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았던 집_19
여동생이 전세사기를 당했다.
그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진상 집주인에게 보낼 내용증명을 준비할 때였다.
해방촌 집의 계약 만료 기간이 4개월 정도 남았을 때였다. 서류상 집주인과 실주인이었던 집주인의 누나는 번갈아가며 내게 연락을 했다. 서류상 집주인이었 남자는 보증금은 어떻게든 마련해 주겠다고 했고, 실주인인 그의 누나는 새로운 세입자를 찾기 전까지는 보증금을 줄 수 없다며 연락을 해 왔다. 전세금을 두배로 올리며 내게 먼저 나가라고 했기에 집주인 가족도 그만큼 준비(세입자를 내 보낼 준비)를 했을 거라 생각한 나의 크나큰 오산이었다. 그들의 행패와 같은 혼란스러운 상황은 재계약과 동시에 집주인이 바뀌면서 약 2년간 지속되었지만, 차마 나는 고향의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알리지 못했다.
나의 슬픔과 힘듦이 그들에게도 전염될 수 있으니깐... 그동안 그런 일들은 우리는 이미 많이 겪어왔으니... 그리고 무엇보다도 해결해 줄 수 없는 상황임을 알기에 나는 그 사실을 더 숨겼었다. 그러나 다시 시작된 집주인 가족들의 괴롭힘에 나는 무너지고 말았다. 부모님이 도와줘서 집을 샀다던 지인들의 말이 이상하게도 마음속에 남았었는지,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그 화가 부모님을 향했던 것 같다. 당신들의 집도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음을 알면서도 이상하게 그때는 모든 감각이 마비된 듯 누구에게라도 던지고 싶었다. 내 집을 가질 수 없음에. 이렇게 쫓겨나야 함에. 그리고 이렇게 집 때문에 괴롭힘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그런 생각들이 무의식 속에 쌓여 나는 폭발하고 말았다.
그날, 그동안 내가 당한 일을 알게 된 부모님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나 또한 그랬다. 그리고 얼마 후 동생에게서 하나의 파일을 받았다. 동생이 집주인에게 날린 내용증명서였다. 내가 전세보증금을 받지 못해 이사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동생이 부모님 몰래 보내준 파일이었다. 그때 알았다. 동생이 티브이 뉴스에 나오는 그 전세사기의 피해자라는 것을... 동생은 집 때문에 나보다 더 힘든 일을 겪고 있었지만 역시나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말하지 못했다. 그 사실을 부모님이 알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동생 또한 이미 알고 있으니깐. 그래서 동생은 그렇게 홀로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동생은 십여 년 전, 취업준비를 위해 같이 서울에 올라왔다. 일 년여간의 취업준비를 끝으로 고향에 있는 외국계회사에 계약직으로 취업을 했고, 그렇게 다시 고향으로 내려갔다. 이년 후 그 회사에서 정규직이 된 동생은 지금까지 십여 년이 넘도록 같은 회사를 다니고 있다. 고향집에서 차로도 한 시간 반 넘게 걸리는 시간을 매일같이 버티고 버티다 3년 전 그 집을 구했다. 왕복 세 시간이 넘는 거리를 매일같이 출근한다는 것도 힘든 일이었지만, 당시 고향집은 동생에게 쉼이 될 수 없었다. 매일같이 일어나는 가족들의 비극을 더 이상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랬음에도 동생이 집을 떠나지 못했던 이유는 "엄마"였다. 그런 동생이 엄마마저 놔두고 집을 나가기로 결정했을 때는 나 또한 당황했다. 동생과 엄마가 같이 있었기에 나는 마음속으로 안심감을 느꼈던 것 같다. 나는 집을 나간다는 동생을 말리지 못했다. 가족이 아니었으면 더 빨리 독립해서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 이미 오래전에 집을 나간 내가 동생에게 그럴 자격이 없었다.
동생은 어떻게든 빨리 나가기 위해 집을 찾았다. 다행히 회사 근처 오피스텔을 구한 동생은 처음으로 자취생활을 즐겼다. 동생은 밝아졌고 자신을 위한 생활을 이어나갔다. 엄마는 생각보다 잘 지냈다. 동생에게 그 집은 그런 집이었다. 다음을 위한 스텝. 전세금 중 80프로를 대출했지만, 그 돈을 갚으면 다음에는 더 넓은 집으로 갈 수 있겠다는 그런 꿈을 꿨다. 그래서 저축 대신 그 돈을 열심히 갚았다. 그러나 그 꿈은 산산이 부서졌다. 은행 대출이 9천이나 있던 집이었지만 부동산에서는 괜찮다고 했다. 집주인이 백여채가 넘는 집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그 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며 오히려 안심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말은 그대로 화살로 날아왔다. 재계약 시점이 돌아오자 집주인은 보증보험에 가입해 주겠다며 동생을 안심시켰다. 그렇게 보증보험이 가입된 지 3개월이 지난 시점에 HUG에서 연락이 왔다. 집주인이 계약서에 계약내용과 금액을 위조해 보증보험에 가입했다며 취소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미 재계약이 끝난 후의 일이었다.
동생은 가족 중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그 와중에도 언니가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놓이게 되자 도움이라도 되라며 내용증명을 공유해 줬다. 나는 동생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나만 생각하고 징징거린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우리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나는 아직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는 단지 편하게 돌아갈 수 있는 집을 원했을 뿐인데... 왜 우리는 대가를 지불했음에도 왜 아직까지 그런 집을 얻지 못하는 것인지... 암울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더 우울했다. 우리 잘못이 아닌데도 왜 우리는 이렇게까지 고통받아야 하는 것인지. 이해하려 할수록 더 어려워졌다.
동생의 전세 소송이 진행된 지 2년이 넘어가고 있다. 소송이 마무리되기 전까지 그 집에서 나갈 수 없다고 했다. 경매장이 날아오고 그 경매를 정지시키고, 집주인과 보증보험기관에 소송을 진행하고...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싸움을 지속하고 있었다. 동생은 빨리 해결되면 그 집을 얼른 벗어나고 싶다고 했다. 그럼에도 전세사기 피해자단톡방을 보면 자기는 그나마 나은 거라며 동생은 스스로를 위로했다. 동생네 집은 그나마 오피스텔 중 하나를 집주인이 가지고 있었지만, 그 수많은 집 중에는 건물 통째로 가지고 있었던 물건도 있어서, 그 세입자들은 건물에 공용전기가 끊겨 엘베조차 이용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런 동생을 보며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내가 너무나도 쓸모없는 인간인 거 같았다.
우리는 언제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해방촌 집을 어렵게 나오고 나는 이사를 했다. 역시나 전셋집으로. 어렵게 좋은 집주인을 만났음에도, 집주인으로부터 전화라도 오면 나는 그 순간 트라우마처럼 그들이 생각난다. 해방촌의 집주인들이. 벗어나고 싶었는데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는 내가 아직 그곳에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동생이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