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은 나에게 아주 밝게 빛나던 사람이었다.
너무 빛이 나서 쳐다보기도 힘든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감히 넘보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내가 좋다고 말한다.
엄마가 나에게 "사랑해"라고 말해도 온몸에 소름이 돋던 숙맥인 나에게 사랑이 찾아왔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흔히 말하는 여자와 제대로 된 대화 한번 해본 적 없는 숙맥이다.
이런 내게 그런 일이 생긴 건 기적에 가깝다 말하고 싶다.
때는 고등학생 시절, 나는 떨어지는 성적을 막아보고자 학원을 등록했다.
그리고 그곳에 그녀가 있었다.
시험기간을 맞아 학원에서는 야심 차게 기숙형 학원을 론칭했다. 말이 기숙형이지 사실은 동내 장사다 보니 선생님과 학생 모두 아는 사이였다. 그래서 평소에도 선생님 집에 모여서 공부하고 같이 밥도 먹으며 놀던 우리는 수학여행이라도 온 듯 신이 났다. 학원 구석진 곳에 위치한 방에는 숙식 해결이 가능한 8평 정도의 공간이 있었는데, 그 방에서 풍겨오는 낭만이 우리를 자극했나 보다.
학원 선생님이 낸 테스트를 통과한 나는 3등으로 방에 들어왔다. 방에는 이미 2명이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은 대게 의외였다. "네가 어떻게 먼저 왔지?" 다들 테스트를 위해 공부할 때 뒤에서 놀던 친구인데 머리가 좋은 건가 보다. 그 순간 그녀가 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시선을 거뒀지만, 애초에 그녀는 나를 신경도 쓰고 있지 않다. 괜스레 머쓱해진다.
그 날밤에는 슈퍼스타K 이야기로 방을 가득 채웠다. '허각'이 더 잘 부른다느니 '존박'이 우승이라느니 시답지 않은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때 밖에서 시끄러움이라도 감지했다는 듯이 학원 당직 선생님이 들어왔다.
그러고는 말했다. "라면 먹을 사람?"
다음날 화장실에서 간단하게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고 거울을 봤다. 퉁퉁 부은 찹쌀떡이 눈앞에 있다. 꽤나 먹음직스럽게 생긴 거 같기도 하다. 머리를 말리고자 구석에 위치한 방에 들어와 드라이기를 찾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발 밑에 그녀가 누워있었다. 눈을 땡그랗게 뜨고는 나를 말똥말똥하게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말했다. "안경 벗으니까 훈훈하네?"
그날부터였다. 같은 방에서 함께 잔 정인지, 잠에 덜 깨서 착각을 하는 것인지 그녀는 나에게 계속 호감을 보였다. 나의 숙맥 같은 스타일, 행동, 말투 모든 것을 옆에서 교정해 주었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첫사랑은 이루어지는 게 아니어서 애틋하다고 했는가? 맞는 말이다.
흔히 나는 연애 고자라고 불릴만한 상태였다. 고백은 할 용기도 없었고 그저 옆에 있으면 부끄러움에 눈을 피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우리는 데이트라는 것은 해보지도 않았고, 학원에서만 호감 표시를 할 뿐이었다. 아니 그녀가 나에게 호감표시를 할 뿐이었고 나는 무뚝뚝하게 받아칠 뿐이었다. 이런 나에 대한 실망이었을까?, 복수였을까?, 지침으로 인한 포기였을까? 내가 좋다던 그녀는 나의 옆을 떠났다.
나와는 달리 그녀에게 끊임없이 대시하던 남자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를 신경 썼지만 신경 쓰지 않는 척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녀는 그와 손을 잡고 나타났고, 그날 나의 숙맥의 장벽이 무너졌다. 아니 무너트렸다.
나는 애써 나를 위로했다. 이제 옆에서 하루종일 귀찮게 쫑알쫑알 이야기하던 사람도 없으니 좋다. 쫄쫄 따라다니던 사람도 없으니까 행동이 자유롭다. 나는 자유다. 근데 내가 자유가 아니었던 적이 있나? 그리고 주위는 왜 이리 조용하지. 무엇보다 가슴이 왜 이리 아프지. 표현 하나 하지 않은 내가 밉다. 나는 내 인생에 다시는 없을 그녀를 잃었다. 다시는 없을... 나는 병신이다.
그날 이후 다시는 인연을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그녀의 해주었던 조언에 따라 꾸미고 다니니, 감사하게도 여자친구도 여럿 사귀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직도 첫사랑의 그녀가 큰 응어리로 남아있다. 지금의 생각과 마인드로 과거로 돌아간다면, 그녀에게 받은 만큼 최선을 다해 돌려줄 것이라 후회해 본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너무 멀리 왔고, 10년이 넘은 친구가 되었다. 그날의 감정은 각자의 마음속에만 있는 그 상태. 그 옅게 스치고 간 '첫사랑'의 향기는 나의 코 끝에서 오랫동안 맴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