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살이, 들살이에 앞서 밭살이에 대한 꿈이 있었다. 이곳저곳 유랑하며 하루 이틀 반짝 사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귀농을 해서 눌러앉아 자급자족하며 살고 싶은 꿈. 누구나 그렇듯 직장에서 한 번씩 휘청일 때마다, 살림살이 빠듯하다 느낄 때마다, 도시생활이 무의미하다 생각될 때마다 시골살이에 대한 유혹은 강하게 되살아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모든 걸 뒤로 하고 떠나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숨겼다. 아마도 아이들이 없었다면 남편과 둘이 어떤 일이든 벌였을 테지만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기에 우린 이미 가진 것이 너무 많았다.
그때부터인가 보다. 시골살이에 대한 아쉬움을 텃밭에 가서 풀었던 것이. 건이가 한 돌이 갓 넘었을 무렵, 그러니까 호야가 뱃속에서 막 집을 짓기 시작했을 때 나는 집 근처에 분양하는 주말농장 5평을 사서 없는 솜씨로 첫해 농사를 시작했다. 5평이라길래우습게 보았던 것이 폐착이었다. 호미질 한번 해보지 못한 손목으로 꽁꽁 언 2월의 밭을 삽질해 갈아엎고 나니 며칠을 몸살로 몸져누웠다. 봄이 되길 기다려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고 그렇게 그 쬐깐한 밭을 붙들고 별의별 짓을 다 했다. 그러고 보면 호야의 태교를 텃밭 생활로 한 셈인데 몸은 고될망정 마음은 한없이 풍요로웠던 것 같다.
배가 부른 마누라가 텃밭에 빠져 주말이면 온종일 밭에만 가 있으니 남편이 아무래도 불안했는지, 심심했는지 언제부터인가 텃밭 옆에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이른바 텃밭캠핑의 시작이다. 아마도 일하다 힘들면 좀 누워서 쉬라는 신호였나 보다. 덕분에 나는 텃밭일을 하면서도 뱃속에 호야를 잘 지켜낼 수 있었고,어린 건이는 텃밭과 텐트를 오가며 흙과 풀을 친구 삼아 잘도 놀았다. 텐트는 여름엔 시원한 그늘이 되어주었고, 봄가을엔 고기도 구워 먹을 수 있는 쉼터가 되어주었다. 직접 기른 채소를 뜯어 즉석에서 먹는 맛은 시골살이에 대한 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하게 해 주었다.
텃밭 캠핑의 묘미는 아무래도 방금 수확한 식재료로 먹고사는 재미일 것이다. 남편이 숯불을 넣어 고기를 구우면 나는 여름내 땀 흘려 키운 각종 잎채소와 열매채소를 밭에서 따온다. 농약을 치지도 않았으니 그냥 슥슥 닦아 먹거나 가져온 물에 대충 씻어 먹어도 그만이다. 상추와깻잎 같은 잎채소를 한 소쿠리 담아와서 고기를 올려 입안에 넣으면 여름의 맛이 평소보다 더 진하게 느껴진다. 갓 딴 고추도 풍미가 더 사는 것 같다. 기분 탓이겠지만 왠지 더 건강해지는 오늘을 사는 것 같다.
새참 시간은 달콤하다. 오후 햇살에 따끈해진 토마토를 따서 입안 가득 배어물면 미지근한 육즙이 흘러나오며 그게 또 그렇게 맛있었다. 목이 마르면 오이를 따서 씹어 먹고 초가을엔 아기 당근과 어린 무를 뽑아 간식 삼아 씹어먹었다. 모두가 하늘이 준 소중한 먹거리들이었다. 식재료에 대한 친숙함 덕분인지 건이는 지금도 편식이 거의 없는 편이다.
어쩌면 우리 부부는 텃밭캠핑을 통해 귀농생활을 조금이나마 맛보려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너른 안마당 한 귀퉁이에 자그마한 텃밭을 만들고 잎채소를 심어 끼니때마다 뜯어먹는 재미, 뒤뜰에서 캐온 고구마며 감자를 저녁 아궁이 군불에 넣어 구워 먹는 재미를 나름 흉내 내 본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삶은 비록 못 될지라도 최선을 다해 조금이라도 가깝게 다가가 본 시도가 아니었나 싶다. 이 기쁨을 포기하지 못하고 우리는 둘째 출산 후 2년을 더 텃밭캠핑을 즐겼다. 5평을 더 늘린 10평의 공간에서.
자급자족을 해 본 사람들은 안다. 완벽한 자급자족이란 불가능하다는 걸. 하지만 고작 10평의 뒷간 땅이라도 4인 가족이 먹고 살기에는 넘치는 수확물을 선물 받을 수 있다. 나 같은 호전적인 도시농부는 호기심이 허락하는 대로 농작물을 실험 삼아 심어보기 때문에 초기에는 거의 20가지 이상의 채소와 허브를 이 작은 땅에서 키워 먹었다. 하지만 이런 다품종 소량생산 방식은 제대로 된 농법도 모르고 오직 퇴비만으로 밀어붙이는 엉터리 유기농부의 텃밭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농작물의 반을 벌레들과 나눠먹거나, 잡초로 무성해진 밭에서 거의 채집처럼 수확물을 찾아내야 하는 수고스러움을 감수한다면.
3년간의 텃밭 생활은 아이들의 인생 초기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매일매일 밭에 나가 흙에 구르고 풀을 만지고 식물을 기르는 행위들이 혹시나 나 개인의 욕심에 의한 건 아니었을지 조심스럽다. 하지만 나 자신이 내 아이들만 한 유년기에 시골살이에서 느꼈던 풍족한 감성을 잘 알고 있기에 그들 역시 그런 감성을 공유하길 바란다. 바람에 날려오는 흙냄새와 푸성귀가 주는 싱그러움, 어제와 다른 성장의 놀라움과 먹거리에 대한 감사를 내 아이들도 느껴주길. 이때 느끼는 감각의 기억은 거의 평생을 따라다닌다는 걸 내 자신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밭살이의 기억은 아마도 아이들에게 사라지지 않는 굳은살처럼 마음의 체력을 뒷받침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