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녀장의 시대』, 이슬아 지음, 이야기장수, 2022.
그녀는 발칙하다!
세상을 향해 도전장을 던지고, 단단히 자리 잡은 굳건한 틀을 흔든다.
“어린 게 감히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틀은 깨라고 있는 것입니다.”
가녀장의 시대라니!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그럴 수도 있고, 그래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단단한 벽도 작은 틈에 균열이 생기면 무너지기도 하니까.
그녀는 당당하다!
그 당당함은 자신을 믿고 패기 있게 도전하며, 뚝심 있게 밀고 나가는 추진력이다.
남들이 뭐라 하든, 세상을 향해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를 가진 당당함이다.
‘일간 이슬아’!
주간, 월간도 아니고 일간지다. 월회비를 미리 받고,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매일 글을 써서 발행한다. 그것도 매일 누군가가 읽을 만한 글을 완성해서 메일을 발송한다는 것! 어지간한 배짱과 당당함과 근기가 없으면 생각조차 못 할 일이다. 그런데, 그걸 해내는 젊은 처자가 있다. 그녀가 이슬아이다. 그녀의 도전은 사람들의 응원과 지지를 받으며 점점 탄력을 받는다. 큰 산을 하나씩 넘으면 자신감의 내력도 쌓이는 법이다.
가녀장, 모부, 처음 들어보는 말이다. 그녀가 만든 새로운 단어이다. 돈이 힘인 세상, 우선적인 결정권과 권력이 가녀장에서 나온다. 가녀장 시대라, 가부장도 부족해서 이제 내가 낳은 딸의 권력 아래에서 살아야 한다. 모부는 출판사 직원이 되어 정당한 대우와 월급을 받는다. 복희는 출판사 업무와 식사 챙기기, 웅이는 청소와 운전을 포함하여 온갖 허드렛일을 한다.
“역시 성공한 애는 달라.”
모부가 그녀를 칭찬하거나 흉보면서 하는 말이 참 재미있다.
내가 복희의 입장이었다면 어떨까 잠깐 생각해 본다. 성공하고 잘 나가는 자식이 무척 자랑스러울 것 같다. 하지만, 가부장이든 가녀장이든 그 굴레 아래 있는 것은 싫다. 각자 독립적으로 사는 방식이 좋다.
서로 존중하면서 필요에 따라 의존과 독립이 어우러진 가녀장의 집, 그 집에서는 누구나 당당하다. 가녀장 이슬아의 당당함은 겉으로 드러난다. 복희와 웅이는 허허실실, 외유내강형 당당함을 갖고 있다. 심지어 고양이 자매 숙희와 남희도 도도하고 당당하다. 그래서 당당한 그들이 주고받는 애정 가득한 이야기들은 유쾌하고 재미있다. 산뜻하고 담백한 일상 묘사에 빠져든다. 부모의 권위나 가녀장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필요에 따라 힘을 합친다. 서로가 서로의 수호신이 되어 서로를 돕고 함께 하는 가족의 모습을 보통과는 다른 형태로 보여준다. 특히 가사노동을 높게 인정하여 복희는 부엌일을 하며 정당한 노동의 보수를 받는다. 이 부분이 특히 마음에 와닿았다. 매일 해야 하면서 드러나지도 않고, 특별히 알아주지도 않는 것, 네버엔딩, 일상이 지속되는 한 유효기간이 따로 없는 것, 그것이 가사노동이다. 살림이 생명을 먹이고 키우고 살리는 일임에도 우리 사회에서 가사노동이 제대로 대접받아본 적이 없다.
우리 집의 경우에도 결혼 이후부터 지금까지 집안 살림의 대부분은 내 몫이었다. 남편과 똑같이 직장에서 일하면서도 퇴근하고 돌아오면 집안 일과 육아를 도맡아왔다. 그게 형평에 맞지 않다고, 억울해하면서도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 묵묵히 감당했다. 지금 청소는 남편이 전담하고 있다. 나머지 집안일은 내 지분이다. 가부장 시대의 의식을 온몸으로 당연하게 체화해 온 서글픈 자화상? 자기 권리나 주장을 내세우기보다는 가정의 평화를 위해 내가 더 양보하고 참으면 되지라는 마음으로 크게 문제 삼지도 않았다. 착한 신데렐라콤플렉스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요즘 신세대들은 결혼 전부터 집안일을 세세하게 나누어 역할을 정하고, 살림과 육아를 분담한다. 그들과 견주어보면 나는 한참 구세대를 살고 있다는 자괴감이 들 때도 있다.
어느 집이든, 가장은 한 가정을 책임지며 생계를 위해 열심히 일을 한다. 어떤 가장이든 힘들고 고달픈 것은 마찬가지인가 보다. 우리의 신세대 가녀장도 마감 스트레스에 쫓기며 온몸과 마음을 다해 부지런히 일한다. 글쓰기를 업으로 1인 출판사를 운영하고, 강의와 글쓰기 강사까지 겸업한다. 가녀장의 시대를 열고, 자신의 글쓰기 노동으로 모부에게 월급을 준다. 자기 관리도 철저하여 매일 요가, 108배 등 일상의 루틴을 확실하게 습관화한다. 남다른 생각과 글쓰기에 대한 몰입과 집중, 치열한 자기 관리가 있기에 성공한 작가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매일 글을 쓰고,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내는 이슬아,
『가녀장의 시대』는 그런 그녀와 부모의 자전적인 느낌이 강한 소설이다. 60~70% 사실에 과장된 허구를 가미하여 긴 이야기로 빚어낸 첫 소설이다. 과감하게 틀을 깨는 그녀의 또 하나의 도전이다. 각각의 일화들이 독립적이되, 따로 돌지 않는다. 실에 꿴 구슬처럼 일관성 있게 연결되고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작가 이슬아에 대해 알면 알수록 ‘당당함’에 매료된다. 나는 젊은 시절 왜 그렇게 당당하지 못하고 움츠려들었을까? 나를 드러내기보다는 감추고, 오히려 내가 드러날까 두려웠다. 세상의 틀에 나를 구겨서라도 맞추려 하고, 틀을 체화하여 ‘바르고 착하게 보이도록’ 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썼다. 다른 사람 눈치를 보고, 따라 하기만도 바쁘고 벅찼다. 잔뜩 쪼그라든 채로 자신을 옭아매며 살아온 시간이 안쓰럽고 안타깝다. 그랬기에 이 소설이 더 진하게 와닿았는지 모르겠다.
이슬아 작가의 당당함이 멋지다. 그의 발칙함마저 대견하다. 톡톡 튀는 개성을 보여주는 주인공들의 당당한 모습이 사랑스럽다. 이 소설을 드라마로 제작 중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무척 유쾌하고 재미있는 드라마가 될 것 같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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