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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나무 Oct 09. 2022

상상의 세계로 떠나 볼까요?

『머나먼 여행』, 『비밀의 문』


# 그림책 교단일기

# 『머나먼 여행』, 『비밀의 문』 / 에런 베커 글 그림 / 웅진주니어


< 머나먼 여행 >


“나는 엄마 없어요. 아빠 엄마 이혼한 지 5년 되었어요.”


도덕시간에 가족에 대해 배울 때 우리반의 00이 불쑥 큰소리로 말하여 모두의 시선을 끈다. 재작년 1학년 때 동학년 모임 시간에 이름이 가장 많이 거론된 아이다. 마음대로 교실 밖으로 나가고, 싸움도 자주 하여 1학년 중에 젤 힘든 아이라고 모두가 인정했던 아이다. 2학년 선생님이 살살 달래가며 받아주고 사랑으로 품어주어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코로나19가 정점을 찍을 때 우리 반에도 태풍이 지나갔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27명 모두 등교한 날, 코로나에 대한 글쓰기를 했다. 몇몇은 욕을 써도 되냐고 묻기도 했다. 대부분 아이들은 코로나19로 인해 힘든 것, 싫은 것, 미운 것을 속풀이하듯 글로 풀어냈다. 00은 계속 못하겠다고 고집부리길래 가만히 내버려두었다. 한참 뒤에 00가 다가와 조용히 말한다. 친구들은 코로나가 싫다고 하는데, 자기는 코로나가 부럽단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받아 좋겠단다. 그걸 글로 써보도록 격려하니 제법 잘 썼다. 세상 사람들이 계속 관심 갖고 이름을 불러주니 좋겠다는 글을 보니 마음이 짠하다. 얼마나 관심 받고 사랑받고 싶었으면 남들이 꺼려하는 코로나가 부러웠을까? 


00은 상식도 많이 알고 눈치도 빨라 질문하면 적절한 대답을 잘하기도 한다. 계속 교사 주위를 맴돌고 관심을 끌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 긍정적인 방법보다 부정적인 방법으로 관심 끌기를 하여 교사의 에너지를 많이 빼앗는다. 책상을 들썩들썩 하다 넘어뜨리기도 여러 번이다. 화나면 욕같은 심한 말도 잘한다. 문제 행동을 하여 코너에 몰리거나 잘못에 대해 뭐라 하면 큰 소리로 자기가 안했다고 우긴다. 몸집이 크고 힘도 세다. 친구와 다투거나 교사에게 반항적일 때는 힘으로 밀어붙이려고 한다. 수업 시간에 돌아다니기도 한다. 혼자서 할 수 있는데도 “하기 싫어요. 못해요.”를 입에 달고 있다. 옆에 가서 도와주면 겨우 한다. 고집 대장에 떼쓰기 왕이다. 덩치만 큰 아기 같다. 


00은 아빠와 둘이 사는데, 바쁜 아빠가 올 때까지 학원 다녀온 후 대부분 혼자 지낸다. 아빠를 불러 상담하고 00에게 좀더 관심을 갖고 도와줄 것을 요청했다. 다행히 00은 아빠와 관계가 좋고, 아빠 말을 잘 듣는 편이어서 계속 협조해가기로 했다. 아빠와의 면담 이후 00의 말과 행동은 조금 조심스러워지고 참여하는 태도가 좋아지는 날도 있다.


국어 시간이다. 오늘은 글자없는 그림책 『머나먼 여행』을 꺼냈다. 『머나먼 여행』, 『비밀의 문』, 『끝없는 여행』은 글자 없는 그림책으로 에런 베커의 여행 3부작이다. 


3학년 국어 교과서에는 원인과 결과가 이어지게 글을 쓰는 부분에 『비밀의 문』의 일부 그림이 수록되어있다. 4개의 장면을 각자가 배치한 후에 원인과 결과를 생각하며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본 활동을 하기 전에 『머나먼 여행』 그림책을 함께 읽으며 모험을 떠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강렬한 빨간 쪽배를 타고 성으로 향하는 여자 아이가 보인다. 표지부터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엄마, 아빠, 언니가 있지만, 함께 놀아줄 사람이 없어 심심하고 외로운 아이가 주인공이다. 이 아이는 빨간 연필로 벽에 동그란 문을 하나 그린 후 문을 열고 상상의 세계로 들어간다. 우리 아이들도 함께 모험을 떠난다. 숲을 지나 강가에 도착해 곤란한 상황인데, 빨간 연필로 배를 그리니 진짜 배가 된다. 성에서 떨어지기 전 빨간 연필로 열기구를 그려 하늘을 날기도 한다. 새장에 갇힌 보라색 새를 구해주고 군인들에게 붙잡힌 아이가 되어 모두들 안타까워한다. 새의 도움으로 빨간 연필을 받아 네모난 모양을 그린다. 무엇이 되었을까? 나름대로 상상해보기도 한다. 네모는 양탄자로 변해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된다. 아이들은 글자가 없는 그림책이라 더 집중해서 보고, 책 속 주인공과 함께 모험을 한 듯 상기된 표정이다. 아이가 빨간 연필로 그리면 원하는 게 뚝딱 만들어져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니, 우리반 아이들 눈에 부러움 가득이다. 


각자가 가진 마법의 연필로 작가가 되어 이야기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자신이 생각한 대로 장면을 배치하고 원인과 결과가 이어지게 열심히 이야기를 만든다. 아이들 수준이나 접근 방법이 제각각이라 여러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탄생했다. 포켓몬 이야기나 게임 속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친구들과 바꿔 읽으며 별점 주기도 한다. 한참동안 시작을 못하고 못하겠다던 00의 이야기는 따뜻하고 훈훈하여 놀라웠다. 이야기 전개 과정도, 행복한 결말도 제법 괜찮다. 작가 소질이 풍부하다고 폭풍 칭찬을 해주니 어깨가 으쓱으쓱, 얼굴 표정이 환하다. 매일매일 이런 모습이기는 어려울 테지만 오늘은 충분하다. 부드러운 속살을 드러내지 못하고 『가시소년』처럼 뽀족하고 거친 껍질만 보여주는 00의 행동은 과거의 삶의 경험에 원인이 있을 것이다. 아이의 마음에 큰 결핍이 드러나는 것이다. 누적된 긴 시간만큼 더 많은 관심과 사랑, 인내가 필요할 것이다. 


< 비밀의 문 >


에런 베커 여헹 3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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