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눈물은 베개를 젖게 했습니다. 처음 읽었을 때, 과장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삶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돌아서고 소망이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는 날들이 반복되는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베개가 젖어있었습니다. 처음엔 땀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제 눈도 뻘겋게 되어 있는 것을 보고 눈물인 것을 알게 되었죠. 무엇이 그렇게 억울하고 슬펐던 것일까요? 다윗의 시에서 우리는 절망 가운데 붙잡는 하나님의 옷깃을 만나게 됩니다.
시편 6장 6절입니다.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6장 5절에서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 스올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라고 고백하는 다윗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사망과 지옥이 있다면 이런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덮쳐오고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다들 한 번씩은 있으셨을 것입니다. 혹시 지금도 그런 과정에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생 가운데 우리는 다윗의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사망 중에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 스올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이 죽음과 같은 곳에서 하나님을 기억하는 사람, 지옥과 같은 곳에서 하나님께 감사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하나님 바로 제가 그 한 사람인 것을 기억해주십시오. 이 사망과 지옥과 같은 골짜기에서 저를 꺼내 주세요.
그 고백은 다윗의 고백, 대답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울부짖음입니다. 우리는 부르신 땅인 나의 삶에서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매주 교회로 함께 모여 변함없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섭니다. 그러나 이곳에 오기까지 수많은 일들이 삶을 뒤흔들었을 것입니다.
때로는 사망처럼 때로는 지옥처럼 무거운 휘몰아치는 일일 수도 , 때로는 작지만 소소하게 부딪히는 염려와 근심 앞에 한 번도 삶이 쉬웠던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안 보이는 것 같고 나를 잊은 것은 아니신가 허우적거릴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여전히 주님 곁에 머물러 있습니다. 지치고 좌절한 마음으로 교회를 찾았다가 다시 힘을 얻습니다. 단 한 번도 하나님은 실망시키신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 당황하실지도 모를 한 가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교회의 발전과 부흥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 개개인의 삶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고 교회 테두리 안에서 대안을 찾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집회들을 찾아다니고, 교회를 대안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너무 의지한 나머지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상처받고 등을 돌립니다. 그런데 등 돌리는 그 순간 방황은 더 깊어집니다. 버티지 못한다면 반복되는 떠남과 아픔에 헤맬 것입니다.
교회도, 일터도, 가정도 버텨야 합니다.
사울 왕이 도처에 깔려있습니다.
기독신앙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축복을 받는 비결은 도망가지 않고 머물며 버티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부르신 땅이 아니라 쉽고 감정이 충족되는 곳을 찾아 헤맵니다. 자신의 만족을 찾아 쉽게 등을 돌리고 결국 군중 속에 파묻힙니다.
지금 부르신 곳에서 끝까지 버티고 있습니까?
다윗은 끝까지 사울을 하나님이 기름 부 음 받은 자로 인정하며 버텼습니다. 아무리 주위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라고, 사울을 없애자고 말해도 그는 버텼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자신의 힘과 판단을 아꼈습니다. 사울이 죽은 후에도 이스라엘의 왕의 자리를 차지한 이스보셋과 그의 군대장관 아브넬을 앞에 두고도 7년 6개월을 유다의 왕으로 머무르며 버팁니다. 그리고 가만히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기다립니다.
주님 곁에 머물렀던 다윗에게 하나님은 "내 마음에 합한 자"라는 칭호를 내리십니다.
우리는 오늘부터 3시간에 걸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 곁에 머물다를 주제로 변함없는 주님의 사랑에 반응하는 우리의 모습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첫 번째 “나는 찬양한다.”를 주제로 함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찬양은 다윗이 하나님께 전권을 드리며 버틸 수 있었던 힘이었습니다.
나의, 우리의 찬양은 주님 곁에 머무르게 하는 유일한 힘이며 버팀목임을 함께 찾아 나서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