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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Jun 01. 2020

“웃으면서 살아”라는 말의 폭력성

웃음을 강요받는 삶



안 좋은 일 있어? 좀 웃어



어느 순간부터 웃음을 강요받고 있다는 기분이 드는 날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웃어야 해”
 “인상이 좋아 보이려면 웃어야지”
 “사람들은 웃는 얼굴을 좋아해”


내 평소 표정은 무표정이지 웃는 표정은 아니었고, 내 평소 얼굴이 웃는 표정으로 탑재되었으면 좋으련만 난 그렇지 못했다.


사람들은 웃지 않는 나를 보며 이렇게 묻곤 했다.


 “무슨 일 있어?”

 “화났어?”
 
 이러한 질문들에 일일이 변명하듯 답변하던 난, 사람들의 인식에 사로잡혀 정작 웃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웃고 있는 나를 발견했고, 스스로에게 괜스레 미안해졌다.
 
 나의 웃는 모습이, 웃는 나 자신이 싫은 건 아니었다.

다만 즐겁고 행복한 순간에 내 마음에서 우러러 나온 행복의 웃음을 짓고 싶을 뿐이었다.


"인간의 감정이란 게 그런 게 아닐까?"라는 원초적인 생각과 함께 "웃음이 얼마나 큰 감정노동이 될 수 있는지 그들은 모르는 걸까?"라는 분노 섞인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애써 웃는다고 한들 삶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란 사실 쯤은 그들도 알 텐데 왜 상대에게 웃음을 강요하게 된 걸까?"


한참을 생각에 잠겨있다 보니 감정을 강요받는 삶의 힘듦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억지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삶이 무조건 적으로 나를 괜찮은 환경으로 이끌어주는 것은 아님을 가까운 과거를 돌이켜 보는 것만으로도 되짚을 수 있었다.


살다 보니 생각보다 내 삶은 타인에 의해 많은 부분에 대해 강요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순간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잘 살아낼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억지로 감정을 표현하지 않아도

 매일 웃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의 표정을 드러내도
 숨길 줄 몰라도


내 삶은 그들을 만족시키는 만큼의 만족을 느낄 수는 없음을, 누군가는 나의 웃는 모습이 나를 위함이라 말하지만 사실은 타인을 신경 쓰는 그들을 위함이라는 것을 내 마음속에 새기기로 했다.

 
"내가 잘 살아내기 위해 사소한 감정을 다루는 일까지 기계적으로 살아갈 필요는 없겠구나"

앞으로 더 잘 살아내기 위해 내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었다.


만약 누군가 나처럼 웃으며 살아가길 강요받고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때론 있는 그대로 그렇게 살아도 괜찮다.
 힘 빼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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