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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래너앤라이터 Aug 27. 2024

# 2. 1초 만에 결정한 인생

하나, 지잡대 청년이 서울로 향하다

1초 만에 결정한 인

# 2. 1초 만에 결정한 인생


졸업을 앞두고 서울에서 소식이 왔다. 선배가 근무하는 회사에서 후배를 특채로 뽑는 기회였다. IMF로 회사들이 문을 닫거나 구조조정으로 사람들이 많이 떠났다. 사람들을 한창 채용하는 시기였다. 그러나 서울 소재 회사에 취업할 수 있는 기회를 선뜻 잡아채는 사람이 없었다. IMF를 겪은 사회적 분위기는 안정적 직장을 찾는 데 있었다. 공무원이 신의 직업이 되면서 너도 나도 공무원 준비를 했다. 


부모님께서는 항상 "장사는 하지 마라. 번듯한 회사를 다녀라"라고 하셨다. 장사에 진절머리가 난 부모님은 사랑하는 아들에게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다. 내겐 장사(사업)는 위험하고 힘들고 돈을 잃을 수 있는 것이었다. 회사원을 꿈꿀 수밖에 없었다. 서울에서 온 소식은 나에게 절호의 기회였다. 학교 성적도 좋지 않고 관련 자격증도 하나 없이 정식 절차를 밟아 취업하는 건 어려워 보였다. 공부에서 자유로워지는 상황에서 공무원 준비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행히 내 처지를 정확히 알았다. 한 걸음에 교수님께 달려가 내가 가겠다고 했다. 교수님은 썩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다. 눈에 띄지도 공부를 잘하지도 않던 아웃사이더 말고 똘똘한 친구가 가길 바라는 눈치다. 나의 완고한 말투와 표정에서 결연한 의지가 느껴진 건지 잠시 뒤적이더니 명함을 하나 건넨다. "여기로 전화해 보게. 당신보다 15년 선배니까 연락해서 자네가 가게 되었다고 알리게." 기쁜 마음에 명함을 건네받으며 큰 절을 하고 싶었다. 90도로 꾸벅꾸벅 인사하며 뒷걸음으로 방을 나왔다. 세상을 다 가진 기분에 복도에서 미친놈처럼 날 뛰었다. 그때는 몰랐다. 명함을 받는 순간 세상에 끌려다니며 살게 될 거라는 것을. 내 인생에 가장 최악의 선택이 될지 꿈에도 몰랐다. 공부는 못했지만 꿈이 있던 청년이었는데 그의 꿈은 그저 꿈으로 남게 됐다. 


부모님께 이 기쁜 소식을 빨리 전하고 싶었다. 친구들과 저녁 술약속도 취소하고 집으로 곧장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며 큰 소리로 외쳤다. '아버지, 어머니! 저 서울에 취업했습니다.'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이시면서 우리들만의 잔치상을 차리셨다. 동네잔치까지 하기엔 면이 서진 않지만 농땡이 아들이 서울로 취업해서 간다니 부모님께는 최고의 날이었다. 서울로 가기 전 마지막 만찬을 나눴다. 술이 술술 들어가고 흥에 겨워 어머니는 노래 가락까지 뽑으셨다. 


우리 집에도 이제 볕이 드는 것 같았다. 그 당시 부모님은 하시던 가게를 접고 시에서 하는 공공근로를 하셨다. 최저 임금으로 가계를 꾸리고 계셨기에 아들의 취업은 더없는 축복이었다. 졸업하고도 집에서 밥만 축낼까 봐 내심 걱정하신 모양이다. 만찬이 있던 날로 일주일 후에 서울로 가게 되었다. 일정이 촉박했지만 취업이 무산될까 봐 협상의 여지가 없었다. 가장 시급했던 것이 숙식이었다. 갑자기 집을 알아볼 수도 없을뿐더러 집을 구할 돈도 없었다. 다행히 어머니의 핏줄이 서울에 사셨다. 


그 당시 어머니의 행동력은 엄청났다. 내가 서울로 간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이모에게 전화했다. 이모부와 아이 셋이 함께 사는 이모집에서 흔쾌히(?) 받아주었다. 집을 구할 때까지만 잠깐 있겠다는 전제가 있었기에 거절하지 않을 수 있었으리라. 숙식이 해결되니 나머지 준비는 할 게 없었다. 촌놈 소리를 들을까 걱정되셨는지 아웃렛에서 정장 두 벌을 사주셨다. 한창 유행하던 멸치 때깔과 더블 버튼 재킷. 머리부터 발끝까지 서울에서 기죽지 않게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다음날이면 서울을 간다. 군생활과 달리 이번에는 아예 떨어져 지내게 된다. 저녁 식사 때부터 울먹이시던 어머니는 내가 방으로 자러 들어간 후부터 소리를 내시며 우셨다. 어머니를 위로하러 가야 하지만 내 눈에 떨어지는 눈물을 감당하기 힘들어 이불을 덮고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눈물의 밤을 지새웠다. 퉁퉁 부은 눈으로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는 부모님께 절을 하고 급히 집을 나섰다. 더 이상 울보가 되기 싫었다. 멋진 모습으로 가려했건만 팅팅 부은 눈으로 서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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