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 기록

읽기 전의 나, 읽은 후의 나

책은 도끼다 (1)

by 플랜브로 박상훈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이냐.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가 되어야 한다.


책과 친해진 건 2014년 1월 즈음입니다. 이등병 시절, 생활관 문을 열면 막사 왼쪽 복도 맨 끝에 위치한 작은 공간. 그곳에서 제 휴식시간의 대부분을 보냈습니다. 오래된 도서관에서 행보관님이 공짜로 얻어왔다는 삐걱대는 의자, 책상과 4계절 내내 느껴지는 한기. 썩 좋지 않은 환경이었지만, 외부와의 단절이 싫었던 저에게는 소중한 '바깥 이야기 충전소'였습니다.


군대에서의 독서는 생각보다 몰입도가 높습니다. '부대'라는 작은 세상에서 돌고 도는 일과를 보내기 때문에, 읽은 글들을 내 안으로 더 깊이 밀어 넣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책 속에 갇히는 부작용도 생깁니다. 매일 보는 익숙한 동기들과 일정표대로 착착 진행되는 하루를 살면서 읽은 그 글들은 바깥의 '실전' 과정을 거치지 못한 채 쌓입니다. 군대에서 '난 뭐든 이룰 수 있어!'라는 패기를 가지거나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의욕만 앞서서 나오는 친구들이 많은 건 대부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저도 그랬고요.


다행히 '읽는 습관' 그 자체가 남아 제대 후에도 꾸준히 책을 읽어왔습니다. 현실에서의 책 읽기는 군대에서의 책 읽기와는 다른 점이 많습니다.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사람들이 있고, 일정표에는 없는 사건들이 매일 튀어나옵니다. 바쁜 일상을 지내다 보면, 책에서의 감동이 일상과는 다른 차원의 세상에서만 존재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독서의 폭 역시 편협해집니다. 읽고 싶은 책이 생겨 서점에 가도, 지금 활용해야 하는 지식들이 담긴 실용서를 먼저 집어 들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 책들은 읽어도 읽어도 더 배고프기만 합니다. 그런 나날들을 보내다 최근에 접한 책 한 권이 지금 이 매거진을 쓰게 만들었습니다. 바로 박웅현 님의 '책은 도끼다'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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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다독은 일하는 재주를 키워주지만, 삶의 재미를 키워주지는 못합니다. 언제부터인가 글자 읽기 급급한 독서를 하고 있었습니다. 다독 콤플렉스에 빠져있었어요. 책을 읽고 마음이 정말 좋아지는 순간은, 나를 깨부수는 문장을 발견하고, 그걸 한 번 적어보며 곱씹어보고,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하며 감탄할 때인데 말이죠. 맨 위에 인용한 저 문장이, 제가 처음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그 감정을 되살려주었습니다. 문장 하나에 감동하기도 하고, 나보다 더 큰 생각을 가진 이들의 머릿속에 잠깐이나마 빠져보던 습관들도요.


우리의 정신은 의식 위에 떠다니는 특정한 대상을 포착하게끔 회로에 설정된 레이더와 같아서, 책을 읽고 나면 그전에는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이 레이더에 걸린다는 겁니다. 회로가 재설정되는 거죠. 뭔가를 보고 듣고 할 때 김훈이라면, 고은이라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전에는 잡히지 않았던 것들이 잡히게 되는 거죠. 그렇게 잡히는 게 많아지면 결국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이고요. 이것이 행복의 포인트가 되는 겁니다.


읽기 전의 나와 읽은 후의 나가 바뀌는 질 높은 독서를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물론 새해에 또 삘받아서 하는 괜한 짓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5년간 독서를 하면서 제가 항상 추구했던 '책과 현실의 균형'을 좀 더 업그레이드해 '책과 현실의 연결'을 시도해보려고 합니다. 하루에 한 편씩 무조건 쓰겠다는 빡빡한 다짐은 잠시 접어둡니다. 저를 둘러싼 단단한 세상을 차근차근 도끼질하면서, 잡히지 않던 것들을 잡아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게 올해의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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