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이 남쪽으로 가는 까닭은?

리사 리드센 장편 소설 [새들이 남쪽으로 가는 날]

by 여행하는나무


[새들이 남쪽으로 가는 날] 리사 리드센 저자(글) · 손화수 번역 북파머스 · 2024년 12월 18일

%EC%83%88.jpg?type=w773 [새들이 남쪽으로 가는 날] 도서 표지


[새들이 남쪽으로 가는 날]은 스웨덴의 작가 리사 리드센이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메모를 보고 영감을 받아 쓴 장편 소설이다. 작가의 데뷔작인데, 나오자마자 엄청난 찬사를 받았다.


한 사람의 삶을 아름다운 양탄자나 태피스트리 형태로 완성하여 펼쳐 보여주는 느낌이다. 현재의 시점과 과거의 추억을 오가면서 이야기를 구석구석 잘 배치하고 있다. 젊은 작가가 죽음을 앞둔 사람의 마음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인생 전체를 절묘하게 버무려서 감동적인 작품으로 완성하였다. 글로 전개하는 무늬와 색깔이 얼마나 다채롭고 조화로운지 내내 감탄하면서 읽었다.


이야기는 5월 18일부터 10월 13일까지 약 5개월간 보 안데르손의 시선에서 그가 살아온 일생을 그리고 있다. 죽음 이후에 자신의 삶을 파노라마처럼 돌아본다는, 임사 체험자들이 말하는 라이프 리뷰를 보는 것 같다. 삶의 구석구석에 배어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와 사건들 속에서 보가 느꼈던 감정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 소설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이라 상대의 감정은 미루어 유추할 뿐이지만, 사후 세계의 라이프 리뷰는 내가 느낀 감정만이 아니라 함께 한 사람들의 감정까지를 고스란히 그 사람인 양 실제로 느낀다고 한다.

ChatGPT Image 2025년 6월 28일 오전 12_16_43.png

노년의 보는 노쇠하여 거동이 자유롭지 못하다. 혼자서 식사하기는 물론 샤워나 대소변 처리에 있어서도 어려움이 있다. 요한나나 잉리드를 포함한 요양호사들이 매일 집에 드나들며 청소, 빨래, 샤워, 기저귀 바꾸기 등 세세한 일상과 건강을 챙겨준다. 외동아들 한스는 자주 오가며, 필요한 것들을 챙겨주고, 음식을 사서 냉장고에 넣어주면서 살펴준다.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반려견인 식스텐이 곁에 있다는 것이 큰 기쁨이다.

사랑하는 아내 프리드리카와의 62년간 결혼 생활은 그의 삶의 전부였다. 온 마음으로 사랑하고 평생을 함께 했던 아내는 지금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 가 있다. 남편이나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녀만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보는 ‘당신’이라는 호칭으로 아내와의 많은 추억이나 깊은 사랑의 마음을 곳곳에서 드러낸다.

지금 보에게는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 가 있는 아내에 대한 걱정과 반려견인 식스텐을 데려가려는 아들과의 갈등이 큰 문제이다. 자신을 점점 무력하게 만들고, 식스텐 없는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들에 대한 미움도 감출 수 없다. 아들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과는 또 다르다.


보의 입장에서 쓴 이야기라 그의 무력감이나 외로움, 절망감 등 그의 힘겨움에 공감하면서 소설을 읽어가지만, 함께 짐을 나눌 형제도 없는 외아들 한스에게 시선이 머물기도 한다. 그는 아내 소니아와 일찍이 이혼하고 딸 엘리노르를 혼자 키우고 있다. 이 소설에서는 한스의 마음이나 구체적인 상황은 잘 드러나지 않지만, 한스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가 되고, 안쓰럽다는 생각을 감출 수 없다. 어머니는 요양원에, 아버지는 재가 요양을 받는 형편이라, 현실적으로나 심적으로 짐이 무겁다. 더구나, 아버지의 보호자로서 좀 더 편하게 해드리고 싶은데, 완고하고 고집 센 아버지는 자식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서운하고 밉기도 할 것 같다. 아직은 늙은 부모님의 보호자로서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나와 대비되어 공감하는 마음으로 한스를 바라보아서 그럴 것이다.


보는 가족이나 친구에 대한 옛날 기억을 자주 떠올린다. 사실 자유롭게 돌아다니지 못하고 대부분 누워있는 그에게 유일한 소일거리라고 할 수도 있다.

자상했던 어머니와 노인, 보는 그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고 노인이라고 부른다. 엄격하고 가정 폭력을 휘두르던 아버지에 대해 풀지 못한 마음은 늘 어두운 상처였다. 그래서 아버지 칼 에릭과는 다른 아버지가 되고자 했는데, 종종 자신에게서 노인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놀란다.

친한 친구 투레와의 오랜 우정은 마지막 날들에 더 빛이 난다. 동성애 친구이지만 서로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아들과 함께 오두막에서 즐거운 시간을 갖기도 했다. 가족이 없는 투레가 혼자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은 우리 사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고독사를 떠올리게 한다. 보는 간병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참 다행이다. 죽기 직전에 많이 고통스러워하거나 외롭게 죽어가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KakaoTalk_20250628_000218797.jpg?type=w773


이 소설 속의 주인공 보는 의식이 어느 정도 분명하고,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을 인식하고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실제 노년의 모습에서는 그러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우리 시부모님도 남은 2년여의 시간을 요양병원에서 보내고 앙상한 모습으로 시설에서 돌아가셨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로 스스로의 몸에 대한 통제력을 갖지 못하고 남의 손에 의지해서 병상에 누워서 보내야 했다. 시부모님을 뵈러 요양병원에 갈 때마다 그 특유의 퀴퀴한 냄새와 분위기가 편하지 않았다.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과 함께 답답한 그 상황이 크게 느껴져 안타까웠다.


우리는 자유 의지를 갖고 자신의 몸을 스스로 통제하고 삶을 주체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에 굉장한 자부심과 존엄을 느낀다. 그런데 몸이 자유롭지 못하거나 몸의 여러 부분이 온전치 못할 때, 의식은 뚜렷한데 내 몸을 남에게 맡겨야 할 때, 속내까지 보여야 하는 부끄러움을 감당해야 할 때, 그 기분은 어떤지, 그 마음은 어땠을지, 떠올리기도 쉽지 않다. 그 마지막 이야기를 보를 통해 조금이나마 들었다. 그래서 이 소설이 더 가슴에 와닿았고, 시부모님 마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은 부모님들의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나의 모습, 우리 모두의 모습이기도 할 것이다.


KakaoTalk_20250628_000916064.jpg?type=w773


이 소설은 부부간의 사랑, 그리움, 애틋함이 잘 들어 있고, 또 부모와의 관계나 자식과의 관계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살면서 관계 속에서 용기 내어 표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많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무뚝뚝하고 퉁퉁한 모습으로, 사랑하면서도 마음과는 반대로 표현하거나 끝내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의식이 명료할 때 인생의 마무리도 잘하고, 사랑하는 마음도 충분히 전해야 할 것 같다. 보가 죽기 직전에 아들 한스에게 “너는 나에게 늘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다.”라고 용기 내서 말하고, 아들이 “잘 알고 있어요, 아버지.”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가슴 찐하게 와닿았다.


복지 선진 국가인 스웨덴의 복지 시스템과 노령자 케어 과정이 궁금했는데, 이 소설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어 좋았다. 돌봄이 필요한 사람을 여러 요양호사들이 돌아가면서 보살피고, 일지를 적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도움을 받는 사람에 중심을 두고 그의 상태나 감정 등을 메모처럼 기록으로 남긴다. 우리나라는 이미 초고령사회에 접어들어 실버 케어 문제가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개인이나 가족들만의 책임이나 부담으로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 되기를 바란다.


새들이 남쪽으로 가는 날,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그 새들은 철새인 모양이다. 스웨덴에서 따뜻한 계절을 보내고, 겨울을 앞두고 남쪽으로 날아가는 것이다. 새들이 남쪽으로 가는 날 주인공 보 안데르손은 먼 여행을 떠났다. 보는 이 땅에서 쉽지 않은 인생을 잘 살아냈다. 그의 삶에는 사랑이 있었다.

철새들이 남쪽으로 날아가듯이 보도 이제 또 다른 더 좋고 아름답고 평안한 곳으로 갔을 것이다. 본래의 고향, 아무런 고통이나 아무런 분리감이 없는 사랑 그 자체로, 우리도 마땅히 가야 할 남쪽으로.

KakaoTalk_20250628_000218797_01.jpg?type=w773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그 남자, 드디어 아버지가 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