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았던 집_22
이사를 할 때마다, 나는 늘 긴장한다. 먼저, 집주인에게 연락하는 것도 긴장되었지만, 무엇보다도 보증금을 제때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불안이 늘 압박으로 돌아왔다. 그때마다 생각나는 것은 일본집이었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내 이름을 걸고 부동산과 계약했던 그때가. 다행히 그 맨션은 부동산회사가 소유하고 있어서, 따로 집주인과 연락할 일도 없었고, 계약연장에 외국인이라 불리한 점이 조금 있었지만, 이사도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어 돈이 많이 든다는 것 외에 따로 긴장되는 일(집주인과 보상문제로 설왕설래하는 일)은 없었다. 거기에 전세입자가 나가고 나서야만 집을 볼 수 있는 일본에서 마지막에 집 상태를 관리사무소 사람들과 확인할 때를 제외하고는 내 집을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었기에 이사를 둘러싼 트러블이 크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보증금의 금액이 커질수록 이사 스트레스는 더욱더 커졌다.
집주인과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집주인 운이 좋지 않았다. 해방촌 집은 중간에 집주인이 바뀌면서,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것도 6개월 넘게 시도 때도 없이 내가 사는 집을 보러 온다는 것은 스트레스였다. 미리 약속이라도 잡고 오면 양반이었다. 아무 연락도 없이 현관문을 두드리는 사람부터, 집이 나가고 나서도 부동산과 집주인 간의 연락이 되지 않았는지 도어록 번호를 누르는 곳도 있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현관에 들리 소음에 민감해졌고, 발소리만으로도 우리 집을 방문하는 사람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집을 내놓은 집주인의 권리를 인정해 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6개월간 셀 수 없는 사람들이 집에 들이닥쳐 나는 심신이 괴로웠다. 당연히 그 일은 해방촌 집을 나올 때도 계속되었다. 4개월 동안 다음 세입자를 구하지 못한 집주인은 내게 보증금을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나는 어떻게든 집이 나갈 수 있게, 부동산 사람들이 오면 현관문을 열어줬다. 이 집이 나가야 내가 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그런 내게 집주인은 오히려 엿을 날렸다. 나는 내가 참 바보 같기도 했고, 내 집이 없는 서러움이란 이런 걸까 하는 생각에 빠지곤 했다.
결코 내 잘못이 아님에도...
수리에 있어서도 큰 차이가 있었다. 어느 겨울에 일이었다. 베란다 유리문의 금이 쫙 가 있었다. 다행히 유리문 안에 안전망이 있어 떨어지지 않았지만, 침대 머리 바로 위에 있던 문이라 떨어졌으면 어쨌을까 아찔했다. 처음 겪는 일이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관리회사에 연락했다. 일은 일사천리였다. 내가 집에 있는 시간에 맞춰 문을 확인하고는 바로 교체해 주었다. 왜 유리가 금이 갔는지, 내가 무슨 행동을 했는지 일언반구 말하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다 싶었다.
한국에서는 달랐다. 해방촌 집으로 이사하고 여름이 왔다. 그해 여름은 유독 비가 많이 내렸다. 다행히 저지대도 아니었고 비피해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는데, 장마가 길어질수록 방안을 떠도는 곰팡이 냄새가 심해졌었다. 곰팡이 냄새의 원인을 찾기 위해 침대를 빼고 장판을 들었을 때 나는 아연질색했다. 장판 밑이 물기로 찰랑였다. 습기 때문인 줄 알았던 나는 한여름임에도 보일러를 틀고 바닥의 물기를 말렸으나, 비만 오면 똑같은 현상이 연이어 나타났다. 집주인에게 말했지만 보일러를 틀 수밖에 없다는 대답만 왔다.
그날도 비가 억수같이 내렸고, 장판이 들려있는 작은 방을 나는 주시했다. 물기는 바닥에서 올라오는 것이 아니라 옆벽에서 흐르고 있었다. 벽의 도배지를 들춰보자 벽 전체에 크게 금이 가 있었다. 그 금사이로 물이 스며들어 똑똑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철철 흘러내렸다. 임기응변으로 강아지 배변패드를 사서 그 밑에 받치고 집주인에게 전화를 했다. 금이 간 벽 뒤로 옥상에서부터 배수관이 이어져 있었고, 배수관에서 비가 내려갈 때마다 물이 샌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집주인은 바로 내 탓을 했다.
무슨 짓은 한 거냐며, 건물의 하자를 내 탓으로 돌렸다. 4층 벽돌 건물을 내가 어떻게 했다 말인가. 헐크도 아니고 내가 벽을 부술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어이가 없었다. 원인은 내가 아니었음에도 집주인은 나의 탓으로 했다. 내가 망치질을 한 것도 아니고, 배수관과 벽의 금을 어떻게 손상했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20년이 넘는 건물이었고 당연히 노후화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은지 묻고 싶었다. 답답하고 억울한 내 맘보다도, 집주인은 자신의 재산에 손해가 갔다는 생각만 했다. 내 잘못이 아님에도 왜 나는 이런 변명 아닌 변명을 해야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다행히 전문가의 진단으로 내 잘못이 아님이 판결 났지만, 주인은 결코 사과하지 않았다. 우리는 왜 이런 변명을 해야 하는 것일까...
결국, 집도 하나의 소모품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흐르면 그만큼 노후화되어 가는 소모품. 벽지도 바닥도 건물도... 아무도 살지 않더라도 시간에 따라 삭아간다. 누군가 살고 안 살고 가 문제가 아니라 노후화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집주인들이 생각보다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결국 일본과 한국의 차이가 아니라 집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차이가 아닌가 싶다. 평생 집주인도 세입자도 없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그 위치가 바뀔 수도 있고, 당장 내가 아니더라도 나의 가족과 친구들의 당할 수 있다는 걸 우리는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