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셋째를 낳고 애국자가 되다.
#6. 행복한 가족의 비결은 가까이 있었다.
'얼죽신(얼어 죽어도 신축)'은 우리에게도 통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25평 아파트는 점점 작게 느껴졌다. 곧 사춘기에 접어들 세 아이의 방을 제대로 만들어 주기 위해 아내와 나는 밤마다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찾고 있었다.
살고 있던 아파트에서 평수를 넓혀 가는 것도 경제적인 부담이 별로 없는 좋은 방법이었지만 10년을 살면서도 거의 오르지 않는 아파트에 정이 떨어졌었다. 아내와 상의한 끝에 신축 아파트를 분양받기로 했다. 아내는 부모님이 어릴 때 만들어 준 청약 통장이 있었다. 청약 가입 기간만 가지고는 가장 최고의 점수를 얻었다. 다만 집을 일찍 소유한 관계로 가점이 높지 않았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 인근으로 택지개발이 진행되고 있었고 택지지구 안에 신축 아파트들이 분양을 한창 하고 있었다. 처음 몇 번은 지켜만 봤다. 분양을 받아 본 적이 없으니 두려워서 성급한 결정을 할 수 없었다. 생각보다 경쟁률이 높았고 당첨대 가점도 우리의 점수를 상회했다. 첫 아파트 매입에 실패한 우리는 두 번째 같은 실수를 하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부동산 경기에 맞춰 가격이 올라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다행히 부동산 시장도 신축 위주로 인기를 끌고 있었고 우리가 분양받으려는 아파트도 경쟁률이 높았다.
오히려 경쟁률이 높아서 당첨이 안 될 것을 걱정하게 되었다.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되는 마냥 우리 부부는 연차까지 쓰며 생애 첫 청약에 도전했다. 살면서 추첨과는 인연이 별로 없었다. 돌잔치 같은 행사에서 경품 추첨을 해도 한 번도 당첨된 적이 없었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아내와 나는 결혼 전에 보았던 타로점에 의지하기로 했다. 아내에게 재물복이 있다는 점괘가 이번 청약을 통해 판가름 났다.
타로점은 정확했다. 로열동에 로열층에 당첨되었다. 다음은 살고 있는 아파트를 가장 비싸게 파는 숙제가 남았다. 부동산 경기가 한창 무르익기 바로 직전이라 서울 위주로 가격이 오르고 있었다. 우리 아파트는 가격의 큰 변화가 없었다. 현 시세에서 가장 높은 가격으로 파는 게 최선이었다. 부동산 몇 군데에 온갖 아양을 떨며 아파트를 내놓았다.
아내는 나와 생각이 달랐다. 10년 전보다 5천만 원 밖에 오르지 않는 아파트를 전세를 끼고 보유하자고 했다. 가계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아내가 이런 말을 할 때는 이유가 있었을 텐데 깊게 생각하지 않고 강하게 반대를 했다. 그동안 알뜰살뜰 모은 돈이 제법 되었다. 살고 있는 아파트를 팔고 기존 대출을 갚고도 대출 없이 신축 아파트 분양금을 낼 수 있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대출금 정도면 가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것이다.
아내는 기존 대출금을 갚지 않고 유지하면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를 전세 끼고 보유할 수 있다는 것을 계산한 것이다. 동네 친한 엄마들의 개발 호재 이야기도 들은 터라 살고 있는 아파트를 팔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아내의 마음은 이해가 갔지만 처음부터 정을 붙이기 힘들었던 아파트라 인연을 끊고 싶었다. 남편이 완강히 거부하니 아내도 아쉽지만 꼬리를 내렸다. 이 일은 1년도 채 안되어 아내의 원망으로 돌아왔다.
갑자기 전국의 아파트 가격이 미친 듯이 오르더니 10년 동안 5천만 원 오른 아파트가 한 두 달 사이에 1억이 올랐다. 그때부터 나는 경제적 결정에 있어서 아내의 말을 잘 듣기로 했다. 아내는 많이 속상해했지만 이미 지나간 일을 계속 탓하고만 있는 작은 사람이 아니었다. 다음에 또 기회가 올 거라 믿었다. 다행히 분양받은 아파트는 순식간에 분양가에 두 배가 되었고 우리 부부는 어리둥절했다. 돈은 이렇게 버는 것인가!
부동산 시장의 급격한 변동으로 사회적 분란을 일으킨 때였다. 아파트를 소유하지 못한 이들은 갑자기 급등한 아파트 가격에 가만히 있다가 자산이 하락했다.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주면서 사회적인 불화가 조성되었다. 청년들은 엄청 치솟은 집값에 결혼을 미루거나 포기하고 결혼한 신혼부부들도 집값에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다. 우리나라 인구 감소의 원인 중 부동산 가격은 엄청난 비중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 공공주택 같은 저렴한 주택 정책도 무용지물이 되었다. 이미 분양가는 부동산 상승기의 가격보다 높고 지속해서 오르고 있다.
가족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집이 있다는데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행복한 가족의 조건에서 집은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다. 직장을 가도 집에 가고 싶고, 학교를 가도 집에 가고 싶다. 심지어 여행을 가도 집에 가고 싶을 때가 있다. 언제든 돌아갈 때가 있다는 것은 마음에 안정을 준다. 단순한 물리적 공간으로서 집이 아니라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 준다. 집을 사기 위해 인생의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신축 아파트에 들어간 이후 경제적 여유도 찾아왔다. 나이로는 마흔 중반에 접어들면서였다. 배달 음식도 별로 고민하지 않고 시켰고, 여행도 자주 갔다. 마트에서 그램 당 단가를 보며 가장 싼 물건을 사던 아내가 가격을 보지 않고 물건을 짚기 시작했다. 시간이 경제적 여유를 만들어 준 것인지 알뜰살뜰 살았기에 가능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아니면 분양받은 아파트가 올라서 그렇게 된 건가. 엉덩이에 깔고 있어서 실제 돈을 만질 수 없기에 그건 아니었다. 경제적 여유라는 것도 남들과 비교하면 찾을 수 없다. 우리의 과거와 비교할 때 여유를 찾을 수 있다.
그 흔한 해외여행도 가족끼리 가본 적 없지만 캠핑장 모닥불 앞에 둘러앉아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마주하며 웃고 떠들며 이야기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힘든 날도 괴로운 날도 있지만 집에 돌아와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내 마음의 주름은 하나 둘 펴진다. 어떠한 고난이 닥쳐도 별로 두렵지 않다. 설령 실패를 거듭해도 괜찮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든든한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좋은 집이 가족의 행복을 결정짓지는 않는다. 물론 좋은 집의 유리한 점은 있다. 좀 더 쾌적하고 좀 더 편리하고 좀 더 경제적 여유가 있다. 하지만 집안에서 피어나는 행복은 물리적 공간이 만들지 않는다. 좋은 집에 살아도 가족끼리 불화가 있다면 그 공간은 돌아가기 싫은 곳이 된다. 행복은 집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만드는 것이다. 작고 소박한 집에서 크고 화려한 집보다 더 큰 행복을 만들 수 있다. 둘 중 선택하라고 하면 작고 소박해도 행복한 집을 고르겠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돈을 많이 벌어 더 좋은 집에 이사 간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잠시 좋은 집을 감상하며 기쁠 수 있겠지만 지속되지 않는다. 가족과 마주한 순간순간을 소중히 생각하고 사랑해야 한다. 가족들의 사소한 이야기에도 귀 기울이고 관심을 갖고 표현해 주는 그런 여유와 시간이 가장 중요하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이 순간이 지나면 사라지기 때문이다. 서로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말로 대하고 세심하게 관심을 가지고 진실된 마음을 보여줄 때 가족의 행복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