겪어봤다면 하지 못하는 말들
세상엔 겪어보지 못했다면, 쉽게 내뱉지 말아야 할 말들이 존재한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에게 계획은 없다.
죽고 싶어서 계획을 하다가 오늘 죽어야지 하고 죽는 게 아닌 속으로 삼키고 삼키고 스스로의 내면을 죽이는 생각들을 하다가 문득 내가 처한 이 상황보다 죽는 게 더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냥 그런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우울증에 걸려서 자살을 했다.”라고 표현하지만 “우울증에 걸려서 내가 편해질 수 있는 선택을 한 것이 자살일 뿐이다.”라고 말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누군가는 우울증에 걸려 자살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의지가 약해서 죽은 거야”, “죽을 용기가 있으면 살아야지". “그 방법밖에 없었던 걸까?”
이렇게 생각하는 게 나쁜 것이다.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전에 그들은 “그런 방법밖에 생각하지 못할 정도 아픈 상태 혹은 상황에 처해있었다”라는 사실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할 뿐이다.
생각이 한쪽으로 치우치고 기울어 벗어날 수 있는 수많은 조건들을 두고도 길을 찾지 못하고 그 상황을 도피하지 못해 우울한 스스로에게 가장 편한 선택을 하는 길이 자살이었을 뿐일지도 모른다.
행복도 그렇지만 우울함과 불안함은 감정 속에 존재하는 게 아닌 상황 속에 존재한다.
나를 우울하게 만들거나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상황이 존재하는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이 아닌 '피하기 매우 곤란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
단언컨대, 작은 우울은 상황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아닌 나로 인해 곤란해질 것 같은 이 상황을 벗어남으로써 우울과 불안으로부터 점차 멀어질 수 있다.
착해 빠진 수많은 사람들은 내가 처한 상황보다 내가 없는 상황 속에 생길 일어나지 않은 일들이 더 매우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나 때문에', '나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하지만, 삶에 있어서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난 선택할 수 있는 존재이기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버릴 수 있다"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일지라도 스스로가 판단했을 때 살기 위해 그 상황에서 도망치는 것은 분명한 용기이다.
부디, 살고 싶다면 뒤도 보지 말고 도망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