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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래너앤라이터 Sep 03. 2024

하나, 지잡대 청년이 서울로 향하다

# 3. 첫 번째 탈출 기회


# 3. 첫 번째 탈출 기회



사회인으로 첫 발을 떼는 날이다. 잠자리도 바뀌고 긴장한 탓인지 잠을 설쳤다. 새벽 5시부터 눈을 뜨고 있었다. 옆에 사촌 동생은 깊은 잠을 자고 있었고 거실도 조용했다. 씻고 출근 준비를 하려 했지만 아직 자고 있는 이모네 식구들이 깰까 봐 움직일 수 없었다. 눈칫밥을 몸소 배웠다. 6시쯤 문밖에 소리가 들렸다.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나오니 이모였다. 쌀을 씻으며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씻고 나오니 아침밥이 차려져 있었다. 첫 출근의 긴장감과 함께 강한 거부감이 들었다. 그러나 성의에 보답하기 위해 맛있게 먹어야 했다. 밥 먹는 동안 긴장감과 거부감 외 또 다른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 시선이 큰방 문을 향하고 있다는 건 이모부가 신경 쓰인 거다. 평소 눈치 없다지만 생존 본능 때문인지 눈치 봐야 할 대상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위축된 상태로 밥을 쑤셔 넣었다. 먹으면서 체기를 처음 느꼈다. 남에게 신세 지는 것을 지극히 싫어했다. 하루라도 빨리 집을 구해야 했다. 밥을 먹는 모습을 들키기 싫어 순식간에 해치웠다. 씹지도 않은 밥을 잔뜩 문채 집을 나섰다. 눈칫밥에 주눅 든 상태로 회사 1층 출입문 앞에 섰다. 대망에 첫걸음이다. 야망을 품은 한 젊은이가 현관문에 비쳤다. 평생 밟을 리 없는 동네에 와 있다.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 어색했다. 무엇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했는가? 꿈을 위해? 아니다. 돈이었다. 현관문에 비친 내 표정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발걸음을 돌렸어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아들만 바라보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돌아올 수 없는 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영혼 없는 사람들이 무언가에 홀린 듯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방인의 등장에 미개인을 쳐다보듯 했다. 영혼이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지만 그들에겐 혐오자였다. 그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하기 위해 구원자가 필요했다. 서둘러 주변을 스캔했다. 저 멀리 박 oo 이사 푯말이 쑥 들어왔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97학번 정 oo입니다.' 구원자는 온화하게 나를 맞이했다. 그의 첫인상은 현관문 앞에서 잠깐의 망설임을 잠재웠다. 선배 덕분에 나는 그 세계에 안정적인 첫 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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