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폴로 Nov 29. 2022

이 땅의 수호자들에게 감사를

바락 빌딩(Barak Building), 전쟁기념관

첫 수업이 있는 날이다. 오랜만에 학생 신분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마냥 설레기보다는 낯섦이 주는 긴장감이 크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외국어로 공부를 시작한다는 게 막막하고 두렵다.


강의 시간에 맞춰 금발에 검정 사각 뿔테 안경을 쓰신 중년의 여자 교수님이 들어오신다.


“Hello, Scholars! (안녕하세요, 학자 여러분!)”


학생들만큼이나 상기된 표정을 하신 교수님의 첫인사다. 우린 고작 학생일 뿐인데 학자라고 불러 주시다니, 황송하고 쑥스럽다. ‘저분 좀 특이하시네’ 싶으면서도 교수님의 사람 좋은 웃음에 긴장되었던 마음이 조금은 풀린다. (훗날 조교의 설명에 따르면,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학자’라고 불렀던 의도는 학생이든 교수든 모두 함께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로서 동등한 위치에서 열린 자세로 의견을 나누고, 자신의 학업과 연구에 책임감을 갖고 행동하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쑥스러운 인사보다 더 낯설었던 것은 그다음 교수님이 행하신 일종의 ‘의식’이었다. 교수님이 스크린에 띄우신 강의 프레젠테이션 첫 화면에는 낯선 문구들이 가득했다. 교수님은 진지하게 읽어내려가기 시작하셨다.


< 워민제카(환영합니다). 나는 이 땅의 수호자였고, 현재도 수호자인 우룬제리 부족의 조상, 가족, 후손들을 인정합니다. 나는 이번 학기 수업이 열리고 있는 이 대지가 오랜 기간 동안 축하, 시작, 재생을 위한 기념 의식들이 이루어져 온 장소임을 인정합니다. 또한,  로컬 어보리진 부족들이 지속적으로 이 땅의 생명들에게 특별한 역할을 해왔고, 현재도 하고 있음을 인정합니다 >  

< (원문) Wominjeka. I acknowledge the Elders, families and descendants of the Wurundjeri people who have been and are the custodians of these lands. I acknowledge that the land on which we will meet for classes this semester was the place of age old ceremonies of celebration, initiation and renewal and that the local Aboriginal peoples have had and continue to have a unique role in the life of these lands >


그림1. 멜버른 대학교 건물에 걸린 ‘환영’ 현수막. 왼쪽에는 영어로 ‘웰컴’, 오른쪽에는 우룬제리 부족 언어로 ‘워민제카’ 라고 적혀 있다. 그 밑에 옅게 ‘환영합니다’도 보인다

이 수업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과목들의 첫 수업 시작 시 땅의 수호자들에 대한 일종의 '인정과 감사' 의식이 진행되었다. 그들이 이 땅을 무사히 수호하고 보살펴 온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이곳에서 배움을 주고받을 수 있음에 감사를 표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의를 표현하는 의식은 학교 밖 각종 정부 행사나 민간 기관과 개인들의 축사, 인사말, 웹사이트의 첫 화면 등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당초 이 의식은 정부나 공공기관의 의무적인 제도로 시작되었으나 정치적 논쟁에 휩싸이면서 2011년부터 폐지되어 현재는 기관들이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물론 이 ‘수호자’들은 일반적으로 그 땅의 법적 소유주가 아닌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주의 원주민들을 땅의 원래 주인이라고 인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호주의 원주민들에게 땅은 특별하고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들은 땅에도 영혼과 감정이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땅 위에 살아가는 인간들이 영혼을 지닌 땅의 영혼과 생명을 ‘수호’하는 것은 의무이다. 그들은 영혼을 가진 땅을 인간이 물리적으로 ‘소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러니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경제적 소유자로서의 주인 개념과는 다르다.     


멜버른은 약 4만 년 이상 호주 원주민이 살아온 땅 위에 19세기 초부터 영국의 식민지로서 도시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멜버른 근교에서 금이 발견되면서 세계 각지에서 금을 찾아 이곳으로 오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도시는 커져갔다.


그렇게 도시가 백인들에 의해 성장함과 동시에 멜버른 지역에 살고 있던 약 2만 명의 원주민들은 빠르게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잃고 외곽으로 밀려났다. 원주민들은 유럽으로부터 건너온 외지인들에 의해 자신들이 대대손손 땅과 맺어 왔던 관계를 강제로 차단당했고, 기존의 자연과 함께하는 생활 방식과 관습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원주민들의 삶은 위협당했다. 이 과정은 잔인하고 참혹했지만 원주민들의 이야기는 도시의 빠른 발전 속에 기억되지 못한 채 잊혀갔다.

그림2. 1830년대 멜버른 콜린스 스트리트(Collins Street)를 내려다보고 있는 원주민들. (1840년, Edward Noyce)


한국이 전쟁과 분단, 경제적 빈곤을 겪던 1960년대에 멜버른은 이미 올림픽을 치를 만큼 경제적으로 부유했고 번영했다. 그러나 미국의 부상 등 세계 경제의 흐름이 바뀌면서 멜버른은 자신의 재정적 경쟁력을 차츰 잃어갔다. 그리고 경제적 부 이외에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진짜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찾기 시작했다. 그것은 역사적 정통성을 찾는 일이었고 그 역사란 서구 식민지 이후의 역사를 의미했다. 원주민을 몰아냈던 잔인하고 난폭한 역사는 공식적으로 기록되지 않았고, 학교에서는 식민통치를 정당화하는 역사 교육이 진행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일부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이러한 상황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차츰 원주민의 땅에 대한 권리를 인정해야하며 그들의 역사를 제대로 조명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제도적으로는 1993년 원주민 권리법(Native Title Act 1993)이 제정되었다. 그에 따라 호주 정부는 과거에 식민주의로 인해 원주민들이 그들의 땅으로부터 아무런 보상 없이 내몰렸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그들의 땅에 대한 권리와 인권을 보호할 의무를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의식의 변화는 다양한 형태로 도시 공간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멜버른을 자세히 살피며 걷다 보면, 특정 부지나 초목 등이 원주민에게 의미 있는 장소라는 작은 안내판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원주민의 역사와 관련된 문화유산이나 원주민 역사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예술작품들을 찾는 것도 어렵지 않다. 원주민의 역사를 조명한 투어 코스를 소개한 책자도 출간되어 있고, 일부 기초 지자체는 원주민 관련 주요 유적지나 예술 작품을 관광객들이 스스로 찾아다니면서 구경할 수 있도록 지도를 만들어 배포하고 있다.  

그림3. 원주민 문화와 연관된 곳을 연결하여 도보 여행을 할 수 있도록 만든 지도 (출처 : https://whatson.melbourne.vic.gov.au)


그러나 이러한 과정들이 항상 평화롭게만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한 예로 2015년 멜버른 시내 중심가(CBD, Central Business District) 북쪽에 세워진 '바락 빌딩(Barak Building)'을 살펴보자(그림3의 지도상 14번 핀이 위치한 곳). 이 건물은 원주민들의 땅에 대한 권리를 되찾기 위해 노력했던 원주민 운동가 윌리엄 바락(William Barak, 1824-1903)의 얼굴을 건물 전면부에 드러내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건설사 측에서는 원주민 운동가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였으나, 문제는 이 빌딩의 용도가 고가의 주거용 아파트라는 점이었다. 원주민들을 도시에서 몰아낸 것이 급격한 도시 개발이었고, 윌리엄 바락을 비롯한 원주민 운동가들은 커져가는 도시에서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들을 내쫓았던 개발 자본에 의해 원주민의 저항 정신이 조명되는 것이 잔인한 모순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윌리엄 바락의 저항 운동과 정신이 한낱 아파트 파사드를 장식한 이미지로서 소비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그림4. 멜버른 시내 중심가(CBD) 북쪽에 위치한 윌리엄 바락 빌딩 전경.

그러나 이러한 논쟁에서도 이 빌딩의 파사드는 살아남았고, 이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도시가 생기기 이전부터 이 땅에 살아온 원주민들의 존재와 그들의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상기시키고 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바락 빌딩이 멜버른 주요 관광지 중 한 곳인 전쟁기념관(Shrine of Remembrance)과 서로를 일직선 상에서 마주 보고 있다는 점이다. 전쟁기념관은 멜버른의 상징적 랜드마크로서 참전 용사들을 기리고 국가에 대한 의식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그곳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윌리엄 바락의 얼굴은 마치 호주라는 국가의 설립과 유지에 있어 자신들의 존재를 잊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우리가 지켜보고 있으니.

그림5. 전쟁기념관에서 멜버른 시티를 바라본 사진(멜버른 전쟁기념관을 방문하거든 그 계단에 앉아 바락 빌딩을 꼭 찾아보길 바란다.)


그러나 이렇게 원주민의 존재를 드러내는 여러 시도들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은 4만 년이라는 원주민들의 오랜 역사가 약 몇 백년 밖에 되지 않은 식민지 이후의 백인들의 역사에 비해 너무나도 희미하다는 것이다. 또한 법적으로는 원주민들이 땅에 대한 권리가 포괄적으로 인정되고 있으나, 그것이 원주민들에게 전통적 의미가 있는 땅의 흔적을 지워버리는 무차별적 개발까지 저지할 권리까지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그나마 희망적인 점은 이러한 정책의 사각지대는 시민들에 의해 조금씩 메꿔지고 있다는 것이다. 멜버른에는 이 땅을 오래도록 수호해 온 사람들의 노력을 잊지 않고 그들과 함께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선조들의 잘못으로 인해 원주민들이 겪은 아픔을 미안해하고 공감하며 함께 목소리를 낸다. 잘못된 과거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은 이 도시가 아픔을 치유하는 하나의 방법이자 새로운 미래를 그리는 동력이 된다.

그림6. 2019년 주 정부가 고속도로 확장을 위해 잡 우룬 부족의 문화적 유산인 나무를 벌목하기로 결정했고, 반대 시위가 850일간 이어졌다 (사진:Julian Meehan)




참고기사

1. https://www.abc.net.au/news/2011-05-19/victoria-dumps-nod-to-traditional-owners/2719734

2. https://theconversation.com/melbournes-new-william-barak-building-is-a-cruel-juxtaposition-38983

3. https://thefifthestate.com.au/urbanism/infrastructure/why-the-destruction-of-the-djab-wurrung-tree-is-so-wrong/

이전 01화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멜버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