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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집

내가 살았던 집_20

by plan B

엄마는 매년 가족들의 점을 봤다. 내가 아직 어릴 때는, 마을에서 성황당제를 지낼 때마다 가족의 소지품이나 속옷을 태우고 점괘를 받아왔다. 어릴 때 굿하는 걸 너무 봐서 무섭다던 엄마였는데, 매년 돌아오는 성황제에 찾아가는 엄마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냥 마을의 전통이려니 생각했다. 내가 어른이 되고 나서는 마을에서 성황제를 지내는 일이 뜸해졌기에, 매번 유명하다는 곳을 찾아다녀야 했다. 그해에도 엄마는 동생과 함께 이름난 점집을 찾아 나섰다. 그해는 유독 가족들에게 힘든 해였기에 엄마는 한 달이나 대기가 있는 집인데도 불구하고 한달음에 달려갔다. 그리고 듣지 말았어야 할 말을 듣게 되었다.


점쟁이 분은 집안의 조상귀신이 자손들에게 안 좋은 일은 한다고 했다. 그 귀신은 엄마조차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큰어머니라고 했다. 돌아가신 큰어머니가 있는 줄 몰랐던 나와 동생은 당황했다. 우리가 알고 있던 큰어머니는 돌아가신 큰아버지가 재혼하신 분이라고 했다. 엄마도 결혼하고 나서야 큰아버지가 재혼하신 걸 알았다고 했다. 돌아가신 큰어머니가 존재했다는 것 자체가 아빠 가족들 사이에서는 금기사항이었기에, 엄마는 결혼 후 동네사람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고 했다.


선본 지 한 달 만에 결혼식을 올린 새신부에게 그 일은 꽤나 충격이었다. 돌아가신 분이 우리 동네 출신으로, 잘 얻어먹지 못한 채 동네를 하염없이 돌아다녔다고 했다. 할머니는 그런 큰어머니에게 모질게 시집살이를 시켰다. 결국 그 끝은 자살이었다. 엄마는 큰어머니가 목을 맨 할머니집이 너무 무서워졌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는 내가 할머니집에 산다고 했을 때 그렇게나 반대를 했다. 차마 아직 학생이었던 내게 사실을 말할 수는 없었기에, 엄마의 강압적인 반대에 엄마를 원망했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나는 다 쓰러져가는 집을 피해, 넓은 할머니집으로 엄마의 반대를 무릅쓰고 들어갔다. 그래서일까. 큰어머니가 구천을 떠돌며 내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엄마는 일러준 대로 큰어머니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밥과 국을 떠놓고 빌었다. 일주일간은 매일 같은 시간에 해야 된다고 했다(원래는 그분의 생신에 맞춰서 하면 좋다고 했는데, 가족 중 누구도 돌아가신 큰어머니의 생신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 일은 제대로 끝나지 못했다. 기도가 시작된 지 3일쯤 되었을 때 동네에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너네 시어머니 죽으라고 기도 하냐고." 딸을 위해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형님에게 기도를 한 것이, 어느새 할머니를 죽이기 위한 주술로 바뀌어 마을 전체에 떠돌고 있었다. 할머니가 동네에 엄마에 대한 악설을 내뱉고 있었던 것이었다. 엄마는 결국 동네를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차마 할머니를 미워할 수 없었다. 백발에 이제 완전한 노인이 되어버린 할머니를 보면,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르면서도 차마 미워할 수 없었다. 차라리 마음껏 미워할 수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엄마를 아직까지도 음해하고 미워하는 나의 늙은 할머니를 어떻게 봐야 할지 아직까지도 혼란스럽다.


가끔은 그 동네가 저주받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집뿐만 아니라 마을 전체가 저주받은 듯한 느낌이 든다. 나이가 들다 보니 어렸을 때는 안 보였던 것들이 보였다. 방학중도 아닌데 갑자기 사라진 친구들과 술과 도박으로 망가져버린 마을... 가정폭력으로 물든 집들. 여자라고 할머니에게 구박받는 나와 같은 아이들. 자식들 때문에 능력 없는 남편과 이혼하지 못하고 억척스럽게 살아야 했던 여인들. 그리고 같은 상처를 간직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저주받은 마을.


나는 나에게 해를 끼친다는 큰어머니가 무섭기보다는 너무나 안쓰러웠다. 그녀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다. 죽어서도 밥조차 제대로 얻어먹지 못한 채 구천을 떠도는 그녀가... 그런 그녀가 자신을 그렇게 몰아넣은 집안의 자손을 결코 좋게 보지 못하는 것이 숙명처럼 느껴졌다. 그중 왜 나일까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나도 모르게 납득하게 되었다. 굳이 그런 저주받은 집에 다시 돌아왔던 자손은 나밖에 없으니까. 만약 우리가 어린 시절 그 집을 떠나지 않았다면, 우리 가족은 어떻게 됐을까? 그런 상상을 할 때마다 무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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