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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돌아오는 날 해피 엔딩 스토리를 쓰겠다.

마지막 편

by 플래너앤라이터 Mar 12. 2025


"하나가 다섯이 되기까지"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마지막 해피엔딩 편은 쓸 수가 없었다. 다섯 명의 완전체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으로 마무리하려던 바로 그날 불행이 찾아왔다.


다섯 명 중 가운데 중심을 잡아주던 둘째에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병이 찾아왔다. 대략 한 달 전부터 둘째는 소화가 되지 않고 변을 잘 보지 못한다고 했다. 어디가 아픈 게 아니라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동네 소아과에 가서 진료를 받았지만 딸의 증상은 변비라며 변비약을 지어 주었다.


변비약을 먹으면 해결될 줄 알고 딸에게 별도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2주 정도 지났을까. 딸은 윗배가 불룩 나오고 숨이 차다고 했다. 원래도 정적이긴 했지만 평소보다 더 축 쳐져 있었다. 그때 이상함을 감지하고 큰 병원에 데리고 갔어야 했다. 그러나 맞벌이 부부는 뭐가 그리 바빴던지 딸의 상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렇게 며칠이 더 지나서 딸에게 문제가 발생했다. 한쪽 눈이 안 보인다고 했다. 눈이 안 보인다니 안과를 데려갔다. 검사를 해 본 결과 망막에 출혈이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또래 나이대에는 망막에 출혈이 잘 생기지 않는데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큰 병원에 빨리 가보라고 하셨다.


그제야 불안해져 대학 병원 응급실을 찾아다녔다. 가는 병원마다 눈에 대한 증상만 이야기하니 응급실에서 안과는 볼 수 없다며 돌려보냈다. 다섯 군데를 다녔지만 마찬가지였다. 시간은 이미 자정을 훌쩍 넘겼고 새벽 3시가 다 되었다. 걱정이 된 나머지 딸의 상태를 어떻게든 확인해야 했다.


다시 첫 번째 갔던 병원 응급실에 가서 이번에는 그동안의 딸에게 나타난 증상들을 다 얘기했다. 그제야 응급실에서  진료를 봐주었고 혈액 검사와 몇 가지 간단한 검사를 하게 됐다. 혈액 검사결과가 심상치 않았다. 백혈구 수치가 정상 보다 몇십 배 높았다. 이 결과 만으로 단정할 수 없지만 의사는 더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우선 병원이 배정될 때까지 응급처치만 받았다.


새벽 6시쯤 다행히 다른 병원에서 연락이 왔고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 딸은 사설 엠뷸런스에 실려 이동했다. 옮겨진 병원에서도 먼저 응급실로 향했다. 이전 병원의 기록과 검사 결과를 가지고 서둘러 입원을 하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직 정확한 검사들을 해봐야 알겠지만 백혈병일 확률이 높다고 하셨다. 병의 진행이 빨라서 입원과 동시에 빠른 치료들이 급하다고 했다. 여러 잘못된 상황들을 설명했지만 넋이 나간 상태에서 들은 거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단 한 가지 확실하게 들은 건 마음에 준비를 해야 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해피 엔딩 스토리로 마지막 편의 글을 써야 하는 날 저녁부터 새드 스토리가 시작되었다. 딸은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을 진단받고 위독한 상태로 중환자실에서 병마와 생사를 다투고 있다. 중환자실에 들어간 지 이틀째 되는 날인데 아내와 나는 울음이 멈추질 않는다. 옆에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딸이 어두운 병실에서 혼자서 힘들게 버티는 걸 생각하면 견딜 수가 없다.


딸이 건강하게 돌아오는 날 우리 가족 다섯 명의 해피 엔딩 스토리를 다시 써내려 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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