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끈따끈한 두 작가와의 만남이 5일 간격으로 이뤄졌었다. 만나기 전의 설렘과 만난 후의 감정이 증발되지 않기 위해 꼭 후기를 남겨야지 생각했었다. 그런 생각만 하고 약 18일이 지났다. 따끈따끈한 후기는 증발되어 미지근해졌지만 그래도 두 작가와의 만남을 남겨보련다.
8월 20일 사이다 작가와의 만남
8월 20일은 방학 동안 진행해 온 그림책 온라인 연수를 유스호스텔에서 대면으로 마무리한 날이다. 뒤늦게 공지를 보고 친구와 신청해서 참여할 수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온 선생님들의 그림책 열기에 놀랐다. 나도 고속버스로 한 시간 반에 지하철까지 계산하면 두 시간 정도 거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 정도면 나도 그림책을 제법
사랑할 자격이 있다고 어깨에 뽕이 잔뜩 들어갔었다. 그러나 영주, 광주, 삼척에서 온
선생님들의 열정을 직접 내 눈으로 직면하니 내 열정은 어디 명함도 못 내밀 것 같았다.
일선 교사들의 강의도 듣고 그림책을 사는 시간이 주어졌다. 북극곰 출판사에서도 나오셔서 이루리 작가님과 김순영 편집자님도 뵐수 있었다. 이루리 작가님 그림책 강연도 재미있게 잘 들었는데 오늘은 북극곰 출판사 사장님으로 만났다. 다음에 서울을 가면 공릉동에 있는 루리 북스에
들리겠노라고 하며 이루리 작가님 책을 구매하고 사인을 받았다. 그리고 사이다 작가님의 강연이 시작되었다.
파란색 안경, 체크무늬 남방, 코로나 예방을 위해선지 얼굴을 뒤덮은 투명 선캡, 가발일 것 같은 삐죽한 머리, 사이다 작가는 등장부터 심상치 않았다. 사이다 작가는 그녀의 인스타그램을 소개해줬다. 작가의 인스타그램인지, 개그맨의 인스타그램인지 신분을 밝히지 않았으면 그녀의 인스타그램은 후자에 가까웠다. 표현하고 싶은 것을 주체하지 못해 조각을 전공한 미대생 그녀는 '가래떡', '고구마구마', 를 그린 그림책 작가로 짜자잔 나타났다.
나는 그녀의 필명 사이다인 이유는사이다처럼 톡 쏘는 아이디어를 지닌 사람이 되자고 지은 것이 아닐까 추측했다. 공생을 표현한 작가의 그림책 '너와 나'처럼 너와 나 사이, 그래서 사이다라고 지었다고 하셨다. 너와 나를 잇는 사이다, 그림책과 나를 잇는 사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찰떡같은 필명을 지은 사이다 작가님의 작명 센스에 감탄했다.
풍기는 아우라에서 결혼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 예측했지만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날아갔다. 사이다 작가는 착한 교회 오빠 이미지의 남자와 결혼해서 슬하에 두 자녀가 있는 학부모였다. '심장 도둑', '풀친구'에서 볼 수 있는 유쾌한 따뜻함의 원천은 그녀의 가족이지 않을까 한다.
사이다 작가의 책은 재미있다. 재미만 느끼고 배꼽 빠지게 웃는 것만 해도 충분하다. 그 나머지 것은 작가의 말대로 독자의 몫이라고 했다. 작가는 풀친구를 그리게 되면서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아졌다고 한다. 조사를 하다 보니 골프를 치는 필드가 초록 사막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초 록 사 막
그녀의 다음 책이 기대되지만 초 록 사 막이라고 던져준 화두가 내 머릿속에 맴돈다. 고구마구마의 고구마처럼 올라가는 지구 온도에 삶아지고 있는 인간이 상상된다. 이러다 다 죽겠구마
8월 25일 진형민 작가님과의 만남
이번 달 독서모임은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와의 만남이었다. 6월선정도서인 '곰의 부탁' 작가 진형민.. 작가와의 만남 전에 미리 작가님의 정보를 찾아보지 않았다. 이름이 주는 느낌 때문인가 친구와 나는 남자를 생각했는데 마르지만 단단하게 생긴 여자 작가님을 마주 보고
적잖이 놀랐다. 시작 전 독서모임 회장님 옆에 회장님과 이미지가 매우 비슷한 사람이 계속 회장님 옆에 게셨다. 저분은 누구실까? 독서모임 멤버였는데 오늘 처음 출석하신 걸까? 하고 내 머릿속에 끊임없는 물음표를 만들고 있었는데 그분이 바로 진 형 민 작가님이셨다. 성별이 예측과빗나갔고, 독자보다 먼저 와 계신 작가님을 만났다.
진형민 작가님 하면 초등학교에서는 '소리 질러 운동장'이었지만 오늘은 우리가 읽은 청소년 소설 '곰의 부탁'에 집중해 강의해주셨다.
우리도 책 표지에 대해서 한참 얘기를 나눴는데 작가님도 누가 양인지, 누가 곰인지 잘 모른다고 하셨다. 편집자님은 이 책의 제목을 헬멧으로 하자고 했고 작가님은 끝까지 '곰의 부탁'으로 하자고 했다는 책 탄생 에피소드도 알려주셨다. 알쏭달쏭한 표지부터 독자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곰의 부탁'을 선택한 작가님 완승이라고 마음속으로 물개 박수를 쳤다.'곰의 부탁'은 '12시 5분 전' '헬멧', '람부탄'등 경계에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묶은 단편소설집이다. 가볍지 않은 이야기지만 페이지를 넘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주인공들의 삶은 아려오지만 그래도 잔잔하게 생각해 볼 거리를 던져 준책이었다. 특히 헬멧 단편집에 얽힌
에피소드는 안타까웠다. 진형민 작가님은 어른보다는 청소년들을 많이 만나러 다니셨다. 경기도 변두리에 고등학교 아이들을 만나고 취재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경기도 변두리 학교의 대부분 남자아이들은 배달앱의 라이더 알바를 하고 있었다. 소설 '헬멧'은 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소설이지만 정작 이 아이들은 알바를 하느라 읽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 아이들대부분은 곰의 부탁을 읽을 정도의 문해력이 없다. 이 학교를 졸업한 대부분의
아이들은 라이더를 하거나 식당 서빙을 한다고 했다. 그들의 삶에서 책이 닿기는 현실에서는 녹록지 않은 것 같다. 그런 아이들이 있는 현장을 찾아주고 그들의 삶을 들여다봐주는 작가님은 글처럼 따뜻한 분이셨다.
곰의 부탁 중 람부탄을 읽으면 은유 작가의 '있지만 없는 아이들'이 떠올랐다. 딸 셋을 데리고 미얀마 방글라데시 동티모르까지 배낭여행을 떠났던 진형민 작가님.. 작가님의 요즘 관심사는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기후위기라고 하셨다. 다음 작품도 기대된다고 하니 작가님께서 내 안의
낙관이 나오지 않아 글을 쓰기가 어렵다고 하셨다. 그 원인은 때마다 미얀마 학교에 가서 아이들을 만났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무기력증을 느낀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또 아차 했다. 해시태그로 마이 미얀마 와칭 미얀마를 달던 그때의 마음은 또 어디로 증발해 버린 것일까? 또
부끄러움을 한 사발 추가했다. 작가님이 말한 글쓰기란 가장 사적인 것을 사회적 맥락을 담아가는 것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작가님은 책의 절대적인 힘을 믿지 않는다고 너무 쿨하게 말하셨다. 책을 읽지 않는 아이들을 우리 기성세대는 걱정하지만 이아이들에게는 우리 기성세대가 가지지 못한, 태어날 때부터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한 느슨한 네트워크(SNS)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어쩌면 그것이 바로 그들이 우리보다 유연한 태도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다고 하셨다.
다만 어떤 매체를 통해서 편향된 세상으로 가는 것 정도는 경계해야 되지 않을까 하고 작가님은 강연을 마무리하셨다.
한 분은 유쾌하게 내 마음을 자극해주셨다면, 한 분은 묵직한 울림으로 내 마음을 자극해 주셨다. 각자가 표현하는 방법은 다르지만 작가라는 직업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세심한 관심과 연민을 가지는 일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작가가 될 수 없을 것 같다.
9월 24일 기후정의 행진에 참여 신청을 해 놓고 나는 오늘 플라스틱 병을 썼다. 책만이 진리라고 생각하지 않음에도 웹툰만 보는 딸에게 잔소리와 눈 레이저 공격을 했다. 오늘에서야 현재의 미얀마 상황을 검색해보았다. 요란한 빈 그릇 같은 내 생각을 오늘도 나는 서랍 속에 넣지 않고 발행한다.
브런치 북에 도전하라는 알림과 텅 빈 작가의 서랍을 보니 브런치 n년차인데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일을 하고 소리가 한결같은(대금 n년차 발전 없는 소리) 대금으로 연주회 준비를 하고 있으며 독서모임에 안 빠지고 잘 참여하고 있다. 내 글처럼 일상은 요란하지만 한결같이 흘러가고 있다. 9월 기후정의 행진에 작가님들도 많이 나오실 것 같다. 9월! 서울로 진격하는 이번 달 책모임 매우 기대된다. 내일은 플라스틱 병을 안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