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홍한별 옮김. 다산책방(2023)
세상에서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무엇일까?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여러 가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작가가 말하는 이처럼 사소한 것들, 이처럼 사소하다는 건 무슨 뜻일까?
빌 펄롱은 부인과 딸 다섯을 키우는 평범한 소시민이다. 그는 석탄 배달업을 하며 매일 성실하게 살아가는 가장이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85년 아일랜드는 경제 사정이 갈수록 나빠져서 공장이나 가게는 문을 닫고 실업자는 늘어간다. 그래서인지 소설 전반에 무채색 어둠과 냉소적인 분위기가 번져 있다.
펄롱은 힘든 하루하루지만 "계속 버티고 조용히 엎드려 지내면서 사람들과 척지지 않고" 아이들을 안정적으로 교육시키려는 꿈을 갖고 있다. 보통의 아버지라면 누구나 생각하는 자연스러운 소망이다. 우리도 때로 고되고 힘겨운 직장 생활을 그와 같은 마음으로 매일을 살아내고 있지 않은가?
단조로운 일상을 뒤흔든 곳은 뜻밖에도 막달레나 수녀원 창고였다.
하느님의 공의와 사랑을 보여준 예수 탄생일,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수녀원에 석탄 배달을 하던 중 창고에 갇혀있는 여자아이를 발견한다. 그 일로 수녀원 안으로 들어가고 간절한 눈빛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소녀들을 만난다.
아일랜드는 강력한 가톨릭 국가로 교회와 수녀원의 권력은 막강했다. 국가 권력과 결탁하여 유리한 정책을 만들고, 신앙을 볼모로 시민들의 생활방식과 사고체계를 촘촘하게 얽어맸다.
막달레나 수녀회는 불량 청소년들을 교화하고, 불쌍한 처지의 소녀나 미혼모들을 돌본다는 처음의 취지와는 다르게 악용하고 신의 이름으로 악행을 포장하면서 가혹한 착취와 학대를 했다. 역사적으로 밝혀진 바에 의하면, 3만 명이 넘는 어린아이들을 감금하고 노동력과 권리를 유린했다고 한다. 겉으로는 하느님의 사랑을 말하면서 실제로는 자신들의 이권을 충실히 챙긴 불의한 거짓 사랑인 것이다.
1996년까지 이어진 막달레나 세탁소는 사회적으로 공공연히 인정받아 공공 기관이나 공장, 심지어 부유한 사람들도 싼값에 이용하였다. 진실을 알면서도 방관하거나 수동적으로 동조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기에 그렇게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다.
소설에서는 수녀원의 행태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을 하지 않는다. 하나의 에피소드와 내부 묘사를 통해서 독자들이 알아차리도록 이끈다. 수녀원이 가진 권위와 위세를 작가 특유의 절제된 묘사와 대화를 통해 느낄 수 있다.
막강한 권력을 가진 종교기관의 불의를 맞닥뜨린 펄롱은 심란하다.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오르고 고민이 깊어진다. 펄롱의 잠 못 드는 밤의 상념이 이해가 된다. 아버지 없이 자란 펄롱은 어머니마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일하던 저택의 윌슨 부인의 도움을 받았다. 지금의 안정적인 삶이 있기까지 그를 지지하고 도와준 윌슨 부인, 네드 아저씨의 손길을 기억한다. 그 도움이 없었다면 어머니나 자신, 혹은 그의 딸들이 그들과 같은 입장에 처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수녀원에 갇혀 있는 소녀가 남이 아니라는 인식에 이르자, 용기 있는 결단을 내린다. 타인의 고통이 ‘남의 것’이 아니라 ‘내 것’이 될 때, 우리는 다른 선택을 한다.
펄롱은 미시즈 월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미시즈 윌슨이 아니었다면 어머니는 결국 그곳에 가고 말았을 것이다. P120
거대 권력기관의 부정과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서 소시민 한 사람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내가 그의 입장이었다면 나는 과연 그 소녀를 구할 수 있었을까? 아니 구해낼 생각을 했을까? 공동체의 질시와 미움을 받기 싫어서, 안정된 내 삶이 뿌리째 흔들릴까 무서워서, 용기 내지 못한 자신을 적당한 핑계와 합리화로 덮어주고 있지 않을까?
자신에게 분명히 불이익이 오고 안정적인 삶이 깨어질 것이 명확하게 보이는데도 펄롱은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것은 대단히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선택의 대가를 감당하면서 맨발의 소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장면을 읽을 때는 울컥했다. 주인공의 용기 있는 행동에 한없는 박수를 보냈다.
두 사람은 계속 걸었고 펄롱이 알거나 모르는 사람들을 더 마주쳤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아이를 데리고 걸으면서 펄롱은 얼마나 몸이 가볍고 당당한 느낌이던지. 가슴속에 새롭고 새삼스럽고 뭔지 모를 기쁨이 솟았다. P121
펄롱은 어려움에 처한 소녀를 도와주고,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순간에 멈춰 서는 선택을 한다. 알면서도 방관하거나, 침묵하면서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행동을 한다. 펄롱의 용기 있는 선택은 탁하게 얼룩진 연못을 맑게 하는 물꼬가 될 수도 있으리라. 거대한 구조적 악을 단번에 무너뜨리진 못하지만, 한 사람의 작은 몸짓이 큰 반향을 일으키는 것을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가 수없이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큰 변화는 그런 작은 움직임들이 모였을 때 가능한 것이다.
진실을 향한 하나의 선택과 작은 친절과 같은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곧 인간을 인간답게 살아가도록 한다는 걸, 짧지만 강한 외침으로 귀에 쟁쟁하게 울리는 듯하다.
주인공의 내면의 번뇌와 용기 있는 결단을 따라가면서 나를 돌아본다.
갈등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인간 존엄을 어떻게 지키며, 어떤 방향을 보며 살아야 하는지 다시 고민하게 한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의미가 이토록 무겁고 강력하게 다가오다니!
담백한 문체로 주인공의 내면의 출렁임을 잘 보여준 클레어 키건의 소설이 가진 힘과 영향력에 압도된다.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고 우리 마음속에 갇혀 있는 것을 어떻게 안고 살아가는지에 관심이 있습니다.”
-- 클레어 키건 인터뷰 중에서
아일랜드 출신의 킬리언 머피가 제작 및 주연으로 참여한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제74회(2024년) 베를린 국제 영화제 개막작이자 황금곰상 경쟁 후보작이다. 영화는 1922년부터 1998년까지 운영된 막달레나 세탁소의 여성 피해자들에게 헌정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우수에 찬 주인공의 고뇌하는 눈빛과 어두운 분위기가 인상적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