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듬직하게 우리 집안을 받치던 우리 아버지는 주식을 시작하셨다. 그 시작은 창대했다. 연일 엄마와 아빠의 환호성이 집안에 울려 퍼졌고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나는 그저 따라 웃었다. 그리고 환호성이 울러 퍼지는 날에는 우리 집 밥상이 달라졌다. 값싼 생선과 나물만 올라오던 상에 LA 갈비가 올라온다. 이유는 모르겠고 그저 눈앞의 먹음직스러운 LA 갈비를 보고 환호성을 지르던 어린 나를 기억한다. 항상 두둑이 먹고 배를 두드리며 누워있으면 아버지가 옆으로 와 앉았다. 그러고는 머리는 쓰다듬으면서 말하셨다. "너는 아무 걱정하지 말고 건강하게만 자라라." 어린 나는 가냘픈 팔뚝을 과시하며 나의 건강함을 확인시켜 드렸고 집 안은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렇게 끝났으면 얼마나 좋은 스토리였을까? 하지만 모두가 아는 것처럼 인생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쉽게 가질 수 있는 것도 없으며, 가졌다고 끝나는 것이 아닌 빼앗기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나는 그것을 아버지로부터 배웠다.
내가 고등학교쯤인가 집안은 완전히 풍비박산이 났다. 아버지는 집안의 재산을 모두 악랄한 증권가에 헌납하셨고, 어머니는 사랑을 찾아 떠났다.(2화 참조.) 이쯤 되면 보통 사춘기 소년은 모든 걸 포기하고 방황하기 일쑤다. 하지만 내가 난 놈이었던 게, 하나 결심한 게 있었다. '내가 이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겠다.' 고2 때 그렇게 다짐했다. 그리고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을 가고 취업을 했다. 이제 집안을 일으켜 세울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는.
사회에 나와 돈을 벌기 시작했다. 하지만 받는 월급은 한없이 작았고, 집안을 일으켜 세우려면 100년은 절약하며 돈을 모아야 할 것 같았다. 답답했다. 어디 방법이 없을까 계속 찾아보았지만 부업을 하는 방법 외에는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같은 팀 사람들이 갑자기 돈을 벌었다는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돼지 열풍으로 식품 관련 주식이 끝도 없이 상승했다고 한다. 나는 내가 가진 여윳돈에 팀원이 벌었다는 수익률을 곱해보았다. 무려 3달치 야근비다. 그때부터 나는 주식에 달려들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코로나와 함께 주식에 물렸다. 공감하겠지만 주식 공부는 원래 물리면 시작하게 되고, 물린 주식에 이상한 환상을 품게 된다. 그렇게 나는 2년을 한 주식에 물만 타는 인생을 보냈다.
2년 뒤에는 주식 불장이 찾아왔다. 나의 기억으로는 이 시기에는 '만년 4만 원이던 삼성전자가 10만 전자를 간다 안 간다'로 사람들이 열띤 토론을 했었다. 하지만 내가 물탄 주식은 내가 주식을 팔기를 기다린다는 듯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주식과 맞지 않아." 그리고 기회비용을 생각하며 손절했다. 여담이지만 내가 물 탔던 주식은 정확히 11일 후에 나의 평단 +200%를 기록했다. 나는 또다시 생각했다. "나는 아버지처럼 주식을 하면 안 되겠다."
퇴근 후 책상 앞에 앉아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따끈따끈한 치킨과 물방울이 흘러내리는 시원한 맥주를 세팅하고 평소 즐겨보던 유튜브를 켰다. 그리고 나만의 시간을 만끽하려는 그때 친구에게 전화가 온다. "나 치킨 먹어야 되니까 용건만 간단하게 말해주라."라고 말하니 친구가 말했다. "야 너 비트코인 알지? 내가 그래프 코인이란 걸 샀거든? 근데 400만 원이 7천만 원이 됐어.." 너무 놀랐다. 어떻게 400만 원이 7천만 원이 될 수 있는 걸까? 그런 세계가 존재한다는 게 놀라웠다. 나는 먹던 치킨과 맥주를 치우고 유튜브에 검색했다.
"비. 트. 코. 인"
수많은 코인 영상이 나의 눈과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당장 이 알트코인을 사야 한다느니, 내일이면 200% 간다느니 나를 유혹하는 이야기가 많았다. 하지만 2년의 주식 경험자였던 나는 코웃음을 쳤다. 이런 거에 속는 사람이 있나? 그렇게 나는 나의 소신껏 소액으로 코인 투자를 시작했다. 그런데 70만 원을 투입해서 샀던 코인이 4일 만에 110%를 기록하면서 150만 원이 되어있다. 나는 그날 내가 가진 돈 모두를 비트코인에 집어넣었다.
코인은 사람을 미치게 한다. 자고 일어나면 돈이 벌려있고, 자고 일어나면 돈이 사라져 있다. 거짓말 같겠자만 진짜다. 코인은 24시간 장이 열려있고, 한국의 밤과 미국의 아침에 활발히 거래된다. 그래서 한국의 많은 코인 투자자들을 잠 못 이루게 한다. 나는 그중 한 명이었다. 그러다 보니 업무 시간에는 항상 졸기 일쑤였고 업무 시간에도 코인 차트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점점 노동의 가치를 과소평가하기 시작했고 코인에만 나의 모든 에너지를 쏘았다. 그렇게 나의 자산은 1억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 결과가 나의 실력이었다는 엄청난 오판을 했고 자만과 함께 나에게 점점 도취되었다.
모든 자만의 끝은 비극이다. 2021년 엄청난 코인 불장을 넘어 2022년이 도래했다. 헝다 파산,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루나 사태, 금리 인상 등 엄청난 이벤트와 함께 비트코인은 불장 이전으로 회귀했다. 그때 나의 재산 1억은 0원이 되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왜 떨어지는 코인장에 돈을 계속 두었는가?" 비트코인은 우상향 할 것이라는 믿음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두려움을 이기고 계속 사모으면 나는 부자가 된다고 믿었다. 그렇게 나는 자만과 함께 나의 모든 걸 잃었다. 재산도 자신감도 직장도 모두.
내 인생 가장 암울했던 시기는 2022년이다. 가진 돈은 없고, 나이는 찼고, 직장도 다시 구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정말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터널 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참담했다. 예전 아버지가 이런 기분이셨을까 생각해 보았다. 경상도 사나이셨던 나의 아버지는 다부지고 묵뚝뚝했다. 그리고 자기주장이 강하셨다. 그래서 그런지 집안이 망했어도 아버지는 평소 그대로의 평정심을 보이셨다. 나는 아버지가 괜찮은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힘들었던 시기에 조언이라도 얻고자 아버지와 둘이 술을 마시며 진솔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다. 그 누구보다 무서우셨고, 그 누구보다 집안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노력하셨다. 그날 우리 부자는 술잔 외에 많은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이 있다. '한 번만 터지면 된다.' 급한 성격 때문인지는 몰라도 항상 조급해 보이셨다. 거기에서 나는 무언가를 느꼈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걸 잃고 난 후에야 나는 아버지와 반대로 행동했다. 항상 여유를 가졌으며, 모든지 신중을 기하며 선택했다. 그리고 나는 근 1년 만에 건실한 직장에서 커리어를 쌓을 기회를 얻었고, 재테크에서도 아주 천천히 소소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게 다 실패한 방법을 버리고 될 방법을 선택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것 또한 자만일까? 아직 다가올 미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는 아직 젊고 급하게 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코인을 할 당시에는 항상 급했다. 아버지의 경상도 기질을 물려받아서일까. 아니면 집안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다짐 때문이었을까. 나는 급했고 그 결과는 참담했다.
100만 권의 책을 읽어도 행동하지 않으면 와닿지 않는다. 내 글을 읽는 구독자 님은 내가 멍청하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도 주식투자 전에 '월가의 영웅' 같은 투자 명저를 읽었다. 하지만 결국엔 내가 그 상황에 처해야 그 구절이 생각이 나고 깨달음이 오더라. 최근에도 책을 다시 읽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좋은 투자책을 읽고도 돈을 잃었다고? 나는 정말 똥멍청이인가?"라고. 지난 날의 나의 무지함을 후회하고 복기해본다.