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엣, 득녀로 100점이 되다.
#5. 뱃속 아이를 지우라는 장모님
"어떻게 된 일일까?"
둘째가 태어나고 아내는 피임을 하지 않은 상태로는 관계를 완강히 거부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둘째가 태어나면서 육아 부담이 늘어난 것도 있지만 가계 형편을 위해 맞벌이를 하게 되면서 셋째는 상상도 하면 안 되는 일이 되었다. 신혼여행 때 우린 호기롭게 다섯을 낳자는 얘기를 했지만 철없는 신혼부부의 한 여름밤의 꿈으로 끝나고 말았다. 우리 부부에게 아이는 현실적으로 두 명이 마지노선이었다.
둘째가 태어나고 맞벌이를 하면서부터 부부가 함께 있는 시간도 현저하게 줄기도 했지만 관계를 할 때는 철저하게 피임을 했다. 그런데 한 달에 한 번씩 마법에 걸리던 아내가 마법에 걸리지 않았다. 여느 날처럼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가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아이들만 덩그러니 거실에 있었고 아내는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 쪽에서 희미하게 아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화장실 문이 잠겨 있어서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밖에서 불러봐도 대답하지 않고 울기만 했다. 점점 두려워졌다. 온갖 상상을 하면서 아내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10분쯤 지났을까 아내는 문을 열고 나왔다. 문 앞에 내가 있었지만 보지도 않고 싸늘하게 나를 지나쳐 갔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아내는 그대로 안방 침대에 누워 나오지 않았다. 아이들을 다 챙긴 후 아내 옆으로 갔다. "배고프지 않아? 저녁 식사 준비했는데 같이 먹자. 애들은 밥 먹이고 씻기고 지금 놀고 있어" 아내는 내 말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분명 어제까지 웃으면서 대화도 했고 기분 나쁠 만한 상황은 전혀 없었는데 도대체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여보, 혹시 회사에서 무슨 일 있었던 거야?(......) 지금 얘기하기 힘들면 안 해도 돼. 밥은 먹고 자야지" 그 순간 아내는 덮고 있던 이불을 박차며 벌떡 일어나더니 대뜸 "야 이 나쁜 놈아. 이제 어떡할 거야? 어떡할 거냐고?"라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더니 손에 쥐고 있던 임신테스트기를 나에게 던졌다. 선명한 빨간색 두 줄이 표시된 임신테스트기를 확인하고 나서야 아내가 왜 그러는지 알 수 있었다. 어디서부터 생각해야 할지 머리가 어지러웠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하게 대응해야 되는데 인간의 유전자는 위험한 상황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피하려고 한다. 새 생명을 가졌다는 것은 축복받을 일인데 우리는 왜 두려워해야 하는 걸까.
아내는 한참을 생리를 하지 않아서 걱정을 하고 있었고 혹시나 해서 검사를 했는데 선명한 두 줄을 보고 많이 놀랐던 것이다. 분명 조심한다고 했지만 부부간에 빈틈은 언제나 존재한다. 둘 다 기억을 잃을 만큼 취한 날이 있었는데 매우 의심스러웠다. 아무려면 어떤가. 중요한 건 아내의 뱃속에 새로운 생명이 잉태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빠로서, 엄마로서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두려워만 할 상황이 아니었다.
혼자만 알고 있던 갑작스럽고 놀랄 만한 일을 남편에게 터놓은 아내는 기분이 조금 풀린 듯 보였다. 그런데 나에게 묻는 질문만은 날카로웠다. "오빠, 어떡할 거야? 낳을 거야?" 앞으로의 대책도 없는 상황에서 약간은 무책임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아내의 질문에 나는 빠르게 답했다. "당연하지. 낳고 키워야지. 어떻게 됐든 우리에게 온 인연이고 축복이 자나" 나의 대답에 아내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남편의 대책 없는 당당함에 어쩌면 말문이 막혔는지도 모르겠다.
아내의 임신에 대해서는 그 이후 한참 동안 대화가 없었다. 그렇다는 건 아내도 암묵적으로 내 생각에 동의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시간이 흐른 뒤에 들었지만 그 당시 아내도 앞날이 걱정 됐지만 낳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했다. 다만 2년 터울로 임신을 시킨 남편이 그저 미웠을 뿐이라고 했다. 6개월이라는 짧은 연애를 만회하기 위해 신혼 때 연애 하듯이 알콩달콩 살려고 했건만 결혼은 알다시피 현실적 생존이었다. 신혼은 스치듯 지나가고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가 계속 이어졌다.
아내는 거듭되는 임신 경험으로 아이가 늘어날 때마다 병원 검진 횟수를 줄여 나갔다. 첫째 때는 병원에서 하라는 검사와 진료를 빠짐없이 받았다. 남편과 하는 요가 프로그램이나 호흡법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참여했었는데 셋째를 임신했을 때는 걱정이 될 정도로 병원을 가지 않았다. 임신 확인과 태아 상태를 보러 처음 병원을 방문할 때도 임신 주수가 제법 찼을 때 갔다. 그때까지 양가 부모님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첫 임신 같은 경우에는 중간에 안 좋은 일이 있을 수도 있어서 태아가 제대로 자리를 잡을 때까지 부모님께 알리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셋째 아이인데도 불구하고 부모님께 미리 말씀드리지 않았다. 아내와 나는 부모님들의 반응을 조금은 예상하고 있었기에 잔소리처럼 들릴법한 이야기들을 미리 예측하며 듣기를 미뤘던 것이다. 병원에 첫 검진하러 온 날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부모님께 전화를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태아가 엄마에게 안전하게 안착하여 잘 자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야 혹시나 모를 부모님들의 권유에 당당히 맞서 대응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역시나 부모님들의 반응은 우리의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지금도 넉넉치 못하고 힘겹게 사는데 아이가 하나 더 태어나면 생활은 더 궁핍해질 거라고 걱정하셨다. 이미 아들과 딸을 낳은 상태이고 자식들이 고생할까 봐 걱정이 돼서 그런 반응을 보이실지 몰라도 많이 서운했다. 특히 장모님의 말씀은 아내를 슬픔에 잠기게 했다. 장모님은 사랑하는 딸이 고생할까 봐 안타까운 마음에 말씀하셨지만 그 당시 아내에게는 상처가 되었다.
"지금도 이렇게 힘들게 살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려고? 그냥 수술하자"
장모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도 흔들리지 않은 건 아니다. 앞날이 보이지 않으니 더 힘들어진다는 말에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월급쟁이인 내가 돈을 더 벌 방법도 없었다. 그냥 장모님 말씀을 들을까? 키울 능력도 없으면서 괜한 욕심을 부리는 건 아닐까?
검진받을 때 건강하게 뛰던 심장 소리를 듣고서는 차마 그런 결정을 할 수 없었다. 장모님 말씀을 듣고 아내는 자리에 주저앉아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내도 현실을 생각하면 흔들렸을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생명의 심장 소리가 귓가에 맴돌아 잠시 잘못된 생각을 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 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