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던 뽀야가 병이 아닌 사고로 간 다음 우리 가족은 한 동안 펫로스를 겪었다. 그리고 다시는 동물을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어느 날 막내 동생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가 이상한 강아지를 집에 데려 왔다는 것이었다. 우리 집 근처를 서성거리고 눈이 뽀야랑 닮아서 데리고 왔다는데 삐쩍 마르고 뽀야를 하나도 안 닮고 못생긴 애를 데리고 왔다고 전했다. 개를 우리 식구 중에 제일 좋아하는 둘째도 흥분을 했다. 개를 안 키우기로 했는데 데리고 왔다고 흥분하고 키우면 요키를 키우고 싶은데 엄마가 이상한 강아지를 데리고 왔다고 말이다. 사진을 봐도 좀 이상하긴 했다. 삐쩍 마르고 털도 엉켜있고 어딜 봐서 귀티가 줄줄 나는 뽀야를 닮았다는 건지 말이다. 그래서 친정에 있는 식구들은 다시 유기견 보호센터에 전화를 해서 내보기로 했다. 그런데 자기가 다른 곳으로 갈지 알았는지 보호센터 직원을 콱 물어버리고 그 강아지는 도망쳐버렸다. 한참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우리 집 앞을 기억하고 아빠를 기다렸다는 것이다. 아빠는 강아지를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렇게 밖을 떠돌던 나나는 우리 집 강아지가 되었다. 엄마는 동물 병원에 가서 강아지의 건강 상태를 살피고 미용을 해주려고 애견샵을 갔다. 애견샵 주인이 이 개를 본 적이 있다고 아이를 많이 키우는 우리 집에 방문한 적이 있는 개 같다고 했다. 그래서 번호를 찾아본 다음에 원 주인에게 전화를 했다고 한다. 그 주인에게 돌아온 말은 " 알아서 하세요. 자기가 원해서 나간 건데 데려가서 키우던지 알아서 하세요." 생명을 두고 알아서 하라니 엄마와 애견샵 주인은 기가 막혀 원주인에게 욕을 한 바가지 하고 애견샵 주인은 엄마에게 좋은 일을 한다고 사료와 개 용품을 주셨다고 한다. 뽀야보다 우리 친정집에 온 인연이 기구한 나나! 처음부터 귀티 나는 뽀야와 달리 나나는 우리 친정 식구들이 부은 사랑만큼 외모가 달라졌다.
가난했던 우리 집의 형편도 점점 나아져서 나나는 5년 된 아파트 자가 집에서 견생 라이프를 펼치게 되었다. 뽀야를 잃고 두 번째 키우는 강아지라서 동물병원에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해주고 강아지에게 필요한 영양제도 챙겨서 먹인다. 사람에게 인사돌을 먹이면 강아지들에게는 견사돌이 있다고 하니 견사돌을 먹는 강아지 나나
나나를 보면 인생도 역전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그 희망이 우리 식구의 사랑으로 움튼 것이지만 그래도 그것도 나나의 타고난 복인 것 같았다. 우리 뽀야는 귀티 나게 생기고 우리의 사랑은 듬뿍 받고 갔지만 가난하기도 했고 서툴기도 했던 터라 뽀야가 어릴 때 간식이라고 먹인 것은 겨우 시저 참지와 껌이었다. 동물병원은 뽀야가 토를 하거나 심하게 달라지지 않는 이상 뽀야가 젊을 때는 가지 않았다. 하지만 나나는 뽀야와 달리 껌도 성분을 보고 좋은 껌을 먹고 있고 인스타를 하는 내 동생 덕분에 나름 개 스타가 되어 가끔 간식, 껌 조공도 받고 있다. 뽀야가 엄마 바라기였다면 나나는 아빠 바라기다. 뽀야와 눈이 닮았다고 데리고 오긴 했지만 엄마는 직장으로 나갔고(지금은 퇴사하셨지만) 유기견 보호센터에 전화를 걸고 우리 집에서 배회하던 나나를 집으로 데려온 것은 아빠이다. 간식과 병원비를 들이는 것은 우리들인데 개들에게는 처음으로 나를 누가 데리고 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우리 집 두 개들은 나를 처음으로 데리고 온 누군가를 끔찍이 좋아한다. 우리 아빠는 딸 셋에 애교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우리보다 자기에게 먼저 애교를 떠는 나나를 엄청 좋아한다. 나나는 7살이다. 사람으로 치면 장년이다. 장년인 나나는 참 행복하다. 노년이 될 나나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때쯤에도 지금만큼의 마음과 돈에 대해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 생명에 대해 한계치를 설정하는 내 모습, 우리 식구들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딸이 우리 집도 강아지를 키우자고 자꾸 말했다. 나는 이럴 때 월세를 사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 우리 집 월세라서 안돼! 강아지가 벽지 뜯고 오줌 누면 좋아하겠냐?" " 아니 엄마, 배변 훈련 잘 시키면 되잖아. 유기견 데리고 오면 좋은 일이잖아 응 엄마 안 그래?" 딸아이의 말이 다 맞지만 선뜻 들어줄 수 없다. 월세집이라는 것은 핑계이다. 나나도 늙어갈 것이다. 그러면 치료비가 많이 들 것 같다. 개 두 마리를 부양할 여유와 돈이 없을 것 같다. 우리의 부모님도 그쯤이면 더 나이가 들어갈 것이다. 돈이 없고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생명을 허트로 키우고 싶지 않다. 웬만하면 외동딸의 부탁은 다 들어주나 완강하게 반대를 했다. 세상에는 안타까운 강아지들이 많지만 아직까지는 유기견 보호센터에 정기적으로 내는 후원금으로 그 마음을 대체하고 싶었다. 너무 완강했기 때문이었을까? 딸이 다른 제안을 했다.
" 엄마 그러면 강아지 인형 사주면 안 돼?"
"그거 아기들 갖고 노는 인형 아냐? 너 10살이잖아!"
" 엄마 제발 제에 바알" 그놈의 제발은
그래서 나는 딸에게 강아지 인형을 사줬다.
우리 집에는 흰 몰티즈를 닮은 몽실이가 왔다.
강아지 인형으로 통하는 10세의 순진함이 나는 너무 고맙다. 생명에 들이는 무게에 비겁한 태도로 임하는 내 모습이 많이 부끄럽지만 나는 친정집에 있는 우리 집 나나면 아직 족하다. 우리 집 딸은 몽실이를 정말 개처럼 같이 안고 자고 말을 시켜준다. 비겁함에 대한 대가는 가끔 혹독하다.
"몽실아, 왜 대답이 없어 몽실아?"
" 응 언니 내가 좀 바빠서"
" 너 개인데 뭐가 그리 바빠?"
" 응 나는 언니처럼 공부 안 하는 게 아니라서. 언니 엄마가 그러던데 잉글리시 콩글리쉬 안 했다고 하던데 그래?"
"뭐어 몽실이 너. 아니 잠깐만 엄마 이러려고 몽실이 나한테 사준 거 아니지?"
"그건 아닌데 너 진짜 잉글리시 콩글리쉬 안 한 건 사실이잖아? "
"멍멍 언니 진짜 영어 공부 안 했잖아 멍멍!"
생명에 대해 비겁한 태도로 임하면 가끔은 개가 되어야 한다. 비겁할수록 자주 개가 되어야 한다. 오늘도 나는 몽실이가 되었다.
"멍멍 몽실이 엄마랑 저녁 만들게! 멍멍"
생명을 가볍게 들이지 않았으면 한다. 늙어가는 것도 슬픈데 가난하면 더 슬프다. 개에게나 사람에게나 늙음과 가난에 대해서는 생명으로서 존엄을 지킬 수 있는 범위까지는 서로가, 나라가 보호해줬으면 좋겠다.
나나( 뽀야를 닮은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