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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주차전쟁

내가 살았던 집_21

by plan B Mar 11. 2025

해방촌은 남산 아래 언덕에 형성된 첫 마을로, 광복 이후에 사람들이 몰려와 살게 되며 우후죽순으로 집이 생겨났다. 그래서인지 소월길을 제외한 마을길은 어디로 이어졌는지 모를 정도로 미로 같다. 게다가 남산자락에 계획 없이 생겨난 길이라 그런지, 두 사람이 걸어 다니기도 힘들 정도로 좁은 길도 만날 수 있고, 눈이 내리면 내려갈 수 없을 만큼 험준한 경사길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러나 나는 그 길들이야말로 해방촌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동네친구와 산책을 할 때면 어디로 이어져 있을지 모를 길들을 지나다 보면, 소소한 방황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맘 놓고 헤맬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으니까. 그런 해방촌 골목길의 매력을 반감시키는 요소라 하면 역시 무분별하게 주차되어 있는 차들이다. 어떻게 여기까지 주차가 되어있을까 싶은 곳까지 테트리스처럼 맞춰져서 알차게 있는 차들을 보면 찬사를 보내면서도,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 현상은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더 심해진다.


주차전쟁. 그야말로 전쟁이다. 오래된 집이 많다 보니 주차장이 없는 곳이 많아, 어느 집이든 주차에 곤란을 겪었다. 거기에 턱없이 모자란 공용주차장은 월 주차를 위해 몇 달을 대기해야 할지 몰랐다. 집에서 야경이라도 보려 창문을 열면, 어김없이 주차 때문에 큰 목소리가 자주 오가는 풍경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해방촌이 핫플로 뜨면서 그 현상은 더 심화되었다. 특히 금요일 밤만 되면 해방촌을 올라가는 메인도로는 양쪽 다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북적였다. 나는 그 광경을 볼 때면 걸어가기도 힘든 경사에 차들이 어떻게든 간신히 매달려 있으려고 하는 느낌을 받았다. 일명 핫한 가게들이 있는 경사길을 마을버스와 차들, 거기에 사람들까지 매달려 있는 광경은 어찌 보면 해방촌의 명물이기도 했다. 차가 없는 내게 그 일은 재미있는 풍경이기도 했다. 이곳이 서울이구나를 한눈에 알 수 있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막상 내게 의도치 않게 차가 생기면서 도저히 그 풍경을 즐길 수 없게 되었다.


출장이 잦았던 회사는 내게 차를 렌털해 주었지만, 나는 주차공간을 마련하지 못했다. 집 앞은 이미 다른 거주자들의 차로 오래전에 만차가 되었다. 혹여나 주차 공간이 생기더라도 일자주차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출퇴근 시간이 일정치 않던 내게는 이용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공용주차장은 당연 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인근(?) 서울역 근처 빌딩이었다. 월 23만 원에 넓은 주차장이었지만, 집에서 도보로 40분이나 걸렸다. 나는 출근하기 위해 마을버스를 타고 차를 찾으러 갔고, 퇴근 후에도 같은 생활을 반했다. 빌딩에 주차를 하고 나오면서 그 빌딩에 사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특히나 퇴근 시간에 맞물려 만원인 마을버스를 탈 때면 그 생각은 더 깊어졌다. 회사 차를 반납하고 난 후에도 나는 다음에 이사를 간다면 주차걱정 없는 곳으로 가리라 다짐했다.


잠시 차가 있었던 이후로 골목길의 차를 보는 내 시선도 달라졌다. 주차전쟁을 피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이렇게 차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이 존경스러워졌다. 그들도 원해서 주차전쟁을 하고 있지는 않을 테니... 서울 하늘아래 어떻게든 먹고살기 위해 이 전쟁을 견디고 있음에 나는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가끔 인터넷에 골목길에 주차된 차들을 ai로 지운 사진이 올라왔다. 우리나라 골목도 이렇게나 아름다울 수 있다며 올라오는 사진이었다. 확실히 차가 사라지니 집들마다 특색도 보이고, 길가에 핀 꽃들도 더 잘 보였다. 그러나 나는 그 사진을 보며 뭔가 허전함을 느꼈다. 그 사진이 정말 우리나라일까? 차가 없는 골목의 모습이 오히려 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방촌 집을 나오는 날, 처음으로 집 앞에 항상 주차되어 있는 차량의 차주를 만났다. 이삿짐차가 들어오기 위해서는 차를 앞으로 빼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 나는 이틀 전에 미리 편지를 써서 올려놓았다. "모월 모일 몇 시에 이사예정이니 잠시 앞으로 차를 빼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나 당일 차는 그대로 있었고, 나는 긴장하며 차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짧은 신호음 뒤에 "헬로?"라는 답신에 나는 당황했다. 당황했음에도 짧은 영어로 차를 이동해 달라고 요청드렸고, 조금 뒤 외국인 차주분이 뛰어나왔다. 막 잠에서 깬듯한 모습에 나는 미안함을 느끼면서도, 차주가 외국인이라는 것에 적지 않아 놀랐다. 급경사에 위치한 데다 입구로 가려면 U자로 돌아 들어와야 하는 험난한 주차코스를 이겨내고 있는 차주가 외국인이었다니. 베테랑 운전자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의 난코스여서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차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항상 같은 위치에 주차되어 있었다. 이삿짐을 다 옮긴 후, 롤러코스터와 같은 해방촌을 나오면서 생각했다. 이 길은 한국사람들뿐만 아니라 외국사람들도 운전 베테랑으로 만드는구나. 운전 실력에 한국인과 외국인의 차이는 없겠지만, 험준한 남산길을 한국인보다 더 수월하게 운전할 수 있는 그분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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