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죽음, 남겨진다는 것

너를 만났다를 본 후

by 아무거나

너를 만났다를 본 지가 하루가 지났다. 그 프로그램을 본 사람들은 주체할 수 없는 슬픈 감정을 말이나 글로, 누군가는 그림으로 담아내고 싶었을 것 같다. 예상했던 슬픔보다 더 깊었다. 나는 그 감정들이 증발해버릴 까 봐 글로 꾹꾹 담아내고 싶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 글을 쓰려고 하니 벌써 몇 %가 증발해 버린 것 같아 아쉽다.
너를 만났다 두 번째 이야기는 병으로 아내를 떠난 보낸, 다섯 아이를 둔 남편의 사랑이야기다. 남편과 아내는 아이들이 질투할 만큼 사이가 좋았다. 남편은 아내의 마지막까지 살뜰히 챙기던 사람이었다. 떠나간 아내를 만나기 위해 남편은 vr체험 안경을 쓴다. 그의 눈 앞에는 아내와 살던 집이 펼쳐진다. 지혜야,라고 부르며 그녀를 불러보지만 좀처럼 나타나지 않다가 그녀가 나타난다. 아이들도 남편도 놀라고 반가움과 안타까움의 눈물이 모두들 서렸다. 가상현실로 나타낸 아내는 마지막까지 나를 챙겨 줌에 감사하고, 살이 빠진 남편을 걱정하며, 남편과 춤을 춘다. 못다 한 말을 다 털어내기에는 너무 짧은 만남, 그녀는 반딧불이 되어 사라져 버렸다. 조금만 더 있다 가라는 남편의 말에 아이들도 그것을 보는 나도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너무 깊이 사랑했기에 남은 자들자들은 슬픔의 크기가 씻을 수 없는 생채기 같았다. 적당히 사랑했다면 서로 덜 아팠을까? 그런 아픔이 무서워서 내 사람을 온전한 마음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을 알지만 너무 슬프게 우는 그녀의 남편을 보면서 너무 안타까웠다.
그녀와 짧은 만남으로 자신의 마음이 어루만져졌다고 남편이 말했다. 부디 어루만져진 마음이 아이들도 그도 오래가길 나는 바란다.

그녀도 다섯 명의 아이를, 지혜야라고 다정하게 불러주는 남편을 남겨두고 가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슬펐을 것이다. 떠난 사람의 마음은 우리가 가늠할 수 없다. 하지만 남겨진 자들의 슬픔은 영상을 보는 내내 너무 크게 다가왔다. 그리고 너를 만났다를 보면서 세월호가 떠올랐다. 4월 16일 아이들을 떠나보냈던 부모들도 '너를 만났다'를 보며 떠난 자신의 아이를 VR로 너무 불러내고 싶었을 것 같다. 잠깐이나마 대화를 하고 실제로 만지는 것은 아니지만 감촉을 느끼고 싶었을 것 같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마음이 어루만져지게 아프지만 참된 진실이 빨리 밝혀졌으면 좋겠다.

내가 사랑하는 이를 남기고 떠나야 하는 것도, 나를 사랑하던 이가 떠나 내가 남겨진 것도 모두 슬픈 일이다. 그래도 서로를 기억하는 삶이다. 누군가는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무연고 사망자의 삶도 있다. 난 그것이 더 슬플 것 같다.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삶, 이 땅에 더 이상 고독사로 생을 마감하는 삶이 없었으면 좋겠다. 너를 만났다를 보며 존 레넌의 love 노래가 계속 떠올랐다. love is touch. Touch is love. love is real. Real is love.
떠나가면 우린 서로 볼을 부빌 수도 정수리의 시큼한 향을 킁킁 맡을 수 없다. 실재 사랑은 만지고 느끼고 얘기해주는 것이라는 것을 "너를 만났다"가 내게 다시 한 번 알려 준 것 같다.
달려가서 뾰루뚱해 있는 내 딸에게 실재적 사랑을 표현해야겠다. 다섯 아이를 둔 집을 보니 만약 내가 떠나면 오롯이 혼자 슬픔을 감당해야 하는 나의 외동딸이 안쓰럽다. 안쓰러운 마음이 없어질 수 있도록 그녀를 꼭 안아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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