악 공부를 하셨다. 충남 당진 시골 마을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엄마는 그나마 7남매의 막내였던 출생 순번 덕에 언니 오빠들보다는 나은 환경에서 공부하고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지만,피아노 레슨은 너무나 큰 부담이었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딱 두 달 치만 쥐어 주신 레슨비로처음 피아노를 배우며 가열차게 연습하여 진도를 뺐고, 그때 배운 스킬만 가지고 독학을 하셨다고 한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독학으로 피아노를 익히기엔 연주의 벽이 너무 높았다는 이야기, 새벽 5시에 무료 연습실을 잡기 위해 학교 경비아저씨에게 매일 눈도장을 찍으셨다는이야기는 이번에 처음 들었다.
나의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
엄마의 한(恨)덕분에 우리 삼 남매는 초등 6년 동안 꾸준히 악기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세기말인 90년대에도바이올린 개인 레슨 비용이 월 15만 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솔직히 나는 크면서 그 비용이 정말 정말 아까웠다. (차라리 그돈으로일찌감치 영어수학에 투자했더라면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다시금 돌이켜보면 연습도 설렁설렁 대충하고 시간 낭비 같기만 했던 그 시간 동안 그래도 다양한 클래식을 몸으로 접할 수 있었고, 클래식에 대한 반발로 완전히 극단에 있는 락과 메탈에도 푹 빠져 볼 수 있었고, 또 성인이 되어서는 자발적으로 기타를 배우고 밴드 활동을 할 수 있었다. 기타를 배울 때에 어린 시절바이올린을배웠던 경험이 당연히 녹아들었다.
음악 전공자가 아니지만 지금도 음악 이론들이 그렇게 어려운 외계어로 들리지는 않고, 동요 작사 작곡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적게나마 매달 저작권료 수익도 얻고 있다.
무엇보다 락밴드를 계기로반려인 남편을 만났고, 남편과 함께 음악을 듣거나 음악 프로그램을 감상하며 소소한 지적 대화를 나누는 행복을 누리고 있다.이것이 개인의 행복을 넘어 자녀에게 '바람직한 음악적 환경'의 상위 두 조건을 충족시켜 주고 있다면, 초등 6년의 바이올린 레슨비가 그리 아깝지 않을 수 있겠다.
개인의 경험에 근거한 사례이니 증거 수준(L.O.E)은 낮음.
유덕희 교수님의 세 번째 멘트에 꽂혀 자그마한 칼림바를 하나 구매했다.마침 브런치 이웃님이 어제 칼림바에 대한 글을 쓰셔서참 감동적으로 읽었는 데다가, 또 마음이 동한 김에 연주 영상을 몇 개 찾아보다가... 지름신이 왔다.
작고 저렴한 악기가 다양하게 집에 있으면 아이도 경험할 수 있잖아.
요즘 호연이가 피아노를 참 좋아하니까 칼림바도 한 번 같이연주해 보면 건반 구성과 음 길이, 화성에 대한 암묵지식도 생길 것 같고.
이 정도 사이즈면 다음 주에 여행 갈 때도 가볍게 들고 갈 수 있겠고.
기타는 매번 작은 방에서 꺼내고 넣고 하기 좀 번거로운데 칼림바는 진짜 휴대성 최고네.
(구매에 대한 변명이 한가득인 걸 보니, 이건 그냥 내가 사고 싶어서 사는 것이 맞다. ㅠㅠ 앞으로는 지출 관리 좀 타이트하게 하자고 마음먹었으면서! 또또!)
지성과 인성을 갖춘 예술가. 훌륭한 연주자는 아니더라도, 이 정도 삶의 목표를 갖는 것은 괜찮아 보인다.
급 진정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근데 딸내미야, 크리스마스 아침에 산타 선물도 준비되어 있는데 왜 아직 안 일어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