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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나무 Oct 29. 2022

어디에서 행복을 찾나요?

고개를 들면 보이는 것들


# 그림책 에세이

# 고개를 들면 보이는 것들

(원제 : When you look up)

글/그림 기예르모 데쿠르헤즈 | 옮김 윤지원 | 지양어린이


고개를 들면 보이는 것들 표지


어릴 때 나는 늘 굶주려 있었다. 어떻게 글자를 깨쳤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뭔가를 읽고 싶은 갈증에 늘 허기졌다. 가족들은 일찍 글자를 익힌 나를 대견해했지만 가난한 우리 집에는 읽을 만한 책이라고는 없었다. 그래서 벽지 대신 붙여진 신문쪼가리에 있는 글자를 읽는 것도 좋았다. 재래식 변기에 쪼그리고 앉아서 화장지로 사용하는 신문에 적힌 글자를 읽느라 다리가 저린 적도 많았다. 


6학년 때 전교도서부장이 되어 도서관 열쇠를 받았을 때 얼마나 가슴이 뛰었던지... 퀴퀴하고 오래된 책 냄새로 가득한 공간, 거기는 나에게 신세계였다. 시골 학교라 책은 낡아 너덜너덜했고 책도 많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놀라운 보물 창고였다. 굶주린 짐승처럼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정글북, 소공녀, 설록 홈즈, 알프스 소녀 하이디... 그때 생각만 해도 색바랜 낡은 책 냄새가 지금도 나는 듯하다. 여행이라곤 가본 적이 없는 나는 책을 통해 큰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책 속으로 여행하고 책을 통해 꿈꾸고 상상하고 주인공과 함께 모험을 떠났다. 책에 몰두하여 시간가는 줄 모르다가 고개를 들면 긴 그림자를 드리운 햇살에 먼지가 폴폴 날리고 있었다. 도서관 바닥은 나무 조각이 오래되어 틈이 벌어진 곳이 많았다. 친구들과 구멍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 기어다니며 쓰다만 연필이며 지우개 같은 것을 줍곤 했다. 학용품이 귀하던 그 시절, 온몸이 먼지로 뒤덮여도 작은 것 하나 찾으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도서관이란 데를 알고 나서 나는 늘 책 읽는 아이가 될 수 있었다. 책은 외로운 나에게 늘 좋은 친구였고, 충실한 안내자였다. 책 속에서 만나는 많은 이야기들은 허기진 내 속을 넉넉하게 채워주었다. 큰 세상을 만나고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보면서 부족한 나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대부분 책들은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고 뭔가 반짝이는 것들이 있어서 나를 채워주는 듯했다. 책을 읽는 내내 책 속으로 빠져들어가 주인공과 함께 여행하는 시간이 참 행복했다. 


내 책을 한 권도 가질 수 없어서일까? 책을 마음 놓고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서일까? 그 시절 내 꿈 중의 하나는 도서관 사서나 책방 주인이 되는 것이었다. 그 꿈은 주민들이 꾸려가는 지역 어린이 도서관에서 3년 정도 주말에 봉사활동 하는 것으로 이루었다. 책 냄새 맡으며 책을 대출, 반납하는 일이나 책정리 하면서 짬짬이 그림책을 읽기도 했다. 교사가 되어 월급을 받으면 가장 좋은 일 중 하나는 읽고 싶은 책을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마음에 와닿는 책이나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을 사곤 했는데, 지금 우리 집은 방 하나가 도서관이다. 사방을 붙박이 책장으로 맞추어 이런저런 책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사놓고도 다 읽지 못한 책들도 많다. 바라보기만 해도 흐뭇하고 든든하다. 좋은 책을 만나 마음이 넓어지고 내 세계가 확장되는 듯한 느낌, 낡은 틀이 부서지기도 하고, 내면이 성장하고 발전하는 나를 만나는 것이 참 좋다. 책과 함께 살아가는 것, 내 삶의 큰 행복 중 하나이다. 


반 아이들과 도서관 활용수업을 하러 도서관에 갔다. 공간 가득 책으로 채워져 있는 도서관에 오면 마음부터 설렌다. 도서관 이용에 대해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각자 읽고 싶은 책을 찾아 끼리끼리 모여 책을 읽는다.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나를 사로잡는 표지 그림과 제목이 있어 눈길을 멈춘다. 좋은 책은 자석에 끌리듯 다가오기도 한다. 연초록의 봄색깔을 배경으로 귀여운 자동차가 보인다. 『고개를 들면 보이는 것들』이 뭘까? 사서선생님이 추천 코너에 올려둔 책이다. 책의 크기도 엄청나고 184쪽이나 된다. 작가 이름도 낯설다. 이리저리 뒤적이다가 조금 읽어보니 글과 그림이 참 매력적이다. 책을 빌려와서 순식간에 끝까지 읽었다. 


로렌조는 도시를 떠나 한적한 시골 마을로 엄마와 둘이서 이사를 오게 되었다. 낡은 집의 오래된 책상에서 끌리듯이 노트를 발견하고 이야기를 읽게 된다.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마법같은 이야기를 통해 아이는 호기심과 상상력이 커갔고 낯선 동네를 탐험하고 모험할 수 있었다. 


책 속의 책, 퍼즐조각 맞추듯 하나하나 이야기 구슬이 꿰어지는 과정이 참 독특하다. 이야기는 아이를 통해 생생하게 살아나면서 주인공 할아버지와 만나게 된다. 아이와 할아버지와의 만남과 대화가 참 감동적이다. 책을 인연으로 아이는 내면이 단단한 사람으로 자라고, 외로운 할아버지는 삶의 기쁨과 감사를 회복한다. 할아버지가 그랬듯이 아이도 자신만의 인생 이야기를 만들어갈 것이다. 독자인 나도 나만의 인생이야기를 멋진 책으로 만들어가고 싶게 만든다. 오늘 나는 좋은 책을 만나는 기쁨으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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