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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라톤 Jun 25. 2021

상선약수-길을 찾는 지혜

아직 포기하긴 이르다.

여러분은 어떤 철학자를 가장 좋아하시나요?


갑자기 철학이라는 단어를 듣고 나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나요?


저도 그랬답니다.


그런데 철학 첫 수업에서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해주셨어요.


“철학은 사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다.”


사는 방법이라....

이제 머리가 지끈거리지는 않은데,

뭔가 더 어려워진 거 같네요.


오늘 하루 이겨내야 할 일들을 생각하니 어렵지만

우린 이겨낼 거니까 한번 시작해봐요.


사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철학이라면 한번

들어볼 만한 이야기 같죠?


오늘은 제가 너무 힘들 때, 생을 포기하려고 했을 때

도움을 받은 철학자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바로 노자입니다.

무위자연이라는 말은 한 번씩은 들어봤죠?

말 그대로 인위적인 것이 섞이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것이라는 뜻이죠.


좀 더 나아가면 자연에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는 태도를 말한답니다.


노자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의 모습을 받아들이며

살아갈 때 가장 사람답게 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자연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위해 가장 익숙하고 친근한 녀석을 한번 찾아보죠.


하나 정도 구체적인 것을 생각해보면 좀 더 적용하기 쉬울 거예요.


물을 예로 들어볼까요?


물은 길을 따라서 흐릅니다.

물이 가는 길은 땅에서 가장 낮은 곳입니다.

낮은 곳을 찾아내 연결하여 물은 움직입니다.


더 낮은 곳이 없으면 방향을 못 정하고 멈추는데

멈추면 그곳은 고인물이 되어 썩습니다.


노자는 물이 가장 선하다고 했는데,

선한 것은 무엇일까요?


왜 노자는 가장 낮은 곳을 따라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굽이쳐 흐르는 물과 같은 것이 가장 선하다고 했을까요?


저는 처음에는 낮은 곳에 거하는 겸손한 태도를

가지라는 의미인 줄 알았답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했던 의미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춘추전국시대에는 많은 선생님들이 있었습니다. 흔히 오피니언 리더로 불리는 사람들인데요, 이들을 제자백가라고 부르죠.


각기 다른 형태의 제도와 병법들을 제안하며 군주들의 통치 방향을 제시하는데 노자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여 물이 제자리를 찾아서 흐르듯 이치에 맞는 통치를 이야기합니다.


이치를 받아들이는 일은 나의 주장과 능력, 철학이 옳음을 증명하는 것보다 자연과 어우러짐을 통해 가장 자신의 몸에 맞는 방향을 찾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마치 물이 가장 낮은 곳으로 가며 강으로 바다로 길을 찾아내듯이 말입니다.

쉽게 말하면 불평등하고 모순 덩이고 분노가 치미는

세상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물처럼 내가 갈 길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노자는 선함이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상태라고 정의합니다.


물은 땅의 생김새 그대로를 받아들여 중력이 잡아당기는 곳으로 움직입니다. 만약 중력을 거스르는 물체가 방해물이 나타나면 돌아갑니다.

물이 돌아가는 힘을 못 이겨 오히려 장애물이 무너지기도 하지요.


억지로 생김새를 바꾸거나 도구나 제도에 의지하지 않고 태어난 상태 그대로를 인정하는 삶을 무위자연이라고 하였고, 배움의 대상을 상선약수라 하여 물에서 찾았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이라니?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타협하라는, 자포자기하라는 것인가요?


아닙니다.


나를 증명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현실과 이미 너무 멀어져 버린 내 집 마련의 소망은 철학 따위에 귀 기울일 가치를 못 느끼게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가 좌절하는 이유는 어쩌면 이미 판이 짜인 곳에서 다른 옷을 입고 그 틀 안에서 나를 증명하기 위해 몸부림치기 때문은 아닐까요?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우린 분노합니다.

좌절합니다. 그리고 체념합니다.


저는 체념의 깊은 수렁에 빠져 한숨과 낙심의

매일을 반복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계속된 실패의 원인을 내 안이 아닌 밖에서 찾으며 원망의 대상을 만들어내는 일이 저의 일과였습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이 낙심하고 체념하고 분노해도

세상은 변하지 않고 환경과 상황은 그대로입니다.


노자는 이 상황에서 말합니다.


“세상이 부조리함과 불평등으로 가득하다는 사실, 특별히 나에게 더 가혹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여라.

그리고 그 상황에서 내가 갈 수 있는 길을 조용히 눈을 감고 찾아보아라.”


열심히 사는 것으로는 이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열심히만 사는 일은 화장실을 매일 가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회사, 사회,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틀 때문에 죽음에까지 이르는 안타까운 소식을 매일 뉴스를 통해 접합니다.


열심히만 살면 틀에 갇혀버립니다.

틀에 갇혀 그들이 나의 삶을 지배하게 놔둡니다.

분노하고 낙심하고 나 자신을 잃도록 방치합니다.


심지어 자신을 잃어버리고 죽음까지 생각합니다.


결국 그들에게 의지하여 살아가는 쳇바퀴에 걸려듭니다.


물은 의지하지 않고 바다로 강으로 향합니다.

그 길에서 수많은 난관을 만나지만 자연의 원리를 받아들여 때로는 빙빙 돌기도 하고 폭포가 되어 자유 낙하를 하기도 하며 움직입니다.


회사, 국가, 학교는 우리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좌절만을 안겨주지요.


우리는 회사, 국가, 학교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포기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그들은 원래

우리를 지배하며 역사 가운데 폭력을 당연하게

사용했습니다.


어느 상황에 처해도 물처럼 나다움을 발견하고 잃지 않는 것. 그리고 불평등과 부조리한 세상의 현실 가운데서 나다움을 풀어내는 일.


이것이 선함이며 상선약수입니다.


투쟁하고 싸우라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나다운 방법으로 살아갈 수 있는 실마리를  찾는 일은 물이 가장 낮은 곳의 길을 찾는 일과 유사합니다. 자연의 이치는 반드시 길을 만들어냅니다.


우리 개개인도 자연의 이치 가운데 생명을 얻은 몸이기 때문에 반드시 길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실패가 반복되어

살던 집에서 나와 부모님 집에 아내와 함께 얹혀살던 7년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번 생은 망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단칸방도 얻을 상황이 안되어 시부모님의 집에 아내를 데리고 총각 때 쓰던 작은 방에 들어가는 날, 한숨도 못 자고 밤을 새웠습니다.


 “나 하나 망하면 되는데 왜 아내까지...”


모든 자존심을 버릴 수밖에 없었지만 원망과 분노는 나 자신을 좀먹는 바이러스가 되어 계속 반복되었습니다.    


“난 스타벅스에 가서 아르바이트할게. 자기도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해봐.”


아내가 어깨를 토닥여주며 집을 나섰습니다.


제가 당시에 할 수 있는 일은 수학, 언어 과외였습니다. 아파트에 광고 전단지를 붙이며 대학 이후에는 해본 적이 없었던 과외를 홍보했습니다.


언어영역의 비문학 영역을 맡아달라는 전화를 받고

서점에 가서 철학 분야의 책을 찾다가 최진석 교수님의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을 꺼내 들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노자의 사상을 읽으며 뒤통수를 맞은 것과 같은 충격을 받았죠.


“불평등한 현실을 받아들이자. 실패를 인정하자.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내 삶에서 실마리를 찾아보자. 일단 이 과외부터 다시 시작해보자.”


낙심과 좌절이 여전히 반복되었지만 탓하는 버릇을 조금씩 의식해서 줄이기 시작했고 불평과 원망의 소리들이 튀어나오려고 하면 입을 닫았습니다.


부모님들의 강요로 수업에 참석한 중학생들은

불평불만이 가득했습니다.


“이런 철학수업을 듣는 게 무슨 성적에 도움이 되는 거예요?”


“나도 모르겠다. 내가 니들한테 뭔 말을 하겠냐?

그냥 쉬는 시간에 편의점이나 가자.”


강요할 힘도 없던 저는 그냥 아이들에게 강의하고

쉬는 시간에는 편의점에서 스크류바를 같이 먹으며 답답함을 달랬습니다.


멍하니 아이들과 스크류바를 먹던 그 시간,

처음으로 마음의 평온함을 느꼈습니다.


이 평온함이 그토록 제가 찾던 선함이었습니다.


고요함 가운데 살아있음을 느끼는,

다시 일어설 수 있겠다는 가슴 깊은 곳의 울림.


학생들의 불만을 듣다 보니 저는 부모님의 기대, 좋은 학벌을 바탕으로 남에게 인정받는 커리어를 쌓으려는 인생을 살았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은 저에게 맞는 삶이 아니었던 것이죠.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이 내 맘대로 이뤄지지 않자

분노하고 원망과 좌절이 가득한 인생이 돼버렸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가요?


온갖 신조어가 난무하며 좌절과 분노가 대한민국을 뒤덮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 좌절과 분노를 없앨 수는 없겠지만

지금의 내가 서있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보는 일이 모든 가능성의 시작입니다.


불평등과 좌절은 인류의 역사에서 단 한 번도 해결된 적이 없습니다. 특히나 그 경험이 나에게 다가오면 고통이 너무 큽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두 이 고통을 경험합니다.

그 고통을 극복하고 자신을 찾아내는 사람들도 있고, 고통에 먹혀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두가 이번 생은 망했다고 말할 때,

이번 생은 그래도 되살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나요?


단순한 희망을 이야기하는 일이 아니라 고통과 좌절로 얼룩질 것만 같은 세상에서 노자는 말합니다.


무위자연-상선약수

- 선한 것은 물과 같아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고 반드시 길을 찾아낸다.


산속 깊은 곳 한 방울로 시작한 시냇물 소리는

고요하고 잔잔하게 먼 여행을 나설 채비를 합니다.


늦었다고 후회하지도 않고, 가파른 골짜기라고 불평하지도 않습니다.


졸졸졸

유유히 흐릅니다.


우리는 반드시 길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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