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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나무 Oct 29. 2022

나는 나입니다

뿌리깊은 나무들의 정원


# 그림책 에세이

# 뿌리 깊은 나무들의 정원

피레트 라우드 글 그림 / 서진석 옮김 / 봄볕

뿌리깊은 나무들의 정원 표지


“나는 작은 나무입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쳐진 산골 마을, 호롱불로 불을 켜고 깜깜한 밤하늘에는 별이 가득했다. 

밭농사를 주로 하는 부모님을 도와 물도 길러오고, 나무도 하고 나물도 캤다. 집성촌으로 온 마을이 친척들이고, 명절이나 시제를 지낼 때는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했다. 작은 채반 상에 음식을 담아 이집 저집 나누던 장면이 기억난다. 살림살이도 모두 비슷비슷하여 다들 그런가보다싶었다. 또래 친구들도 많아서 지는 해가 아쉽도록 뛰어놀았다. 세상을 잘 모르던 그 곳에서의 삶은 행복했다. 


숲을 싹둑싹둑 잘라버린 괴물 같은 톱이 한순간에 쳐들어왔다. 새마을 운동으로 숲은 잘리고 도로가 만들어지고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섰다. 거대한 자본주의 물결이 산골 동네에도 몰아쳤다. 마을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도시로 이사를 갔다. 줄기가 잘리고 뿌리가 뽑힌 나무들처럼 짧은 시간에 변화하는 세상 속으로 밀려들어갔다. 


나는 숲에서 멀리 도망다니며 길 위에서 세상을 배웠다. 돈의 위력을 알았고, 친구 집과 비교하며 가난한 우리집이 부끄럽고 창피했다. 부족하고 초라한 나에 대한 열등감과 불만이 가득하여 어둡고 우울한 모습으로 청소년기를 보냈다. 내가 설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리고, 공부라는 줄을 잡고 나름대로 길을 찾으려 했다. 긴 떠돌이 생활 끝에 나는 드디어 신기한 정원에 도착했다.


“모든 것이 숲에서 보던 것과는 완전 딴판이었다. 

길은 평탄했고 굽은 길도 없었고 꽃들은 질서있게 한 줄로만 자라고 있었다. 

나무는 모두 곧바르게 뻗어 있었다.”


그 정원의 다른 이름은 “도시”였고, “학교”였다. 먼저 자리잡은 나무들은 땅 밑에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있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다며 작은 나무는 자기들과 다르다고 했다. 나는 이곳에 뿌리내리기 위해 부단히도 애썼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방식을 내 안에 체화하려 노력하고, 남들처럼 살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넌 우리와 같지 않아.” 


이 말은 무서운 말이었다. 나의 내면까지 스며들어 잠결에도 분투했다. 남들과 같아지기 위해, 남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꿈을 많이 꾸었다. 


나는 정원에서 살려면 뿌리 없는 것들을 치워 달라는 그들이 시키는 일을 열심히 했다. 


하늘에서 내려온 빗물 웅덩이와 하늘에서 내려온 별, 바위를 치웠다. 자유로운 아이들에게 정형화된 틀처럼 규칙과 질서를 외치고, 네모난 책에 담긴 지식들을 열심히 가르쳤다. 바르게 바르게 살라고 목이 아프게 강요했다. 나와 다른 것은 받아들이지 않고, 내 생각만이 옳다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었다. 나는 어느새 정원의 나무들과 닮아있었다. 


많은 시행착오와 실패와 어리석음을 통해서 배우고 성장하면서 나는 내 안의 여러 모습들을 만났다. 나는 머무르지 않는 물처럼 계속 배우고 있다. 그 과정에서 나의 고유성을 빛낼 수 있었다. 고형화된 작은 나무가 나의 실체이거나 나의 전부가 아니었다. 비로소 나는 자유로웠다. 


나는 새를 만나 새가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래 부르는 거야." 

세상에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내 재능과 노력을 쏟아내고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또한 나는 물웅덩이가 되었다. 

“내 생각에 굉장한 것은 세상을 유람하는 것과 끊임없이 변화하는 거야.”


“내 생각에 굉장한 것은 꿈이 이루어지도록 돕는 거야.”

아이들의 꿈이 이루어지도록 돕고 사랑으로 품어주는 별같은 교사를 꿈꾸었다. 


“굉장한 것은 나만의 고요한 시간을 가지면서 여러 가지 재미있는 생각을 하는 것,

그리고 다른 이들의 삶에 방해되지 않는 거야.”

바위처럼 단단한 심지를 갖고 명상도 하고 내 마음에 집중하였다. 


“넌 아주 굉장한 왕관을 쓰고 있구나.”

내가 내 모든 모습을 받아들이고 인정하자 나의 왕관도 빛나게 되었다. 내가 변화하자 나를 둘러싼 세상이 변화하였다. 우중충한 나의 정원도 아름답고 다양한 색깔로 바뀌었다. 웃음이 가득한 정원이 되었다. 드디어 정말 굉장한 세상을 만들게 되었다.


“나는 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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