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져버린 자존감... 그리고
나는 항상 왜 이럴까...?
회사에서 하는 일들이 꼬일 대로 꼬여서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하는 모든 일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순간 한숨을 쉬며 밖으로 나왔다.
지속적인 성장을 요구하는 환경에서 정체된 순간, 조급한 마음은 권태의 시간을 온전히 즐기지 못한 채 스스로를 부족하고, 무능력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하늘을 바라보며 “아! 때려치울까”라고 생각을 하던 중 마음 반대편에서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거냐”며 내적 갈등을 일으켰다.
내 인생 가장 큰 갈등이자 갈림길이었다.
“도망쳐야 하나”
“부딪혀야 하나”
"도망쳐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내가 그토록 확신에 차 당당했던 순간에 대한 부끄러움 그리고 여기서 더 이상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스스로의 부족함과 무능력함에 대한 실망을 느껴야 했고,
"부딪혀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추락하는 자존심 앞, 이후 나의 삶을 어떻게 이겨내야 하나에 대한 두려움과 높았던 자존심을 숙이는 것에 대한 용기가 필요했다.
경쟁을 하고 성과를 따지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다 보니 삶은 매 순간 갈림길 속의 선택일 수밖에 없었다.
난 그것을 매번 견디지 못했고, 그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선택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선택 앞에는 항상 질문이 따랐다.
“내 삶이 행복해지기 위해선 지금 마주하고 있는 이 불안 속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담배를 끄고 사무실로 올라가 컴퓨터 앞에 앉았다. 초점 없는 눈으로 모니터를 바라보며 아무리 자리를 지키고 있어도 일이 되지 않자 계획에 없던 조퇴를 했다.
눈 오는 겨울 정처 없이 30분을 걸었다.
“지금 내 삶을 책임지기 위해 내가 해야 하는 선택은 무엇일까?”
도망치고 싶은 마음은 책임을 물고 왔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선택을 위한 책임’과 ‘책임을 위한 선택’이라는 난해한 선택지 앞에 도착했다.
나만의 정의 속에서 내가 할 선택이 무엇 일지를 구분하기 위해 노력했고, 지금껏 내가 해온 선택이 어떤 선택이었는지 되돌아봤다.
내 삶 속 대부분의 선택은 ‘편한 선택’, ‘익숙한 선택’. 즉, 내가 한 선택을 위해 책임을 져야 하는 것들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난 항상 책임에 대해 생각했지만, 중요한 순간 내 선택 중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선택만 있었을 뿐, ‘어떠한 이유에서든 책임을 지고 싶은 선택’은 없었음에 새삼 놀랐다.
그리고 곧,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내게 찾아오는 순간이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고, 이 의문에 대한 답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기에 답을 내릴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추위를 피해 다가오는 버스에 올라탔다.
긴 고민을 했고, 삶을 돌아봤지만 내 선택은 또다시 책임을 회피하는 익숙한 선택이었다.
그 선택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생각했다.
“책임지고 싶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삶을 산다는 건 어떤 걸까?”
질문은 늘 삶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출발점이었고,
그 선택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책임지고 싶은 삶을 살기 위한 불안한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때때로 난, 내가 한 선택이 어떤 선택이었는지는 알고 있음에 스스로 합리화를 하곤 한다.
“편한 선택”
“익숙한 선택”
“어떠한 이유에서든 책임지고 싶은 선택”
20대 내 삶에서의 선택은 항상 책임이라는 거창한 이름의 불안을 데리고 다녔다.
때문에 한편으로는 “책임을 진다”라는 표현보다 “불안을 감내한다”라는 마음으로 선택을 했을 때, 선택의 갈림길에서 더 큰 도움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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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권태를 이겨내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정체하지 못하는 사람인 내게, 권태는 항상 나를 부족한 사람으로 만들곤 했다.
생각을 멈추지 못하고, 행동을 주저하며 스스로를 깎아내리기 위한 온갖 핑계를 만들곤 했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고스란히 나 자신에게 스트레스라는 독이 되어 돌아왔다.
스트레스가 쌓인다는 건 성장의 순간일지도 모르지만, 선택해야 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