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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폴로 Feb 02. 2023

멜버른의 '숨은 보물' 뒷골목 이야기

'미사 골목' 호시어 레인(Hosier Lane)

멜버른이 한국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계기는 아마 2004년 방영된 KBS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를 통해서가 아닐까 싶다. 드라마 1화에서 소지섭과 임수정이 조폭들에게 쫓겨 쓰레기통 뒤에 숨는 골목길은 한국인들에게는 소위 ‘미사('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줄임말) 골목’으로 불린다. 이곳의 정식 명칭은 ‘호시어 레인(Hosier Lane)’이다. 호시어 레인은 멜버른의 거리 예술을 감상할 수 있는 대표적인 장소다. 플린더스 역과 가깝고 페더레이션 광장 바로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어 멜버른을 방문하는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찾는 관광 명소이다.

그림1. 빅토리아 주 공식 웹사이트에 소개된 호시어 레인의 풍경(저작권 : Robert Blackburn/ 출처 : visitvictoria.com)

멜버른은 자칭 타칭 ‘거리 예술의 수도(Street art capital)’다. 멜버른에는 그래피티나 벽화와 같은 거리 예술을 구경할 수 있는 곳들이 많다. 그리고 대부분의 거리 예술의 전시장이 되는 곳은 멜버른의 ‘뒷골목’들이다.

그림2. 한국인들에게 비교적 덜 알려진 예술 골목인 프레스그레이브 플레이스(Presgrave Place). 작은 액자 형태의 작품들이 많아 독특한 분위기를 낸다.

멜버른의 매력 중 하나는 이러한 작은 뒷골목들에 있다(영어로는 좁은 길을 뜻하는 lane, alley, place 등으로 불린다). 거리 예술가들에게뿐만 아니라 멜버른의 소규모 카페들과 식당들이 오밀조밀 들어설 수 있게 자리를 내어준 공간도 바로 이 뒷골목들이다(자세한 내용은 <멜버른 커피가 유명해진 또 다른 이유> 편(https://brunch.co.kr/@placeforapollo/6) 참조).


이 좁은 길들을 일반적인 ‘골목’이 아닌 ‘뒷골목’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초기 유럽인들이 멜버른에 정착하여 도시를 계획할 당시 이 골목들은 공식적인 도시 계획상 존재하지 않았던 장소이기 때문이다.


멜버른 초창기 형성 과정을 간단히 살펴보자. 초창기 멜버른은 오늘날 도심 상업 중심가(CBD, Central Business District)로 불리는 곳에서 시작되었다. 식민지를 건설하기 위해 이곳에 온 영국인들은 남쪽으로는 야라강(Yarra River)이 흐르고 북쪽으로는 나즈막한 언덕이 있는 대지에 도시를 계획했다.

그림3. 1838년 당시 위에서 내려다본 멜버른 모습을 재구성한 그림(저자 : Clarence Woodhouse, 1888년 작, 출처 : 빅토리아주립도서관)

멜버른 CBD가 구획된 형태를 살펴보면 이 도시가 철저한 계획도시의 산물인 것을 알 수 있다(그림4). 멜버른의 최소 단위의 구획은 작은 직사각형 형태이며, 그것이 여덟 개에서 십여 개가 모여 하나의 블록을 이루고, 그 블록들이 여러 개 모여 하나의 큰 직사각형을 이룬다. 멜버른에는 이 격자 구획을 기준으로 도로와 건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이곳을 중심으로 도시는 팽창해 왔다. 오늘날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이 격자 형태의 구획들은 1837년 영국 출신 측량사였던 로버트 호들(Robert Hoddle)이 고안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따 ‘호들 그리드(호들의 격자, Hoddle Grid)’라고 불린다. 이 호들 그리드는 멜버른에서 이루어진 최초의 근대적 의미의 도시 계획으로 알려져 있다.

그림4. 1837년 로버트 호들이 구획한 멜버른 도시 계획(출처 : Historical Plan Collection, Public Records Office of Victoria)
그림5. 오늘날의 멜버른 CBD 위성사진(출처 : 구글 어스)

호들 그리드 전체의 크기는 가로 1.61km, 세로 0.8km 정도이며, 호들 그리드를 구성하는 정사각형 구역 하나의 크기는 1 에이커로 가로와 세로 각각 200m다. 그런데 그림5 지도를 자세히 보면 1837년 구획 당시에는 그리드 사이에 골목들이 계획되어 있지 않다. 이는 엉성하고 불법적인 도시 형태가 아니라 질서 정연한 미래 도시를 꿈꿨던 로버트 호들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호들은 그 당시 콜레라, 말라리아, 흑사병 같은 질병의 원인이 물질이 부패하여 발생하는 더러운 공기 속에 있고 그를 통해 전염된다고 믿었다(이 논리를 ‘미아즈마(miasma) 이론’이라 부르는데, 1880년대까지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좁은 골목길들이 질병의 원천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호들은 의도적으로 뒷골목들이 없는 도시를 계획했다.


그러나 이 이상적인 도시 계획은 도시 거주자들의 실생활 수요에는 반하는 것이었다. 도시가 성장하면서 건물 사용자들에게는 주요 도로 쪽으로 드러내기 꺼려지는 쓰레기 처리 등의 각종 작업들을 위한 은밀한 공간이 필수적이었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건물 뒤편으로 접근하기 위한 ‘비공식적인’ 뒷골목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또한 1850년대 골드러시로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토지 수요가 증가하면서 기존에 계획된 격자 모양의 필지를 분할하여 매매하거나 재매매하는 행위가 성행했다. 그 과정에서 이 비공식적인 뒷골목들을 자신의 앞마당으로 삼는 집들도 생겨났다. 사람들은 이 골목들을 사적인 용도로 활용했는데, 주로 하인들의 출입, 말이나 카트를 통한 물건 운반, 쓰레기와 분뇨 수거, 공장들의 추가적인 작업공간으로쓰였다. 일부 뒷골목들에는 판잣집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다른 골목들에는 마구간, 성매매업소, 세탁소, 아편굴, 숙박업소, 공방 등이 들어섰다.

그림6. 1923년경 멜버른 뒷골목 풍경(작가 John Sirlow, 출처 : 빅토리아주립도서관)

당시 런던의 빈민촌에 충격을 받았던 멜버른 도시행정가들은 무질서한 거주지들이 도시의 발전을 저해할 것이라 믿었다. 이러한 불씨를 없애기 위해 멜버른이라는 당시 새로운 식민지는 엄격한 형식에 따라 네모반듯한 도시 형태로 계획했다. 위정자들에게 도시의 뒷골목들은 무질서하고 통제 불가능한 공간으로 여겨졌다. 심지어 당국은 이 뒷골목들에 명칭을 붙여주는 것까지도 반대했다.


그러나 이름이 없다고 해서 공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었다. 결국 정부는 이 뒷골목들의 필요성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1850년대 중반까지 멜버른에는 80개의 뒷골목들에 공식적인 도로명이 붙여졌고, 이 골목길에 주소를 가지고 거주하는 사람들도 수백 명에 이르렀다. 또한 사유지를 관통하는 공공 통행로도 112개가 되었다. 애시당초 사유지의 주인들은 일반인들에게 통행을 허락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이곳에 주로 마차나 차를 세워놓고 짐을 싣고 내리는 용도로 사용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일반인들이 통행에 지장을 받자 정부는 1851년 ‘사유 골목길 법(Private Lanes and Alleys Act)’을 제정하여 골목길 주인들에게 보행자들의 보행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공간을 치우고 제대로 관리할 의무를 부과한다. 물론 이 뒷골목 소유주들은 이러한 정책에 항상 우호적인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자신의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통행료를 부과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행정적으로 공식적인 골목길은 계속 증가해서 1856년 80개에서 1895년에는 158개, 1935년에는 235개에 이르게 된다.


한편 이렇게 정책적으로 뒷골목들의 존재를 인정해야만 하는 불가피한 상황과는 별개로, 뒷골목에 대한 정부와 대중들의 인식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 뒷골목들을 중심으로 빈민촌과 매춘업소들이 생겨났고 그곳들이 외부 사람들의 인식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고층빌딩 숲 속 작은 벽돌집에 담긴 사연(https://brunch.co.kr/@placeforapollo/8)’편에서 다루고 있는 ‘리틀 론(Little Lon)’ 지역이 여기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멜버른에서 뒷골목은 이 도시의 가장 질 낮은 건축적 요소로서 빈곤층의 전유 공간으로 여겨졌다. 뒷골목은 온갖 질병의 발생지이자 부도덕한 행위들의 근원으로 인식되었다. 노상방뇨, 과음, 매춘, 각종 불량스럽고 난폭한 행동들이 일어나는 도시의 수치스러운 음지로 여겨졌다. 실제로 멜버른의 주요 도로들은 1857년 가스불이 들어온 반면, 뒷골목들은 여전히 불빛이 비추지 않고 어두웠다. 도시의 주요 도로와 뒷골목은 각각 도시의 선과 악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여겨졌고, 이를 주요 테마로 하는 소설이 등장할 정도로 뒷골목에 대한 인식은 편향적이었다.


이러한 부정적 인식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 시간이 흐른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였다. 공동화 현상을 겪고 있던 멜버른 도심을 다시 활성화하기 위한 공간으로써 뒷골목들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한 때 이 도시에서 사라져야만 하는 악의 근원으로 여겨지던 곳이 이제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구원투수로 인정받는 변화가 일어난다. 1990년대 멜버른은 경제적 불황기를 겪고 있었다. 임차료가 저렴한 도심 뒷골목에 소규모 카페, 술집, 갤러리들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당시 정부의 도심 활성화 정책들과 맞물려 시너지효과를 내면서 멜버른의 뒷골목들은 오랜 어두운 과거를 뒤로 하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다.


1990년대 초만 하더라도 사람들이 많이 통행하고 활성화되어 있는 뒷골목의 개수가 3-4개 밖에 되지 않았다(그림7의 붉은색으로 표시된 길). 그러나 지난 약 30년간의 여러 노력 끝에 오늘날 멜버른의 뒷골목은 도시의 숨은 보석 같은 존재로 자리매김하였다(그림 7의 보라색 골목길은 재단장을 통해 수혜를 입은 골목, 노란색 골목길은 주요한 기능을 하거나 특색 있는 골목을 의미한다).

그림7. 2016년 멜버른 뒷골목 지도 (출처 : http://www.theurbanist.org)


‘미사 거리’의 그래피티도 멜버른의 뒷골목들을 재생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호시어 레인(Hosier Lane, ‘양말제조업 골목’이라는 뜻)‘의 경우 그 명칭의 유래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당초에는 섬유 제조업체들이 들어서 있던, 관광지와는 거리가 먼 공간이었다. 그러다 20세기 중반부터 산업의 규모가 커지고 속도가 빨라지자 도심에 제조업체들이 남아있을 이유가 없게 되었고, 공장들은 도시 외곽으로 빠져나갔다. 이러한 제조업체들의 외곽 이전도 멜버른도심공동화의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그림8. 1960-70년대 호시어 레인의 모습(저작권 : Halla Carl, 출처 : 멜버른시도서관)

여기서 우리가 ‘공동화’라는 말을 사용할 때는 주의가 필요하다. 멜버른의 경우 주요 산업체들과 통상적인 주거용 시설에 거주하던 경제력 있는 사람들은 도심을 떠났지만(그래서 정부는 이 도시를 가운데가 비어있는 ‘도넛 도시’로 비유했다. <멜버른 커피가 유명해진 또 다른 이유> 편(https://brunch.co.kr/@placeforapollo/6) 참고), 그들이 떠난 공간이 완전히 비워진 것은 아니었다. 소비력 있는 중산층이 더 이상 찾지 않아 임차료가 저렴해진 이 공간은 이제 도시에서 살 곳이 없는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저렴한 숙박시설들로 채워졌다. 하숙집, 단기 숙소, 값싼 숙박업소, 긴급 임시 수용시설 등 말이다.


사실 멜버른 도심은 오래전부터 사무용 또는 상업 시설들의 영업시간 이후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알코올 중독자나 날품팔이 육체노동자, 정처 없이 헤매는 사람들 등이 도심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1970년대 도심 근처에 머물던 이들의 숫자는 적어도 3천 명에서 4천 명 정도로 추정된다. 1984년 정부 보고서에서도 이 당시 약 3천 7백 개의 셋방이 있었고 대략 4천 5백 명 정도가 그곳에 살고 있다고 조사되었다. 1990년이 되어서는 4천 명의 사람들이 저렴한 숙박시설에 거주하며, 930명은 긴급 임시 숙소에, 530명은 노숙을 한다고 보고되어 최소한 5천 5백 명의 빈곤층이 도심에 거주했던 것으로 보인다.


198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도심 ‘재생’이라는 명분하에 저렴한 숙박 업체들은 철거되거나 사라지고 경제력을 갖춘 사람들을 위한 주거용 공간을 늘리기 위한 재개발이 시작되었다. 도심에 거주하고 있던 빈곤층은 살 곳을 잃고 도심으로부터 밀려났다. 소위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낙후된 구도심 지역이 활성화되어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유입됨으로써 기존의 저소득층 원주민을 대체하는 현상(출처 : 두산백과)’이 일어난 것이다. 정부는 멜버른이 ‘도넛 도시’에서 ‘커피 사회’로 변화했다며 도심 재생에 성공했음을 홍보하고 자랑했지만, 그 이면에 젠트리피케이션이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별다른 특색이 없었던 호시어 레인에 그래피티를 그려 넣기 시작한 사람들도 CBD에서 노숙을 하던 예술가들이었다. 1995년부터 거리예술가로 활동해 온 제이-보이(Jay-Boy)의 말에 따르면, 호시어 레인은 그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여러 뒷골목들 중 하나가 아니었다고 한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만약 내 친구들이 여기에 있을 수 없었더라면, 나도 이곳에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른 곳을 찾았겠죠. 이건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오한 문제입니다. 그건 단순히 어디에 그림을 그리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여기에는) 이곳(호시어 레인)을 발전시킨 거리 예술가 집단과 이들을 지지하는 네트워크 있습니다.”


또 다른 거리 예술가 크리스 호닉(Chris Honig)의 말에 따르면, 주류 문화적 시각에서 노숙을 한다는 것은 개인적 패배이자 도덕적, 경제적 실패와 동일시되지만, 그래피티와 거리예술의 하위문화에서는 “자급자족”하는 삶을 전통적으로 지지해왔다고 한다. 따라서 노숙 예술가들에 의한 거리 예술은, 거리 예술이 없었더라면 주류 사회에서는 멸시받았을 사람들에게 존엄성과 자긍심을 회복시킬 수 있는 매개체라고 보았다. 이렇듯 호시어 레인의 거리 예술과 그곳의 노숙자들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기 때문에 약 20년간 서로를 묵인하며 그 관계를 이어왔다.


재미있는 것은 그 과정에서 우왕좌왕하는 정부의 태도이다. 2006년 멜버른은 스텐실 그래피티의 수도로 불리며 명성을 떨치고 있었고, 2008년 국제 여행잡지인 론니 플래닛(Lonely Planet)은 멜버른의 거리 예술이 호주 최고의 문화적 매력요소라고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정책은 그를 따라가지 못했다. 2006년 빅토리아 주 정부는 거리 예술에 대한 ‘무관용’ 원칙을 내세우며 그래피티를 그리른 것에 대한 높은 과태료를 부과했고, 경찰력을 강화했으며, 실형에까지 처할 수 있도록 했다. 멜버른 시 정부도 그래피티를 관리하기 위해 2007년부터 거리예술 허가 제도를 운영하며 허가를 받은 사람들만 그래피티 활동 등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빅토리아 주 정부의 태도가 바뀐 계기는 2010년 영국의 유명 그래피티 예술가 뱅크시(Banksy)가 호시어 레인에 그린 스탠실 벽화를 청소부가 (정부 말에 따르면) 의도치 않게 지워버린 것에 대해, 언론과 대중의 비판 여론이 커지면서부터이다. (엄밀히 말하면,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지워버린 것도 비판을 받았지만, 그에 대한 해명 브리핑에서 뱅크시의 작품에 대해 ‘예외적으로’ 보존하려는 노력을 했었다는 언급을 한 것도 거리 예술가들의 공분을 샀다. 거리 예술에 있어 작품이 지워지고 그 위에 새로운 작품이 다시 그려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속성이기 때문이다.)

그림9. 호시어 레인에 있던 뱅크시 쥐 벽화(좌)와 지우고 있는 모습(우) (출처 : https://hyperallergic.com/6076/banksy-rat-melbourn/)

이때부터 주 정부는 호시어 레인의 거리예술을 ‘독특한 문화유산적 가치’가 있다고 평가하며 이를 보존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그에 따라 뒷골목에 대한 정책 방향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정부는 뒷골목들은 더 이상 도시의 음지가 아닌 청년 문화의 중심지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뒷골목의 문화를 보존하며 관광지로 활용하기 위한 정책을 펼쳐 나갔다. 뒷골목을 매력적으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이 기획되어 예산이 투입되고 있으며, 뒷골목을 중심으로 하는 각종 관광 투어 프로그램, 음악 행사, 시각예술 축제 등이 펼쳐지고 있다.

그림10. CBD의 길포드 레인(Guildford Lane)은 시 정부의 뒷골목 녹화 프로젝트 ‘Green Your Laneway’ 일환으로 진행된 성공적 사례이다.


한편, 거리 예술가들과 정책적 지원에 힘입어 호시어 레인이 점차 거리 예술 관광지로서의 유명세를 더해 가면 갈수록 이곳의 노숙자들은 도시의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되기 시작했다. 호시어 레인에 벽화를 보러 몰려드는 관광객들을 주 고객으로 하는 이 골목 근처의 상점들은 노숙자들의 더럽고, 불쾌한 행위들로 인해 관광객들이 방문을 꺼려한다며 불만을 표출했고, 언론도 호시어 레인에서 노숙하는 사람들의 존재가 도시 관광의 격을 떨어뜨리고 있다며 비난했다. 정부도 마찬가지 입장이었다. 노숙 자체는 불법행위가 아니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이들을 몰아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정부는 2016년 새로운 조례를 도입해 경찰들에게 노숙자들이 노숙 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물품들을 폐기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간접적으로 노숙을 막았다. 이 조치로 인해 약 20명의 노숙자들이 호시어 레인을 떠났다. 한때 도시의 '음지'로만 여겨졌던 멜버른의 뒷골목들이 도시에 부를 가져다주는 문화적 자산으로 인식되면서, 기존에 이곳을 터전으로 삼던 사람들은 쫓겨났다.


물론 도시의 치안 유지나 관광객들의 안전이 위협되는 상황이라면 정부가 개입하는 것이 불가피하나, 정부의 개입 정도와 방식에 대해서는 보다 섬세한 고민이 필요하다. 특히 호시어 레인의 경우 노숙을 하는 예술가들이 그곳을 도시의 예술적 자산으로 만드는데 일조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작품만 환영받고 그들의 존재 자체는 거부당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보다 안타까운 사실은 멜버른의 노숙 인구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16년 멜버른 시 정부에 따르면 멜버른 시내의 노숙 인구수는 지난 8년 새 121 퍼센트 증가하여 약 928명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 호시어 레인은 유명 관광지임과 동시에 노숙자들에게도 이곳은 생활을 이어나가는데 중요한 장소다. 관광객들의 눈에는 잘 띄지 않지만 호시어 레인에는 젊은 노숙자들에게 건강과 보건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영리 시설 ‘The Living Room’이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노숙자들을 위한 건강과 보건 관련 치료나 조언뿐만 아니라 간단한 식음료, 세탁, 샤워, 핸드폰 충전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자세한 내용은 https://www.youthprojects.org.au/the-living-room 참고). 아침부터 선착순으로 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단지 이 시설을 이용하기 위해 호시어 레인에 노숙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정부 정책으로 이곳을 떠난 그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공간의 주인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뀌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 과정이 정말로 ‘자연’스러웠는지 주의깊게 살펴볼 문제다.    




참고자료 및 사이트

1. https://www.abc.net.au/news/2016-10-19/affordable-housing-decline-adds-melbournes-homeless/7946800     

2. Mundell, M (2019). 'From Hotbeds of Depravity to Hidden Treasures: the narrative evolution of Melbourne's Laneways.' The Journal of Writing & Writing Courses, Special, issue 55     

3. Collie, C. (2018). Heritage, the planning imaginary and spatial justice in Melbourne’s “doughnut city.” Historic Environment, 30(2), 28–42. https://search.informit.org/doi/10.3316/informit.142827429510689          

4. https://scroll.in/article/828100/homeless-street-artists-have-turned-a-lane-in-melbourne-into-the-citys-most-instagrammed-spot     

5. https://www.theurbanist.org/2015/09/16/melbourne-a-case-study-in-the-revitalization-of-city-laneways-part-1/     

6. https://www.smh.com.au/entertainment/art-and-design/archibald-prize-entry-highlights-plight-of-melbournes-homeless-street-artists-20170718-gxdejo.html     

7. https://hyperallergic.com/6076/banksy-rat-melbourne/     

8. https://www.theage.com.au/national/victoria/hosier-lane-homeless-left-exposed-as-forum-theatre-boards-up-alcove-20160824-gr0aoq.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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