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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Feb 03. 2020

행복이 가져다준 것

무지가 가져다준 고통



여러분 하고 싶은걸 하면서 사세요.



행복이라는 단어를 접하고 그것을 쫓는 삶의 시작은 내 의지와 환상만이 존재했기에 행복했다.
항상 긍정적이었기에 모든 일들이 즐거웠고, 모든 것들은 순조로웠다.


긍정적일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내가 잘하는 일을 하는 것, 내가 하는 무언가에 부정적인 단어는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하지 않는 삶은 불행한 삶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하는 모든 것은 일 그리고 그에 기반하는 보상과 연관 지어져 있었다.


무지에서 오는 행동은 그것을 알아가는데 꽤 많은 고통을 감내해야 함을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난 행복해야 해", “난 행복한 삶을 살 거야" 행복이라는 단어는 스스로를 저당 잡고 잠깐의 행복이라는 환상과 긴 고통을 수 없이 넘나들도록 만들었다.
온전한 행복을 깨닫기도 전에 나에게 ‘불안’이라는 불안정한 상태가 찾아온 것이다.


난 군대를 전역할 때까지도 단어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었다. 불안, 행복 기타 등등.

때문에 ‘불안’을 불안인지 모르는 상태로 살았고, 행복이 뭔지도 모르지만 그저 좋아 보이는 달콤한 단어로서 알게 되면서 그게 기폭제가 되어 불안을 더 깊게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겉으론 아닌 척하며 보상을 바라고, 성장이라는 명목 하에 스스로를 혹사시키는 등 일상의 평범함은 전혀 느낄 수 없는 삶을 살기 시작한 순간부터 행복과는 점차 멀어지는 삶을 살게 되었다.


자유로운 모습과 도전적인 모습은 타인의 시선에 상대적으로 행복한 삶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스스로에겐 더없이 불안한 삶의 연속이었으며, 행복을 추구하지만 행복할 수 없는 삶은 역설 그 자체였다.


행복의 기준이 나의 시선이 아닌, 타인의 시선으로 바뀐 순간부터 행복이라는 포장지 속에서는 불안이 싹트기 시작했고, 삶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 굴레로 접어들었다.


“이 길의 끝에서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잘 살고 있는 걸까,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내가 느끼고 있는 이 행복들을 다시 느끼지 못하는 순간들이 오면 어떡하지”

행복은 상황에 존재할 뿐인데, 행복을 놓치지 않으려 몸부림치거나 굳이 행복을 찾으려 집착할수록 내게 들러붙는 것은 불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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