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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Jun 03. 2020

'완벽주의'의 삶

누가 뭐래도, 그저 억제하며 살아갈 뿐



해야 돼! 해내야 돼!



 언제부턴지 기억도 나지 않을 무렵부터 생긴 열등감에 약점을 비추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왔다.

 '완벽주의'라는 강박, 완벽한 사람도 아닌데 완벽하려 애쓰느라 스스로를 갉아먹었다.
 
 내가 스스로 제한한 시간과 그에 대한 강박으로, 누군가가 제한하는 시간보다 내가 제한하는 시간이 점차 늘어나면서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누군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를 죽이는 데드라인을 만들고 그 시간을 지키지 못할 때마다 스스로를 또다시 옥죄었다. "정말 이렇게 살다 간 죽겠구나" 싶을 때 즈음에서야 강박을 끊어냄과 내려놓음을 배울 필요성을 느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와중에도 난, “이 모든 문제는 스스로 해결해야 돼”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 놓인 내게 이것저것 추천도 해주고, 휴식을 권하며 내가 가진 강박을 손에서 놓기를 바랐지만, 타고난 게 그런 건지 성장 과정 속에서 자라난 성향인지 난 남들이 하라는 대로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조금 못해도 되고, 실수하고 깨져도 되는데 "나는 그러면 안 된다"는 스스로에 대한 깰 수 없는 기준, 그 기준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었다.


 그야말로 좀먹는 삶이었다.
 
 남에게 관대하고 스스로에게 냉혹한 기준을 세우는 것, 틀린 삶이라 생각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지고 이게 사는 건가 싶을 때면 나는 나를 애써 위로했다.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
 “뭐 어때, 이 또한 결국 지나가겠지”


 홀로 스스로를 위로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누군가에게 위로받는 것보다 자기 위로가 많은 삶, 위안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외로운 삶이었기 때문이다.


 지치고 내몰기를 반복하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어느 날, 씻고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내가 늙어 죽어 내 묘비에 나의 삶에 대해 적는다면, 뭐라고 적을 수 있을까?"


고민은 길지 않았고, "아마도 이렇게 적지 않을까?" 생각하며 머리맡에 있는 노트를 집어 들어 딱! 한 줄을 쓴 뒤 내가 살아오며 겪은 삶의 모든 감정이 담긴 한 줄이라고 생각하며 씁쓸한 미소를 지은 후 노트를 덮었다.


 2018.2.7(수),  

 "완벽하게  살고 싶었지만 어느 누구보다도 완벽할 수 없는 삶이었다."


나는 나에게 밤마다 침대에 누워 이렇게 말한다.

"내가 좀 못해도, 세상은 별문제 없이 잘 돌아간다고..."


그리고 나와 같은 누군가가 있다면 똑같이 얘기해주고 싶다.

"네가 좀 못해도, 세상은 별문제 없이 잘 돌아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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