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Y Feb 05. 2020

남 일 말고, 내 일

이타적인 사람들로 인해 힘들어지는 삶



이타적인 삶이 가장 이기적인 삶이다.



세상엔 이기적인 사람보다 이타적인 사람이 더 많다.


그리고 이기적이기 때문에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보다 이타적이기에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이기적인 삶이 해로운 삶인 줄 알았지만, 시간이 지나 내게 지나친 간섭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이타적인 삶이 가장 해로운 삶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타심은 상대에 대한 관심을 만들고 관심은 상대의 삶을 들여다보려 하기에 마음에 무게를 더하곤 한다.


그렇게 쌓인 마음의 무게는 상대방의 행복을 축하해주고 기뻐해주기도 하지만, 시기하고 질투하며 그 행복한 순간을 끌어내리려 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감정은 이기심이 아닌 이타심에서 만들어진 열등감과 자격지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회 초년생 때 입사한 회사에서 성과 발표를 하는 날이었다.

동기 중에 아무리 봐도 업무적 성실성은 찾아볼 수 없고, 매일 직장 상사들과 놀러 다니며 정치질을 하는데 모든 업무 시간을 할애하는 친구가 있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기에 나는 그 친구의 몫까지 마감을 해야 하는 날들이 다반사였다. 결코 좋아할 수 없지만, 이해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친구가 회사 성과 발표날 업무적 성과를 인정받아 포상을 받게 되면서 폭발했다.

“쟤가 뭘 했다고 성과를 인정받아?”

속으로 화를 억누르며, 억지웃음과 떨리는 눈으로 그 순간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를 이해하려던 마음은 온데간데 없어졌고, 그런 상황에서 더 기세가 등등해진 그 친구와 같은 팀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게 내겐 지옥 같았다. 그렇게 그 상황들이 불편해진 난 프로젝트가 마감되는 대로 회사를 떠나는 것을 선택했다.


"쟤는 잘 지내는데, 불편한 사람이 떠나야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의 마음이었다.


그 후로 수년이 지나 여러 회사를 다니다 보니 당시의 그 상황들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사회는 수많은 사람들이 관계를 하며 살아가는 공간이고, 각자의 생존 영역 속 필사적으로 생존해 나가기 위해 살아간다는 점에서 "그런 사람들도 있는 거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 친구는 회사 내에서 상사들과 어울리는 것, 그들이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내는데 일조하는 것 그게 그가 회사 내에서 선택한 포지션이고 업무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난 그 친구가 일을 하지 않는 것에 화가 난 것보다 웃고 떠들기만 해도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그런 모습에 대한 시기와 질투가 쌓여 그를 더 삐딱하게 바라보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를 이해한다고 생각했기에 생긴 기대감과 그에 따른 실망감이었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은 당시 느낀 감정이 분명 상대의 행복을 기뻐해 줄 수 없는 시기와 질투 가득한 열등감이고, 자격지심이었단 것이다.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고 삐딱하게 받아들이며 스스로를 삐딱하게 마주하게 했다. 부정하려 해도 이것이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의 삐딱한 감정이 만든 결과는 내 등을 토닥이며, “그래도 사람들은 네가 제일 열심히 했다는 걸 알아”라고 말하던 그리고 그 모습을 함께 해준 다른 동료들을 외면한 것이었다.


내가 불만스러운 상황에 집중하는 동안 난 누군가 내게 건넨 위로와 존중에 집중하지 못했고, 그 순간을 돌이켜보며 남의 상황에 집중하다 보면 이렇게 나의 상황을 놓치기 마련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타인의 행복보다 내 행복에 집중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게 가장 빠르고,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길이라는 사실을 난 뒤늦게 깨달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취업과 연애의 관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