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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거나 Apr 14. 2021

너는 식물, 나는 인간 단어만 다를 뿐 우리는 똑같아

적당한 거리를 읽고

  

채식주의자도 너는 먹는구나.

나는 잡식주의자라서 너도 먹어.

그동안 나는 너를 잘 돌봐주지 못했어.

너를 잘 돌본 것은 손가락에 꼽을 만큼이야. 너를 잘 돌봐서 교실 천장까지 감아지도록 나팔꽃을 피워본 적이 있었어.

봉숭아 꽃을 피워 아이들 손톱에 물을 들여주고 싶어서 여린 봉숭아 새싹이 꺾이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물을 줘 본 적이 있었어.

그 외에는 솔직히 고백하자면 분갈이를 해주지 않아 토마토의 뿌리가 공룡발톱처럼 화분 밖으로 삐져나와서 생명을 다 했어.

물을 자주 않아도 되어서 키우기 쉽다는 시어머니가 주셨던 다육 식물도 10년 전에 내 손을 거쳐 가서 생명을 다했어.

나란 사람을 만나서 빛나는 생명을 발하지 못하게 했구나.


나 같은 사람에게 너는 말을 하고 있구나.


관심이 지나쳐 물이 넘치면 뿌리가 물러지고
마음이 멀어지면 곧 말라 버리지

창문을 열어 바람을 들여주고
겨울이 오면 따뜻한 곳으로 옮겨 주는 일,
필요할 때를 알아 거름을 주는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도와주는 것일 뿐

조금만 도와주고 적당히 관심을 가졌으면 너를 그리 보내지 않았을 텐데

예전 같으면 지나쳐 버릴 가게들에 눈에 들어와.

이제 나도 너를 돌볼 수 있는 거리를 조금은 알지 않을까 하고

수줍게  용기 한 줌 꺼내서

 퇴근길에 조그만 화분을 안고

너를 정성스럽게 만져주고 싶어.

물론 네가 원하는 만큼만 해줄게.

네가 인간인 나에게 소중한 지혜 한 줌 속삭여줬잖아.

적당한 햇빛, 적당한 흙, 적당한 물

적당한 거리가 필요해라고.

너는 식물이고 나는 인간인데

우리네 사이는 너무 똑같은 것 같아.

그동안 인간이라고 우쭐대서 미안해.

적당한 거리에서

너를 지켜보고 보살펴줄게.

이 책을 보는 내내 들꽃이름을 많이 아는 L교사 언니가,

"나는 나무에게서 인생을 배웠다"를 추천해주는 K교사 언니가,

베란다를 멋진 정원으로 꾸미는 독서모임 회장님이

"바람에 흔들리게 창문을 열어주세요"를 쓴 아무도 작가님이

 계속 떠오른다.

 나도 그들에게 적당한 거리를 아는 생명체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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